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토냐> 포스터.

영화 <아이, 토냐>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아시안게임이 막 끝났다. 이런 경기 중에는 스포츠 게임이라는 것이 굉장히 잔인하게 느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지고 누군가는 이긴다. 그리고 누군가는 예선에서 탈락하고 누군가는 승리의 기쁨을 누린다. 팀 단위에서 개인으로 들어오면 각 경기마다 패배에 책임이 많은 선수에게 엄청난 비난이 쏟아진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국 야구팀의 경기에서도 패배의 책임은 개개인에게 돌아간다.

사람들은 TV 브라운관에서 벌어지는 경기 그 자체만을 기억한다. 개개인의 삶은 전혀 고려되지 않으며, 작은 브라운관이나 경기장에서 그 선수들이 보이는 모습으로 모든 걸 판단한다. 비단 스포츠 경기만은 아닐 것이다.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연예인들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이는 모습만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한다. 결국 누군가가 어떤 잘못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그것에 대한 판단은 이미 내려진 상태고 오랜 시간 동안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1990년대 '피겨 스타' 악녀 토냐 하딩의 관점에서

 영화 <아이, 토냐> 스틸 컷.

영화 <아이, 토냐> 스틸 컷. ⓒ 영화사 진진


영화 <아이 토냐>는 199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피겨 스타인 토냐 하딩을 화자로 불러내 그때 그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토냐 하딩은 1991년에 최초로 고난도 기술인 트리플 악셀을 성공해 스타가 됐다. 많은 매스컴이 그를 주목했으며 앞으로 장래가 유망한 선수로 크게 보도되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메달 인연이 없었고, 1994년 릴리 함메르 올림픽에서 라이벌이었던 낸시 캐리건의 다리를 다치게 하는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어 악녀의 이미지를 평생 가지고 산다. 이후 낸시 캐리건은 다시 올림픽에 복귀해 좋은 성과를 거뒀고, 피해자 이미지가 긍정적인 영향을 줘 큰 스타가 되었다.

토냐 하딩(마고 로비)을 영화화하게 된 건, 아마도 그 이면에 그가 겪었던 사회적인 어두움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앨리슨 제니)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그나마 따뜻했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으로 그를 떠났고 어머니는 토냐에게 4살부터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게 하는데, 큰 선수로 성장할 때까지 칭찬은 해주지 않고 계속 무시하며 학대했다. 토냐의 어머니가 정말 토냐를 사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토냐를 계속 자극해 정상에 올리긴 했지만, 토냐에게 따뜻한 말을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다. 결국 토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때 자신을 사랑해 준 제프(세바스찬 스탠)을 만나 동거를 시작하지만, 제프는 조금만 기분이 좋지 않아도 토냐를 때리고 학대했다. 그들은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대부분은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한다. 결국 제프를 삶에서 일찍 끊어내지 못한 토냐는 나쁜 스캔들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 결혼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게 된다.

사랑받지 못한 토냐의 불행

 영화 <아이, 토냐> 스틸 컷.

영화 <아이, 토냐> 스틸 컷. ⓒ 영화사 진진


이 일련의 과정 동안 토냐는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는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피겨 스케이팅을 통해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려고 더 노력했는지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토냐의 모습은 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직설적이었고, 좋은 인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하는 피겨는 피겨 전문가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그래서 시도하게 된 트리플 악셀을 잘 구사하여 결국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다. 그 잠깐의 찰나 동안 토냐는 이전에 받지 못했던 사랑받는 느낌을 누렸다. 하지만 그 짧은 행복은 결국 주변의 정리되지 못한 그의 불행이 모두 앗아가고 말았다.

영화에서는 토냐 하딩이 실제로 그 폭력 사건을 알지 못했다고 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100% 확인하긴 어렵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대부분을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인 낸시 캐리건의 이야기는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고, 그가 그 사건 이후 어떤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는지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토냐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 사건 이후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고 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그 사건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도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는 토냐와 토냐 전 남편 제프 그리고 토냐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실패자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라이벌, 그 잔인한 구도

 영화 <아이, 토냐> 스틸 컷.

영화 <아이, 토냐> 스틸 컷. ⓒ 영화사 진진


영화를 보고 나서 얼마 전 은퇴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서로에게 테러를 하지는 않았지만, 김연아를 이기기 위해 트리플악셀을 배워 구사했던 아사다 마오가 떠오르는 건 당연할 것이다. 결국 전체 커리어에서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를 압도한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김연아의 이야기는 잘 알고 있고 여전히 그는 관심 영역에 있지만, 아사다 마오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실패자 또는 도전자로서 기억되는 삶이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된다. 라이벌이라는 구도가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그 당사자들은 결국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실패자 또는 성공한 자로 평가되는 두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그 일련의 과정은 잔인하다.

토냐는 이후 생계를 위해 레슬링에 도전하거나 복싱에 참여해 가십거리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그것들을 배우 마고 로비의 입을 빌려 건조한 인터뷰로 보여주고 있다. 마치 토냐는 '나는 비록 실패자로 기록되지만, 나는 이렇게 토냐로 계속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는 그 사건 이후의 삶에서 숨어 지내지 않았다. 직설적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성격이었던 그는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현재의 삶에서 적합한 역할을 계속해나가고,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 과거에 사랑받기 위해 했던 많은 일을 했다면, 그 사건 이후에 더 이상 그런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어쩌면 현재 아들이 있다는 그는 주는 사람을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 범죄 가해자로 기록되는 토냐 하딩의 삶은 측은하게 느껴진다. 개인적 삶에서도, 사회적 삶에서도 그는 사랑받지 못했고 사랑받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 하지만 한 번의 범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 범죄에 토냐가 개입했든, 안 했든 그는 평생 악녀 이미지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삶을 돌아본 후에, 우리가 늘 접하게 되는 대중 매체의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들의 모습이 안 좋은 모습이라면, 그 이면에 그가 받았거나 받는 고통은 더 큰 것이 아닐까?   

마고 로비 최고의 연기

배우 마고 로비는 이 영화에서 토냐 하딩 그 자체가 되었다. 그의 연기 이력 중에 아직까지는 최고의 연기일 것 같다. 마고 로비는 이전까지 그저 이쁜 금발 배우에 지나지 않았는데, 앞으로 그가 연기하는 다른 배역들이 궁금해졌다. 그가 토냐 하딩이 되어 내뱉는 말들과 인상에는 사랑받지 못한 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어쩌면 지금 평범하게 살고 있는 토냐 하딩의 모습에도 그런 인상이 들어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덧붙이는 글이 기사는 김동근 기자의 개인 브런치,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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