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엄마 아빠, 오늘 아이들 어땠어 잘 놀았어?"
"얘, 말도 마라 준희가 할머니가 마중 나오지 않고 할아버지가 나왔다고 유치원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우는 바람에 ...."

남편의 말에 딸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딸이 아이들을 맡겨놓고 나갔다 오면 가장 먼저 묻는 말이 "아이들 잘 놀았어?"
하는 말이다. 남편과 나의 말을 듣고 나면 "어떻게 같은 아이를 보면서 아빠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서 힘들었다고 하고, 엄마는 맨날 아주 잘 놀았다고 해." 하며 웃어댔다. 남편은 눈치가 없다. 설사 아이들이 잘 안 놀고, 그래서 우리가 좀 힘들었다고 해도 아이들을 맡아서 봐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딸 마음이라도 편하게 '아주 잘 놀았다' 고 말해야 되지 않을까?

친한 친구 중에 사위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자, 딸도 남편을 따라 직장을 지방으로 옮겼다. 그 때부터 친구는 두 집 살림을 하게 되었다. 딸을 도와주느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지방에서 지내고, 금요일부터 주말은 결혼 안한 아들을 위해 서울에서 보냈다. 주말에도 딸네 집에 가져갈 반찬을 이것저것 만드느라 바쁘게 지냈다. 그렇게 쉬지도 못해서 그런지 늘 감기를 달고 살았다.

이번에는 다른 친구 이야기다. 직장 다니는 딸을 위해 하루 종일 손녀들과 보냈는데 딸이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아이들이 할머니와 같이 자고 싶다며 가지 못하게 붙잡는다고 했다. 그래도 친구는 아이들을 뿌리치고 집으로 온단다. 집으로 와야 몸이 쉴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그 친구가 손녀들 한테 좀 더 잘해 주면 좋을 텐데'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라면 손녀들과 같이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세월이 흐르면 아이들은 커서 더 바빠질 것이고 나는 나이들어 힘이 없어질 것이니 그 전에 될 수 있으면 아이들과 자주 만나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손주들을 돌보면서 깨달았다. '손주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라는 말의 뜻을, 그리고 그 상황에 있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천진한 아이들을 보면 정말 즐거운 일이 많다. 그런데 체력이 문제다. 지금은 초등학생인 큰아이가 돌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너무 할머니만 좋아하는(?) 바람에 그야말로 껌딱지처럼 붙어 있으려고만 했다. 하루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방바닥에 누워 있고 싶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손자를 남편한테 맡기고 아이 몰래 안방에 누워 있기로 했다. 손자는 "함머~니, 함머~니"를 부르며 여기저기 쿵쾅대며 찾으러 다녔다.

그 귀여운 목소리에 바로 문을 열고 나가고 싶었지만 내 얼굴을 보면 "업어달라" "안아달라" 할 것이고 그러면 또 내 허리가 아파질 것을 염려해 웃음이 나도 꾹 참고 버텼다. 좀 쉬었다가 거실로 나가자 손자는 반색을 하며 나에게 다짐을 받았다. 어디에 가지 말고 꼭~ 제 옆에만 있어야 한다고 ...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두 집 살림 하느라 고생하던 친구는 요즘 아주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사위가 해외로 발령이나는 바람에 딸네 가족이 해외에서 삼년이나 있다가 온다고 했다. 친구가 부럽다. 가장 좋은 것은 딸네집 일을 안해도 되고, 시간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또 딸네가 가 있는 나라의 여행은 맡아놓은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북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아이를 낳기만 하면 키우는 것에 대한 걱정은 안해도 된다고 했다. 워낙 제도적으로 잘 돼있어서 아이를 낳는 것이 가정에 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단다.

캐나다에 이민 간 동생이 말했었다. 이민 가서 첫 해 겨울이었는데,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난방비가 너무 적게 나왔다며 지원해 줄 테니 따뜻하게 지내라고 연락이 왔다고. 아이가 있는 가정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준다는 게 감동이었다.

우리나라는 아이를 적게 낳아 인구가 줄어 들어 걱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맞벌이 하는 가정의 주부들이 아이를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우선 돼야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딸들은 얼마나 더 기다려야 선진국처럼 아이들 걱정하지 않고 마음 놓고 출근할 수 있을까?
 

태그:#저출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