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다뤘던 <아귀레: 신의 분노>에 대한 해부를 좀 더 이어나가려 한다. 혹 이 글이 처음인 독자는 [시네마 아나토미①] <아귀레: 신의 분노>上 http://omn.kr/13xy3으로 접속해 숙독하길 권한다. - 기자 말

[ANATOMY ③] 감자와 옥수수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은 그 시대의 모습을 명확히 내포한다. 주목할 만한 음식으로는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열대과일이다. 감자는 안데스산맥 티티카카호 주변의 고원지대가 원산지로 1532년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항해 중 식량으로 먼저 식용했고, 이어 스페인과 아일랜드 등으로 전파되었다. 영화 중반, 유폐된 우루수아에게 부인이 먹이는 음식에 감자가 보이는 것은 정확한 고증이다.
 
 스페인의 침략자에게 감자를 권하는 아메리칸 인디언

스페인의 침략자에게 감자를 권하는 아메리칸 인디언 ⓒ focus.it


원정대의 주식으로 쓰이는 옥수수는 라틴 아메리카가 원산지로 1493년 콜럼버스가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에게 신대륙 체험담을 보고하면서 유럽에 처음 알려졌다. '키 큰 줄기에 남자 팔뚝만 한 굵은 이삭이 나있고, 이삭마다 완두와 비슷한 낱알이 달린 기이한 식물'로 묘사된 옥수수는 라틴 아메리카뿐 아니라 안데스산맥 지역에서도 주식으로 먹는 식용 작물이다. 아메리카 대륙과 조우하며 유럽이 얻은 가장 큰 선물은 금과 은이 아니라 감자와 옥수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후 유럽의 생활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엘도라도 황제와 부하들의 식사 장면에 나오는 열대 과일도 흥미롭다. 황제가 먹는 열대 과일 중 코코넛과 파파야로 추정되는 과일이 보이는데 특히 파파야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항해 시절 맛보고 '천사의 과일'이라 극찬하며 유명해졌다. 아마존의 다습한 기후에 어울리는 과일이다.
 
 열대과일을 맛보는 허수아비 황제

열대과일을 맛보는 허수아비 황제 ⓒ 백두대간

  
[ANATOMY ④] 태양의 자손

극 중 아귀레와 조우한 인디언 부부는 그를 보고 '태양의 자손'이라 부른다. 실제 오레야나 일행이 인디언과 조우했을 때 자신을 '하나님의 자손'이라 소개한 것을 인디언이 '태양의 아들'로 오해했다는 기록이 있다.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코르테스가 아즈텍 제국의 황제를 만날 때와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 제국을 침략하는 사건과도 이어지는 원주민의 창조 신화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잉카 신화에서 언급되는 세계의 창조주는 비라코차(Viracocha)다. 반신반인의 모습을 띤 그는 키가 매우 크고 흰 얼굴에 턱수염이 있으며, 흰색의 긴 외투, 허리띠, 슬리퍼를 착용하고, 불을 뿜는 병기를 사용하며, 네 발의 기묘한 괴수를 타고 다닌다. 그는 훗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사라지는데 아스텍 신화의 창조주인 케찰코아틀(Quetzalcoatl)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한 존재다. 그런데 신화 속 외형을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총으로 무장한 채 네 발 달린 말을 타고 다니는 수염 난 키 큰 백인'이란 스페인 침략자의 스테레오 타입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유물 속 비라코차의 모습

유물 속 비라코차의 모습 ⓒ Wikipedia

 
실제 아즈텍 제국의 경우 스페인 침략자와 처음으로 조우했을 때 자신의 신화 속 창조신의 재림, 혹은 자손이라 착각하고 극진히 모시며 황제와의 만남을 주선하다가 제국의 몰락을 자초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며, 잉카 제국의 경우 아타우알파 황제가 스페인 원정대에게 죽임을 당하며 얼떨결에 황제가 된 망코 잉카(Manco Inca)가 침략군을 비라코차라 부르며 대우한 바 있다.

[ANATOMY ⑤] 선교사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난입한 표면적인 이유는 기독교의 전파였다. 그래서 모든 원정대에는 늘 사제를 배속시켰는데 극 중에 나오는 가스파르 데 카르바할도 그런 부류였다. 배고픔 때문에 눈에 광기가 비치는 원정대를 접한 원주민은 그들을 '하늘의 자손'이라 생각한다. 이때 카르바할은 성경을 건네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라고 권유한다. 원주민은 성경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여기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라는 말을 뱉는다. 그러자 광기에 사로잡힌 사제는 원주민의 가슴에 칼을 쑤셔 넣으며 이단이라고 소리치고 곧 무차별 살육이 벌어진다.

