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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에 대한 진단이 엇갈린다. 대북제재 효과론과 내성론이 맞선다. 대북제재 효과론은 지난 2017년 세 번에 걸쳐 단행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2371호, 2375호, 2397호)가 북한 경제에 실질적인 타격을 가했고, 결국 그 때문에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왔다는 주장이다.

반면 내성론은 북한 경제는 제재에 대응, 체계적으로 내성을 길러왔기 때문에 제재와 북한 당국의 정책 변화를 인과적으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작금의 제재가 가혹하기는 하지만 북한 경제가 못 버틸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비롯해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당국이 취한 일련의 경제 정책들을 두고서도 의견이 나뉜다. 개혁의 신호탄으로 해석해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입장이 있는 반면, 본질적으로 '장마당'의 확산 등 아래로부터의 '시장화'에 대한 국가의 대응, 즉 국가의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이며, 따라서 '반(反)시장'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 경향도 존재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 글은 다음 두 가지 문제에 집중한다. 첫째, 북한의 경제상황, 즉 상승하고 있는지, 하락하고 있는지, 아니면 정체국면인지 살펴본다. 둘째, 북한 경제체제가 바뀌고 있는지, 그렇다면 그 방향과 내용은 무엇인지 검토한다. 북한 경제가 어디로 가는지 안다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편집자말]
물가 안정과 경제 정상화

북한의 경제 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지표는 북한 원화의 가치다. 경제를 인체로 보면 화폐는 보통 혈액에 비유된다. 몸이 병들었는데 피가 건강할 수는 없다. 경제와 화폐의 관계도 이와 동일하다. 화폐에 문제가 없으면 일단 경제는 괜찮다고 판단해도 무방하다. 화폐 상태를 평가하는 지표 가운데 가장 우선하는 것은 화폐가치의 안정성이다. 현실에서 화폐가치는 물가로 표현된다. 따라서 물가 안정은 건실한 경제의 1차 요건, 즉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중앙은행은 물가를 공표하지 않는다. 대안적으로 국내외 북한 연구자들은 북한 시장의 쌀값을 통해 소비자 물가 동향을 추론한다. 쌀은 대표적인 소비재이기 때문이다(이영훈, 2012, p. 53).

국내 인터넷 언론사 데일리NK는 2009년부터 평양과 신의주, 혜산의 쌀값을 수집, 보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13년 이후 북한에서 쌀값은 1Kg이 북한 돈 5,000원 내외로 매우 안정되어 있다. 그 이전,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물가는 매우 불안정했다. 1990년대 중반과 2009년 화폐개혁 때는 초인플레이션도 발생했다. 그런데 왜 2013년 이후 북한 물가는 안정되었을까?

 
북한 화폐
 북한 화폐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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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는 우선 경제 전체적으로 공급 부족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생산이 정상화되어 초과수요가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화폐순환, 즉 화폐의 창조와 회전, 소멸 과정이 정상적으로 작동, 화폐 창조와 소멸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셋째 랜달 레이(L. Randall Wray) 등이 강조하는 현대화폐이론에 근거하면, '화폐는 국가의 채무증서이다, 때문에 북한에서 화폐가치가 안정된 것은 결국 화폐 수납 시스템인 세금 제도와 국영 상업망 제도가 정상적으로 기능, 북한 원화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었기 때문이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이 세 주장들은 모두 다른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공통된 키워드는 존재한다. 바로 '정상'이다. 생산이든, 화폐순환이든, 국영 상업망과 세금 제도든, 어찌되었건 정상화됐기 때문에 물가가 안정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최근 북한에서 물가의 안정은 경제가 정상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2018년 현재 북한 경제는 하락이나 침체와는 거리가 멀다. 이제부터는 이 글의 두 번째 검토 사항인 북한 경제체제의 변화를 살펴보겠다.
 
북한 연도별 쌀 1Kg의 평균값
 북한 연도별 쌀 1Kg의 평균값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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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실시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다. 한 때는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꿈꿨다. 북한에서 사회주의 완전승리는 공산주의 낮은 단계로 규정된다.

그러나 1993년 제3차 7개년계획의 실패 이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북한 사회주의의 원형, 즉 이른바 '고전적' 사회주의 체제는 1960년대 형성되었다. 대안의 사업체계와 계획의 일원화・세부화, 유일적 자금공급체계 등 '고전적' 사회주의 제도 거의 모두 1960년대 초 도입되었다.

