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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국무위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정기국회 개회식 참석한 여야 의원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국무위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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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세계 1위를 달리는 우리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 이것만 놓고 본다면 우리 국회는 뜻밖에도 대단히 열심히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국회의 결정적인 맹점은 법안 발의 그 이후부터다. 발의된 법안은 의원의 손을 떠나 국회 공무원의 검토보고에 의해 그 운명이 사실상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글에서 누차 강조해왔지만, 어느 나라 의회에도 이러한 제도는 없다.

이 글에서는 독일 의회의 입법과정을 통해 의회의 입법과정이란 어떠해야 하며, 국회의원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아래에서 소개하는 독일 의회 입법과정 내용은 독일 연방의회의 사회민주당 울리케 바르(Ulrike Bahr, 바이에른 아욱스부르크 지역구 의원) 의원실에 보낸 질의서에 대한 답신을 바탕으로 구성했다.

독일 의회에서 '법안 검토'는 의원의 직무다

독일 연방의회의 사회민주당 울리케 바르(Ulrike Bahr, 바이에른 아욱스부르크 지역구 의원) 의원실이 설명한 독일 의회 입법처리 과정 설명문 원본.
 독일 연방의회의 사회민주당 울리케 바르(Ulrike Bahr, 바이에른 아욱스부르크 지역구 의원) 의원실이 설명한 독일 의회 입법처리 과정 설명문 원본.
ⓒ 소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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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정당은 연방의회가 열리는 매주 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의원총회를 개최한다. 여기서 연방의회 본회의를 앞두고 논의될 법안과 의결될 법안에 대한 토의가 이뤄진다. 당에는 연방의회의 각 상임위원회 구성에 상응하는 원내교섭단체 워크그룹(Arbeitsgruppe/AG)이 존재한다. 각 워크그룹 대표는 여기에서 현안의 내용과 각 상임위원회의 토의 및 표결 결과에 대해 설명한다.

각 상임위원회 회의가 있기 전에 의원들은 소속 정당의 워크그룹과 만나, 상임위 회의에 대비한 논의를 한다. 검토보고자는 각 원내교섭단체의 의원으로, 이 검토보고 의원은 상임위에서 토의될 사안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한다. 각 원내교섭단체는 한 상임위 내에 전문주제에 따라 각각 전문검토보고위원을 둔다.

검토보고를 맡은 의원은 검토보고에 충실을 기하기 위해 유관 기관 및 활동가들과 수많은 면담을 진행한다. 물론 비판적 견해도 환영한다. 자신의 결정이 가능한 현실적이고 정의롭게 내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하기 위해서다. 이 의원은 교섭단체 내 워크그룹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판단과 평가 및 바람직한 수정사항 등을 다른 위원들에게 전달한다.

전문위원은 정당에 소속... 의원을 밀접하게 '지원'한다

한편 원내교섭단체에는 각 상임위에 상응하는 워크그룹에 최소한 1명의 당 소속 정책전문위원을 배치하고 있다. 정책전문위원은 의원들과 보좌진들을 응대해 법안 제출 및 토의 과정에서 이들을 내용적으로 지원한다. 이들 정책전문위원들은 워크그룹 대표들과 밀접하게 공조한다. 각 의원실의 업무가 정책전문위원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정책전문위원들은 다른 원내교섭단체들, 특히 연정파트너와의 회합을 주선해 법안의 논쟁 예상 대목을 적시에 인지하고, 필요한 경우 의견조율이 이뤄지도록 한다.

상임위 회의는 위원회가 선출한 위원장에 의해 진행된다. 상임위원회의 법안 토의는 각 원내교섭단체의 입장을 표명하는 검토보고로부터 시작된다. 검토보고자의 보고는 의원의 직무로서 이들이 먼저 법안‧의안에 대해 발언한다. 정책전문위원이 이 보고를 대신 할 수 없다. 연방의회 상임위원회 직원은 표결‧발언권이 없이 회의에 참석하여 회의진행을 지원하고 회의록을 작성한다. 그러나 입법과정에는 내용적으로 일체 개입하지 못한다.

이어서 법안의 세부사항에 대한 토의가 이뤄지는데, 모든 수정요청사항은 위원회 다수결로 확인돼야 한다.

법안의 세부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위원회는 이에 대한 표결을 실시하며 본회의 의결권고안을 작성한다. 위원장은 결과를 접수한 후 직권으로 수정안을 본회의에 회부한다.

입법권에 대한 원상회복, '일하는 국회'의 열쇠다

국회의원 배지. 사진은 지난 2016년 4.13 총선을 이틀 앞두고 11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되고 있는 모습.
 국회의원 배지. 사진은 지난 2016년 4.13 총선을 이틀 앞두고 11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되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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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의회의 사례에서 분명히 확인되듯이, 법안에 대한 '검토 작업'은 의원들이 담당하는 가장 기본적인 직무다. 이는 결코 의원이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고, 대신해서도 안 된다. 의원이 발의를 하면 관련 상임위에 회부된 뒤 입법관료인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받는 한국의 법안 처리과정과는 상이하다. 이는 곧 국민이 부여한 입법권과 대의권에 대한 부정이다. 입법권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며, 불구화된 대의권이다. 또 직무유기다.

국회의 입법과정이란 발의부터 본회의 의결까지의 전 과정에서 의원들이 주도, 담당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들이 의원을 선출하여 입법권과 대의권을 부여한 근본적 이유다.

본업이 왜곡된 의회는 결코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오늘 대한민국 우리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극심한 불신은 본업이 이행되지 않고 있는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비롯된다.

국회 무력화를 위해 유신 정권과 전두환 국보위에 의해 만들어진 입법권의 왜곡을 이제 바로잡아야 할 때다. 그렇게 입법권이라는 본업을 회복할 때, 대한민국 국회도 '일하는 국회'로서 비로소 국민의 신뢰를 얻어나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소준섭씨는 국회도서관 조사관입니다.



태그:#전문위원, #검토보고,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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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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