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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농촌진흥청 산하의 농업과학기술원 농업다원기능평가팀은 8년의 연구 끝에 "농업의 다원적 기능 평가 – 연구성과 및 적용"이란 연구보고서를 발표합니다.

농민들이 농산물 생산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회에 기여한 가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보상받을 수 있도록 농업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WTO체제하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농업협상에서 농민들에게 최대한 유리한 협상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객관적 자료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2008년 6월. 쌀소득보전직불제를 시행하면서 드러난 부재지주의 직불금 부정수령 문제 등을 해결하고 농지 소유에 상관없이 실제로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농업관련 보조 사업과 지원을 하기 위한 농업경영체 등록제가 본격 시행에 들어갑니다.

2008년 10월. 대한민국 공직사회 '최대 스캔들'이라 불리는 쌀직불금 부정수급 사건이 당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폭로로 시작됩니다. 감사원이 2008년 11월 26일 쌀직불금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제출한 보고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쌀직불금을 수령한 99만8000명 중 벼 수매 실적이나 비료 구매 실적이 전혀 없어 실경작자가 아닐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28만명, 그 중 농업 외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총 17만 3497명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회사원 9만9천명, 공무원 3만9971명, 공기업 임직원 6213명,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2143명, 금융계 종사자 8442명, 언론계 종사자 463명이 직불금을 수령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공무원의 쌀 직불금 부정수령 사실이 밝혀질 경우 직불금 환수와 파면·해임 등 법적 징계절차를 밟고, 2005년 이후 쌀 직불금 수령자와 2008년 신청자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쌀 직불금 부정수령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저에게 2008년은 희망과 좌절 그리고 분노를 뼈저리게 경험한 특별한 해였습니다.

농업의 다원적 가치는 그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자마자 무시됐고, 농업경영체 등록제도는 시행한지 6개월 만에 부재지주들의 압력으로 기존의 농지원부와 똑같은 수준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직불금을 부정수령한 공무원들을 파면하고, 직불금 수령자들을 전수조사 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10년이 지나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현 정권에서는 2008년이 남겨준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비관적입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있는 고위공직 예비후보자 사전질문서
 청와대 홈페이지에 있는 고위공직 예비후보자 사전질문서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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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있는 고위공직 예비후보자 사전질문서 중 농지관련 질문 문항입니다. 작성 요령을 알려주는 예시문을 보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예시) 경기 양평 00면 00리 33-21, 田 2,000㎡, 주말농장용, 13.1~現, 매매, 취득가 2억원

청와대는 주말농장용으로 2000㎡의 밭을 사는 것이 농지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듭니다.

(농지법 제7조. 농지 소유 상한 ③주말·체험영농을 하려는 자는 총 1천제곱미터 미만의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 이 경우 면적 계산은 그 세대원 전부가 소유하는 총 면적으로 한다.)

사실 농업문제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청와대보다 더 큰 문제는 농업 현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농업·농촌을 부업거리나 투기의 대상으로 여기는 공무원들의 존재입니다.

개인적으로 작년 말부터 농림부와 국무조정실, 국민권익위에 친환경직불금을 부정수령한 공무원들의 소속과 실명을 적시하여 정보공개 신청과 부패행위 신고를 했음에도 늘 다른 기관에 책임을 떠넘기는 답변만 돌아온 것을 보면 2008년에 적발됐던 공무원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농림축산식품부 2018 업무보고
 농림축산식품부 2018 업무보고
ⓒ 농림축산식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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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부터 10년 넘게 농가당 연간 농업 소득이 천만원 수준인 현실에서 공무원이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고 농사를 짓는 것은 공무원법과 농지법을 위반한 범법 행위이며, 공무원들의 눈치를 보며 보조 사업이나 지원을 받아야 하는 농민에게는 자괴감을 안겨주는 행위입니다.

현행 농업경영체 등록제도는 농업·농촌에 관련된 융자·보조금 등을 지원받으려는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농가 중 300평 이상 농사짓는 농가가 자발적으로 등록 신청을 하는 것입니다. 즉 공무원들이 농업경영체 등록은 하는 것은 농업 관련 융자·보조금 등을 지원받기 위해 국가공무원법 제64조(영리 업무 및 겸직 금지)조항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5조(영리 업무의 금지)를 어기는 위법행위를 고의로 한 셈인 것입니다. 

AGAIN 2008!!!

농업·농촌은 토지공개념 정착의 최후의 보루이자 지대개혁의 최전선입니다.
2015년 전체농지 중 임차농지의 비율이 51%에 달한다는 통계청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헌법상의 경자유전의 원칙과 농지법이 얼마나 유린되었는지 보여주는 통계입니다. 비록 토지공개념의 원칙이 반영되지 않은 현행 헌법과 농지법이나마 엄격하게 적용해 더 이상 농지가 투기의 대상으로 이용되거나 상속세, 양도세 탈세의 수단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처리할 과제는 농업경영체 등록을 한 공무원들을 처벌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농업경영체 등록을 한 모든 농가에 대한 전수 조사를 통해 실제로 농사 짓지 않는 사람들을 가려낸다면 부재지주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인정해 농민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부재지주 청산 과정에서 환수해야 할 부당 이득금과 탈루 세금을 농업의 다원적 가치에 대한 보상에 활용한다면 도시민들이 별도의 세금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농민연금이나 기본소득제의 기본적인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그:#직불금 부정수령, #농업경영체등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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