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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시가 들어설 파주 목동리 일대. 이미 건설된 아파트단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땅이 강제수용될 예정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결혼 10년차에 접어든 직장인이다. 20대는 물론 현재까지 돈버는 것에는 재주가 없고, 많이 벌 생각도 없이 살아왔다. 그렇다고 부모에게 물려 받을 재산도, 상속받을 땅도 없다. 20대 후반에 무일푼으로 결혼했다.

재테크? 너무 먼 얘기다. 서울에서 박봉으로 네 식구가 살아가니 다달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해가 갈수록 아내의 한숨소리가 늘어갔고, 아들 둘이 커가면서 돈이 제법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별 불만 없이 살아왔다.

겁도 없이 내집 마련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까닭

그런데 언제부턴가 고민거리가 생겼다. 너무 이사를 많이 다니게 되었던 것이다. 결혼후 이삿짐을 싸고 풀기를 벌써 예닐곱번은 한 것 같다. 빈 손으로 결혼한 탓에 '조건'에 맞는 곳을 찾아 1~2년마다 전셋집을 옮겼다. 마음에 들어서 살만 하면 전세값이 올랐다. 어떤 집은 여름엔 따뜻(?)하고, 겨울엔 시원(?)해서 오래 살기가 힘들었다.

큰애가 학교에 들어가고 30대 중반을 넘어서니 고민은 깊어졌다. 무능한 남편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늘어갔다. '언제까지 이사를 다녀야 하나. 애들 학교도 옮기지 않고, 직장 출퇴근 문제도 신경 안 쓰면 좋으련만….' 집없는 설움같은 건 없었지만 더 이상 집 문제로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이사 다니지 않고, 한군데서 단란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없을까."

내가 작년에 '겁도 없이' 내집 마련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건 그래서였다. 그러던 내게 기회가 왔다. 작년 가을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파주에 2007년 5월 입주할 아파트 분양을 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가 그 유명한 '8·31 대책'이 나온 직후였다.

'종합부동산세 과세기준 6억으로 조정', '양도소득세 1가구 2주택 실거래가 과세',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 연장', '개발이익 환수'.

집없는 나로서는 종부세, 양도소득세, 1가구 2주택, 실거래가, 분양권 같은 말들이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세력이 주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던 것을 보면, 8·31 대책이 당시만 해도 부동산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었다.

8.31 직후, 동료들이 외면한 파주 아파트를 선택하다

그 때 동료들은 분양 소식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다들 투자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부동산 전문가를 자처하는 한 동료는 "파주는 한강 이북이라 오를 가능성이 없다"고 진단을 내렸다. "부동산으로 돈 벌려면 요즘 같은 때는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내집 마련의 꿈은 흔들리지 않았다.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내가 관심을 갖은 것은 투자 가치가 아니었다.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곳이라면 그것으로 대만족이었다. 파주가 우리 가족에겐 생소한 곳이고, 서울과 멀기는 했지만 복잡한 도심보다는 주건조건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 때부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까지 이집 저집 전전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아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이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아내도 결국 내 손을 들어줬다. 동료들이 파주를 '외면'하자 나는 오히려 잘 됐다고 여겼다. 무주택자 중에서 근무기간 순으로 아파트 분양을 받는 특성상 내 경력으로 직장에서 아파트 분양을 받기란 불가능했다. 파주가 아닌 다른 곳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더 있어야 내 차례가 돌아왔을 것이다.

파주 신도시 발표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지만

분양 결과는 당연히 미달. 작년 10월, 결국 나는 절반도 분양이 되지 않은 아파트를 선택하게 되었다. "현실을 모르는 무모한 투자"라며 마음을 돌리라는 조언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올해 2차 분양이 있자 사정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파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약발도 떨어졌고, 파주 쪽도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지난 7월 2차분양 때는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부동산이란 게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동안 이렇게 상황이 바뀔 수도 있을까 싶었다.

한 달전인 10월 27일 정부가 검단, 파주신도시 계획을 발표하자 사정은 또 달라졌다. 언론에선 "검단과 파주 지역 아파트가 하룻밤 사이에 몇 천만원이 올랐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동료들의 태도도 돌변했다. 이제 집값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나에게 한 마디씩 던진다.

"좋겠네. 잘하면 팔자 고치겠어."
"부동산에 문외한이더니 한 건 했네. 소 뒷발로 쥐잡은 격일세."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아파트를 놓고, 잔금 치를 걱정 뿐인 나에게 얼마를 벌었으니 밥을 사야한다고 부러움섞인 말을 건넬 때 난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마치 내가 "역시 재테크는 부동산 투자죠"라는 말이 나오길 기대하는 듯하다. 얼떨결에 분양 미달된 파주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가 신도시 발표로 집값이 올랐다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뭐가 좋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집값이 올라서 돈을 벌려면 자기 집만 올라야 한다. 그게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도 그렇지 않다. 며칠전 드디어 서울 전체가 투기지역으로 지정되었다는 발표도 나왔다. 강남이건 강북이건, 수도권이건 지방이건 땅값, 아파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다.

내 집 마련했다지만, 마이너스 인생 언제쯤 끝날까

난 집을 마련하기 위해 본격적인 마이너스 인생을 자처하게 되었다. 설사 내 봉급의 절반을 고스란히 바친다고 해도 다 갚는데 몇 년이 걸릴 지 알 수 없다. 집값이 오른다고 돈이 수중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삶의 여유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게 그대로이다. 그렇다고 누구처럼 부동산을 놓고 '갈아타기'를 계속해서 차익을 남겨서 돈을 벌 능력도, 의사도, 시간도 없다.

얼마전 주택공급 확대와 대출 규제를 골자로 한 11·15 대책이 발표되었다. 그러자 부동산 시장이 다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 거래가 줄고, 집값 상승도 꺾일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이젠 동료들이 나에게 파주 아파트 값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겠냐고 물어올 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는 나에게 "서울을 한 번 벗어나면 다시 진입하기가 너무 힘든데 잘 생각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어쩌면 내가 다시 서울로 들어올 때는 다시 전세살이를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달리 생각해보면, 무리를 해서라도 집장만을 하지 않으면 평생 전세살이를 벗어날 수 없는 대다수 서민들의 심정은 오죽하랴.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 어쩌면 나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르는 집값, 마다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난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집값이 오르건 떨어지건 서민들의 삶이 힘든 건 마찬가지다. 다달이 갚아야 하는 대출금, 도대체 몇 년만에 다 갚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집 한 채 마련하는 게 평생 소원이라면 그게 정상인 사회일까. 마치 내집마련이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된 듯하다. 모두들 부동산 정책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라, 집값으로 보통사람 연봉의 몇 배를 순식간에 거머쥐는 세상, 며칠 만에 오르고 내리는 부동산 가격에, 부동산정책에 울고 웃는 사람들, 참 암담하다.

대다수 서민에게 집은 투자대상도, 투기대상도 아니다. 그저 식구끼리 단란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일 뿐이다. 집은 그냥 집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내가 겪은 집값·전세값 폭등>에 공모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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