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 어느 주말,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을 보러 오랜만에 멀티플렉스 극장을 찾았다. 영화 시작 시간이 가까워오자 200석이 훌쩍 넘는 큰 상영관 앞자리까지 빈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 찼다.

천만 영화의 두 번째 시리즈물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던데다 개봉 첫 주 주말이었고, 날씨는 연일 폭염 기록을 갱신하던 중이었으니 '매진' 행렬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날 하루에만 해도 이 영화를 몇 개 상영관에서 수 차례 상영했던 터라, 다른 영화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문득 빽빽하게 들어찬 영화관 풍경이 무척 생경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실로 오랜만이었다. 관객이 거의 없는 텅 빈 극장이 내게는 훨씬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조금 불편해도 괜찮아,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면
 
 늘 마주하는 텅 빈 극장의 뒷모습이다.

늘 마주하는 텅 빈 극장의 뒷모습이다. ⓒ unsplash


얼마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이 개봉했을 때의 일이다. 여름휴가차 서울을 떠나 지방 소도시에 있는 고향에 잠시 머무르고 있었다. 물건을 훔치며 사는 한 가족 이야기를 그린 <어느 가족>은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한국에도 감독의 고정팬이 많아 꽤 관심을 받은 작품이었다.

서울에선 독립영화관 뿐 아니라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도 개봉한다기에 여기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상영하는 곳을 찾기란 어려웠다. 역시 서울에 돌아가서 봐야하나 싶어 포기하려던 찰나, 하루에 딱 한 번 <어느 가족>을 상영하는 작은 독립영화관 하나를 발견했다.

어느 여름날 밤, 그렇게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의 조촐한 인원이 함께 <어느 가족>을 봤다. 상영관은 달랑 하나에 좌석은 다 해봐야 겨우 50석 남짓. 지하에 있어 분위기도 답답하고 천장도 낮아 영화관으로 그다지 적합한 장소는 아닌 듯 보였다. 또, 하나뿐인 상영관에서 여러 영화를 돌아가며 상영하다보니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불편함을 잊어버릴 정도로 좋았다. 또, 영화가 끝나고는 영화 포스터와 엽서, 노트까지 생각지도 못한 깜짝 선물도 받았다. 보통 '굿즈'는 직접 구매하는 게 아니라면 선착순이나 이벤트 당첨으로만 받을 수 있는데, 관객이 많지 않아서인지 모두에게 하나씩 나눠준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도내에 하나뿐인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이 지역 시민들이 다양성영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관이었다. 게다가 지난해 운영 위기로 문을 닫을 뻔 했다가 지자체의 지원으로 겨우 다시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극장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즐기는 나만의 방법

나는 많은 영화 장르 중에서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때론 스크린에 담긴 현실이 실재한다는데서 오는 괴로움도 있지만, 그래서 전해지는 진심과 감동이 더 크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주류 장르가 아니다보니 영화관의 큰 스크린으로 다큐멘터리를 보기가 쉽지 않은데, 국내에서 열리는 다양한 영화제들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몇 년간 꼬박꼬박 출석하고 있는 영화제 중 하나가 'EBS 국제다큐영화제'인데, 영화제가 열린 지난달에도 극장을 찾았다. EBS 다큐영화제는 TV와 모바일로도 상영작을 볼 수 있지만 몇몇 영화들은 극장에서만 상영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큰 화면으로 볼 때의 느낌이 달라서 직접 가서 보는 걸 더 좋아한다.

이번에 극장에서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은 시리아 반군 가족의 일상을 다룬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시리아 내전을 생생하게 그린 감독의 전작이 무척 인상 깊었는데, 이번 다큐에도 반군 집단의 활동과 소년병들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담고 있어서 보는 내내 그 어떤 스릴러 영화보다 긴장감이 넘쳤다. 

평일 오후 시간대이긴 했지만 역시나 상영관 안은 휑했다. 200여석 중 채워진 자리는 많아도 10석이 채 안 돼 보였다. 천만영화처럼 매진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영화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었다.

영화제가 없는 기간에 신작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는 매달 '독립영화 쇼케이스' 행사를 열고 있는데, 독립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매번 상영이 끝나면 감독과의 대화 시간도 준비되어 있다.  

지난달 상영작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영주댐이 건설되면서 사라진 할머니댁 마을에 관한 다큐멘터리 <기프실>이었다. 6년이 넘는 긴 제작기간 동안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만든 이 영화는 우리에게 '사라져가는 것'의 의미를 되묻고 있었다. 이번에도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GV 시간에는 따스한 감상평과 질문들이 오갔다.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영화 <기프실>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영화 <기프실>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 ⓒ 이유정


이렇게 좋은 다양성영화들을 마주할 때마다 생각한다. '자본'이 곧 '인기'로 직결되는 현실에서 "대중성이 없다", "재미가 없다"는 말로 쉽게 외면당했지만, 어쩌면 세상에 선보일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던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텅 빈 극장에 간다. 아직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알짜배기 영화들을 하나씩 발견해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에.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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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는 우리네 일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 파도 앞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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