영화의 이런 대목은 프란체스코 피사로와 처음으로 조우했던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Atahualpa)의 일화를 변형한 것이다. 아타우알파가 호기심에 못 이겨 피사로 일행을 단독으로 찾아갔을 때 당시 수사였던 발베르데는 '레케리미엔토(Requerimiento)'를 낭독했다. 레케리미엔토는 스페인 왕의 조서로 1513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과 접촉 시 의무적으로 읽어야만 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교황이 스페인 왕에게 이 땅의 지배권을 부여했으니 너희는 이제 스페인의 백성으로 기독교를 믿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모두 노예가 되거나 죽임을 당한다는 것인데 아타우알파는 들은 체 만 체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다는' 물건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잉카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의 초상

잉카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의 초상 ⓒ Brooklyn Museum


기록에 따르면 성경은 아니고 기도서 혹은 성무일도서라고 하는데 호기심이 집중된 이유인즉슨 책과 문자를 처음으로 접했기 때문이다(당시 잉카 문명은 매듭의 그래픽 시스템을 통해 소통하는 매듭 문자 키푸(Quipu)를 쓰고 있었다). 책과 문자가 익숙지 않은 아타우알파는 이리저리 치덕이다 책을 바닥에 떨어뜨린 후 과거 피사로 일행의 행적에 대해 경고를 했는데, 제국의 황제 앞에서 말도 안 되는 레케리미엔토를 낭독하며 극도의 긴장감을 겪던 발베르데는 책을 떨어뜨린 아타우알파를 가리키며 '하나님을 거부한 저놈들을 공격하라'고 소리치며 발광했다고 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했던 피사로의 원정대는 곧 전투를 시작했고 최소한의 수행 인원을 대동한 아타우알파는 무력하게 잡히며 잉카 제국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잉카제국의 황제와 스페인의 정복자의 첫 만남

잉카제국의 황제와 스페인의 정복자의 첫 만남 ⓒ North Wind Press


ANATOMY EPILOGUE

<아귀레: 신의 분노>는 인간의 광기를 다룬 영화다. 스페인 원정대가 전설의 황금 도시 엘도라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확고하다. 인간은 탐욕과 폭력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자신이 초래한 파멸은 어떤 형식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는가?

영화의 몇몇 부분은 보통 다른 영화에서 특정한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종종 쓰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극 초반 안데스산맥을 넘어 밀림의 초입에서 헤매는 장면에서 원정대는 노예화된 원주민에게 이렇게 외친다. "똑바로 해. 이 돼지들아!!" 이는 언뜻 보기에 서구 문화 우월주의로 보일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인간의 성품을 보여주는 일면으로 기능한다. 문화적 획일성과 우월감의 관점으로 극을 지탱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극 중반부터 출현하는 아마존 원주민을 바라보는 시선도 '미개인'이란 눈길로 경멸하기보다 단지 식인 문화를 언급하며 원정대가 처한 암울한 상황을 강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다. 작년부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미투 운동만 보더라도 권력과 금권, 성에 대한 왜곡된 욕망은 파멸의 구렁텅이로 가는 급행열차다.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남성 vs. 여성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부속된 소유물과 욕망의 집합체로 여겨졌다. 그런 관점에서 많은 영화는 순종과 저항의 간극 안에서 여성의 처우를 묘사하길 즐긴다. 하지만 <아귀레:신의 분노> 초반에 나오는 '보호받는 여성', 극 중반에 나타나는 '피해자로서의 여성'은 감독의 의도적인 묘사이기 보다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대적 장치이자 사람의 광기를 강조하기 위한 내러티브 요소라 여겨진다.
 
 영화 속 여성의 모습

영화 속 여성의 모습 ⓒ 백두대간


극 중 우루수아를 유폐한 후 새로운 허수아비 대장을 뽑을 때, 반대하는 자는 결국 폭력으로 처단하지만, 그 표면적인 형태는 선거라는 틀을 이용한다는 것, 우루수아를 처단할 때도 재판이라는 틀을 이용하지만 논리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 그리고 나중에 집단 전체가 미쳐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장면 등을 생각해 보면 나치로 대변되는 파시즘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감독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광기'와 '폭력'이다. 황금과 권력을 향한 탐욕, 그를 둘러싼 폭력, 그리고 파멸에 이르는 인간의 말로를 굉장히 짜임새 있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여준다. 시대적 배경과 여성의 처우 등 각종 요인에 대한 언급을 배제하고 오직 주제에 집중함으로써 아귀레의 이야기는 4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한다.
 
 광기와 폭력의 상징, 아귀레

광기와 폭력의 상징, 아귀레 ⓒ 백두대간


그런 시선의 연장선에서 내러티브를 공유하는 인물은 아마 윌리엄 셰익스피어 희곡의 주인공인 리처드 3세일 것이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아귀레와 리처드 3세를 이어주는 강력한 끈이다. 광기로 인한 파멸과 순간순간 보이는 순진무구함, 그리고 교활하고 단호한 악마의 마음은 시공간을 넘어 21세기를 사는 관람객이 공감할 만한 현대성을 지니게 된다.
 
 아귀레와는 또 다른 권력과 광기의 화신, 리처드 3세

아귀레와는 또 다른 권력과 광기의 화신, 리처드 3세 ⓒ Filipe Ferreira


과연 이 시대의 아귀레는 어디에 암약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멀리 찾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우리 모두일 수도 있기에...
 
 광기로 자멸하는 아귀레의 마지막 모습

광기로 자멸하는 아귀레의 마지막 모습 ⓒ 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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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건축, 예술, 문화에 대한 글을 쓴다. harry.jun.writer@gmail.com www.huffingtonpost.kr/harry-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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