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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가 초등학교 저학년의 하교시간을 오후 3시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중인 가운데, 초등학생 아이를 둔 학부모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저출산위는 사교육 과잉과 아이들의 낮은 행복도를 이유로 꼽았지만, 결국 아이들 의견보다는 부모의 보육상황이 논쟁의 중심에 선 모양새다. 이번 논쟁과 관련, <오마이뉴스>가 학부모들의 찬반 의견을 가감없이 들어봤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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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학년 하교 시간을 3시로 해? 그럼 애들이 힘들텐데?' 

기사 제목을 보고 든 생각은 이것 하나다. 왜 이런 제도를 시행하려 하는지 궁금해서 기사를 읽어보니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란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나는 교육 관련 기사에 유독 관심이 많다.

그런데 '엄마'라서 교육 기사에 관심이 많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어떤 개편을 하든 개편의 당사자인 학생의 의견을 절대로 묻지 않는다. 묻질 않으면 배려라도 해야 하는데 배려 역시 없다. 그렇게 해도 여태까지 별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학교라는 공간은 권위적이다. 학부모들도 학교에 가서 의견을 말하기 쉽지 않다. 그러니 학교보다 훨씬 위에 있는 교육 당국을 향해 교육정책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하기는 쉽지 않다. 여론조사에서나 의견을 말할 뿐이다. 그러므로 나라도 교육제도 개편이 있을 땐 눈을 부릅뜨고 학생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15년간 학부모 노릇을 하며 쌓여왔다.

둘째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한참 영어교육을 강조하던 이명박 정부는 2010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의 영어 수업시간을 두 시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3학년들은 일주일에 23시간씩 수업을 듣고 있는데 거기에 2시간을 더해 총 25시간이니 크게 무리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아이들에게 묻지 않는 교육정책은 틀렸다

그런데 아이들 처지에서 보면, 정부의 말은 틀렸다. 2009년 2학년 시절, 우리 아이는 주당 21시간 수업을 들었다(토요일은 격주마다 수업하는 '놀토'가 시행 중이었다). 여기에는 두 시간짜리 수업을 쉬는 시간 없이 연달아 하는 블록타임 수업이 1회 포함돼 있었다. 블록타임 수업은 시간 자체가 길지만, 이날은 5교시를 하더라도 점심 먹기 전에 수업이 끝날 수 있다.

이렇게 하다 3학년이 되면 아이의 주당 수업시간은 2시간 늘어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영어수업 2시간을 또 추가한다? 결국 아이로선 주당 수업시간이 4시간 더 늘어나는 셈이다. 점심을 먹고 매일 1시쯤 하교하다가 일주일에 네 번은 점심 후 한 시간씩 더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이에겐 급격한 변화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가 씩씩거리며 놀이터에서 돌아왔다.

"엄마, 아까 석진이형한테 들었는데 작년(2009년)에 우리학교 3학년은 5교시를 이틀만 했는데 우리가 3학년 되니까 네 번 하는 걸로 바뀌었대. 이런 게 어디 있어? 와, 이건 완전 사기야. 왜 우리만 5교시를 네 번 하냐고. 형들은 두 번 했는데."

나는 지금도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을 기억한다. 교실에 걸린 시간표를 보면서 '6교시가 있는 날은 왜 이리 힘이 들까?'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주 죽을 맛이었다.

공부가 아니고 놀게 하는 거니까 오후 3시까지 학교에 있어도 괜찮을 것이란 분도 있다. 하지만 시댁에서 시댁 식구들이 일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쉬라고 한다고 마음이 편해지나? 정말로 일을 안 하고 쉬어도 불편하다. 공간은 공간마다 주는 힘이 있다. 우리는 보통 집에 오면 긴장이 풀리고 회사에 가면 긴장한다. 학교는 공부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놀아라'라고 한들 마음이 편해지는 건 아니다.

이미 방과 후 학교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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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미 초등학교엔 '방과 후 수업제도'가 있다.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만든 제도다. 이 제도를 잘 활용하면 저출산고령화대책위원회가 제안한 '더 놀이학교'의 효과를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다고 본다.

방과 후 프로그램에 놀이가 들어간 과정을 더 넣어주고 질을 높이면 맞벌이와 상관없이 학부모와 아이들은 그 수업을 선택할 것이다. 방과 후 수업의 질을 높이면 강제성 없이도 저학년 아이들을 오후 3시까지 학교에서 충분히 돌볼 수 있다.

굳이 더 놀이학교를 시행해서 아이들과 부모가 선택할 여지가 없게 만들어야 할까. 아이들이 힘들어하거나 지겨워하고 또는 상황이 바뀌면 학원이나 방과 후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 하지만 더 놀이학교 제도를 시행하면 개인은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 게다가 시행한 뒤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고 내년부터 취소하는 식으로 쉽게 변경하기 어렵다.

학생들의 하교 시간을 늦추는 것은 관료들의 책상에서 정해진 일이다. 그 제안서가 더 높은 사람의 책상에 올라가고 또 올라가 결재를 받으면, 결국 모든 학교는 군말 없이 시행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책상에서 탄생하여 더 높은 책상으로 올라가 결재된 '종이'는 어린 학생들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우유는 물어보면서 수업시간은 왜?

제안자나 결정권자들은 이 제도가 시행된 뒤에는 그 종이를 아마 잊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손쉽게 바뀐 하루하루를 아이들은 일 년 내내 견디며 살아야 한다. 짧게는 4년, 길게는 6년을 버텨야 할 어린 학생들에게 "너희들 생각은 어떠니? 학교에서 놀면서 3시까지 있다가 집에 가야 해. 그러면 어떨 것 같아?"하고 물어봐야 한다.

더욱이 그 정책이 교육대상자인 어린 학생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교육정책은 다른 정책을 위해서 쉽게 바뀌는, 부수적인 정책이 아니다. 아이들의 생활을 다른 정책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함부로 가져다 쓰지 말아야 한다.

저출산의 문제는 취업, 결혼, 육아, 교육 등 생애 모든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과제가 점점 해결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집값도 잡아야 하고 취업률도 높이고 장시간 노동도 줄여야 한다. 이런 여러 부문의 문제가 해결돼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지면 저절로 출산율은 늘어날 것이다.

가장 돈 안 드는 정책인 '저학년 하교 시간'을 늦추고 '임신중절수술 의사를 처벌'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의 정책으로 출산율 수치를 올려보겠다는 발상은 정말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에서 어느 우유를 마시고 싶은지 설문조사는 꼬박꼬박하면서 왜 이런 중대한 변화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학생들의 뜻을 반영 안하는지 모르겠다. 학생들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킬 교육제도 개편은 학생들의 의사를 꼭 물어야 한다. 어리면 어릴수록 더욱 자유롭게 놀 시간이 필요하고, 그들의 자유 시간은 더욱 배려받아야 한다.

태그:#더놀이학교, #저출산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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