2014년 이후 북한 당국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실시, '고전적' 사회주의 체제의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2014년 11월 5일 개정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기업소법'에 법적으로 명문화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5년 12월 13일 '전국재정은행일군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를 공식화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와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그 폭과 깊이는 차원을 달리 한다.

북한 문헌(송정남, 2015; 림태성 2016 등)에 따르면,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실시 이후 이제 북한 기업은 '계획권'과 '생산조직권', '재정관리권', '판매권', '무역 및 합영합작권' 등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국가와 기업의 관계를 조정했다. 그 방향은 기업의 독자성과 자율성 확대다. 북한 경제학자 송정남은 이 사실을 분명히 지적한다.
 
"지난 시기에는 기업체들이 상대적 독자성을 가지고 관리운영되었지만 실제적인 경영권은 국가가 틀어쥐고 행사함으로써 기업 경영 활동의 많은 측면들이 국가에 의하여 진행되게 되었으며 기업의 국가의존도는 대단히 높았다. 기업들은 국가가 대주어야 계획을 수행하였으며 국가가 대주지 못하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게 되어있었다. 국가의 전략적경제관리에서는 (...) 집단주의적원칙에서 독자적으로, 창발적으로 기업활동을 하게 되어있다. 여기서 국가는 기업체들이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데 맞게 환경과 조건을 마련하여주는 방법으로 전략적관리를 실현한다."(송정남, 2015, pp. 21-22)

수술대 위에 오른 북한의 계획 시스템

고전적 북한의 계획 시스템은 한마디로 강력한 중앙집권에 기초한 명령식 체제다. 북한 내에서 생산된 거의 모든 제품을 망라한다. 여기서 기업의 자율성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북한에서 '고전적' 계획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도입 이후 대폭 변경되었다. 가히 전면적인 수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재화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정도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눈다. 철강, 석탄 등 더 중요한 재화는 중앙지표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재화는 기업소지표로 범주화한다.

중앙지표는 기존의 4단계 계획화 방법에 따라 계획한다. 그러나 기업소지표의 경우에는 사실상 계획을 폐기했다고 할 수 있다. 상품의 생산량과 가격, 판매처는 물론 자재의 구매처와 구매량 등도 기업 스스로 자율적으로 정한다. 북한 당국은 이를 '주문・계약에 의한 계획화 방법'으로 명명했다.

 
평양의 거리(2017.10.11)
 평양의 거리(2017.10.11)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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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소지표의 종류와 그것을 생산하는 기업의 수는 중앙지표에 비해 압도적으로 더 많다. 중앙지표를 생산하는 기업도 할당량을 완수하면 그 외의 생산량에 대해서는 더 이상 계획에 얽매이지 않는다. 기업소지표처럼 자유롭게 생산, 판매할 수 있다. 기업간 생산재 시장, 즉 B2B(business to business)가 북한에서도 허용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이 계획의 상당 부분을 대체했다. 북한에는 이미 400여 개의 '장마당'이 존재한다. 하지만 장마당은 지역별 소비재 시장에 불과하다. 장마당간 연계는 약한 편이다. 서로 분절되어 있다. 따라서 장마당을 두고 전국적 단일 시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기업간 생산재 시장은 이와 다르다. 이 시장은 본성적으로 전국적 단일 시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시장경제화는 이제부터, 즉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실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상업은행 도입과 기업의 자본조달 방식 변경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북한 기업의 자본조달 방식도 바꾸었다. 고전적 북한 경제에서 기업은 생산에 필요한 화폐자본 대부분을 정부 재정에서 선대(advance)했다. 북한 당국은 고정자본만이 아니라 유동자본까지도 기업에 제공했다.

북한 경제학은 이를 '유일적 자금공급 체계'로 정의한다(리원경, 1986, p. 228). '자금공급'은 대부가 아니다. 정부 지출의 일종이다. 나중에 상환할 필요가 없다. '유일적 자금공급 체계'에서 기업은 자본 운용 권한, 북한식 표현으로 하면 '재정관리권'이 없다. 단지 계획에 따라 정확히 집행해야 하는 의무만 존재한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이 같은 '유일적 자금공급 체계'를 해체했다. 이제 기업은 정부의 '자금공급'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고정자본은 여전히 정부로부터 공급받는다. 하지만 신설 기업과 중요 기업이 아닌 한 유동자본은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은행 대부금과 사내유보이윤(강철수, 2016, pp. 50-51). 자본 조달의 독자성과 자율성이 커지고 '주문・계약에 의한 계획화 방법'이 확립되면서, 기업의 '재정관리권'도 대폭 확대되었다. 자본 운용의 자율성이 증대된 것이다. 바야흐로 북한에서도 기업이 수동성을 벗고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능동적인 기업으로 변모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실시하면서 은행제도를 개편, 상업은행도 도입했다. '고전적' 북한 경제는 중앙은행 유일의 단일은행제도를 택했다. 이 제도 하에서는 중앙은행이 발권은행과 정부의 은행 등과 같은 본연의 기능 외 상업은행 기능도 수행한다.

북한 중앙은행은 본점과 도, 시・군에 1개씩 존재하는 지점으로 구성되었다. 기업들은 자신의 주소지 중앙은행 지점에 1개의 기본 계좌와 보조 계좌를 개설하고 이 계좌들을 통해 정부 공급 자금과 대부금 수령, 국가납부금 납부, 결제자금 이체, 현금 출납, 이자 지급 등 모든 화폐 거래를 진행한다(강창남 외, 2010, p. 25).

신설된 상업은행은 이 같은 중앙은행 지점의 기능을 그대로 계승한다. 기업에 대한 대부도 이제 상업은행이 담당한다. 그러나 경영 방식은 독립채산제로 변경했다. 북한 당국은 이를 '금융기관 채산제'로 부른다. 중앙은행 지점은 예산제 기관이었다. 이윤이 발생하면 본점을 통해 정부에 이전해야 했다. 사실상 정부의 한 부서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자율성은 상업은행이 중앙은행 지점에 비해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의 형성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우선 최근 북한 경제는 한국은행 통계와는 달리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중화학공업은 물론, 경공업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물가, 즉 화폐가치 역시 안정되어 있다. 안정된 화폐가치는 북한 경제가 1990년대 중반 겪었던 경제위기의 후유증에 벗어나 정상화되고 있다는 증표로 해석할 수 있다.
 
손님들로 붐비는 평양 시내의 한 마트(2017.5.20)
 손님들로 붐비는 평양 시내의 한 마트(2017.5.20)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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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북한 당국은 2015년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실시, '고전적'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계획의 상당 부분을 시장으로 대체했으며 기업의 자율성을 크게 확대했다. 자본 조달과 운용에서도 기업의 독자성이 커졌다.

또한 중앙은행 유일의 단일은행제도를 폐지하고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상업은행을 신설했다. 이 같은 변화를 개혁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기업의 독자성과 자율성이 강화되면서, 북한에서도 전국적 단일 시장, 다시 말해 시장경제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 김기헌 기자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위 기사는 아래와 같은 문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강창남 외. 2010. 『광명백과사전 5, 경제』. 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강철수. 2016. “사회주의기업체들에서 류동자금 보장조직의 중요요구.” 『경제연구』 2016년 3호. 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김일성. 1988. “일원화계획화체계를 더욱 심화발전시키기 위하여.” 『주체의 경제관리체계와 방법을 철저히 구현할데 대하여』.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김정일. 2015. “광복지구상업중심은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하는 현대적인 상업봉사기지이다: 광복지구상업중심을 현지지도하면서 일군들과 한 담화 (주체100(2011)년 12월15일),” 『김정일선집』 25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김진호. 2018.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평양을 가다] 9・9절 준비로 들뜬 평양의 광복절 “판문점선언 잘 풀려 가을 풍요롭길”.” 『경향신문』 2018년 8월 16일.
리원경. 1986. 『사회주의화페제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림태성. 2016. “사회주의기업체의 재정관리권.” 『경제연구』 2016년 1호. 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송정남. 2015. “전략적경제관리방법의 본질적특징.” 『경제연구』 2015년 4호. 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양운철・정형수. 2017. “한국은행의 북한경제 성장률 추정치 평가.” 『세종정책브리핑』 2017-21호.
이영훈. 2012. “북한의 하이퍼인플레이션과 개혁개방 전망.” 『북한연구학회보』 16권 2호.
이정민. 2018. “1년에 거리 하나씩 생기는 평양 … 그뒤엔 김정은 ‘과학자 우대’.” 『중앙일보』 2018년 8월 22일.
이정철. 2002. “사회주의 북한의 경제동학과 정치체제: 현물동학과 가격동학의 긴장이 정치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정치학 박사학위 논문.
Frank, Ruediger. 2017. Consumerism in North Korea: The Kwangbok Area Shopping Center. 38 North: Informed Analysis of North Korea April 6, 2017. http://38north.org.
Pecania, Sergio & Ma, Jessla. 2017. North Korea's Nuclear Push Is Just One Piece of a Nationwide Building Boom. New York Times July, 5, 2017.


태그:#북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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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기획실장/ 북한학(경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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