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V리그 챔피언 대한항공이 컵대회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박기원 감독이 이끄는 대한항공 점보스는 14일 제천 체육관에서 열린 2018 제천·KAL컵 남자프로배구대회 조별리그 B조 우리카드 위비와의 경기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세트스코어 2-3(22-25,25-17,25-21,19-25,13-15)으로 패했다. 같은 날 삼성화재 블루팡스가 일본의 초청구단 JT선더스를 3-0으로 꺾으면서 대한항공은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지난 시즌 V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던 미차 가스파리니가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대한항공은 국내 선수들로만 대회를 치렀고 1승2패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아무리 가스파리니가 없었다 해도 대한항공의 두꺼운 선수층을 고려하면 다소 아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컵대회에서 대한항공에게 수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시즌 데뷔 후 최악의 부진에 빠졌던 '라면' 김학민의 부활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뛰어난 탄력과 체공력 자랑하는 대한항공의 토종거포
 
 김학민은 2010-2011 시즌 정규리그 MVP에 선정될 정도로 V리그를 대표하는 토종거포로 활약했다.

김학민은 2010-2011 시즌 정규리그 MVP에 선정될 정도로 V리그를 대표하는 토종거포로 활약했다. ⓒ 한국배구연맹

 
대한항공은 V리그 출범 후 3년 연속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따냈다. 하지만 2006년 신인 드래프트는 수련 선수를 포함해 남자부 11명, 여자부 12명만 프로 무대를 밟았을 정도로 '흉년'으로 꼽혔고 대한항공은 '그나마' 가장 공격력이 좋은 경희대의 라이트 공격수 김학민을 지명했다.

하지만 당시 대한항공에는 두 시즌 연속 득점 2위에 오른 브라질 출신의 외국인 선수 보비가 있었다. 2006-2007 시즌 25경기에서 229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에 올랐지만 김학민 역시 여느 유망주들처럼 생존을 위해 레프트로 포지션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서브리시브나 수비에서는 큰 강점이 없던 김학민은 그렇게 '그저 그런 백업 선수'로 남는 듯했다.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한 1순위 선수였던 김학민은 다소 부족한 수비력을 상쇄하는 탁월한 점프력과 체공력, 그리고 블로킹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심장으로 극복했다. 입단 3년 차가 되던 2008-2009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자리를 차지한 김학민은 2012-2013 시즌까지 대한항공의 토종거포로 활약하며 세 번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한 번 점프하면 라면을 끓여 먹고 내려온다'는 뜻으로 '라면'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특히 선수로서 전성기에 도달했던 2010-2011 시즌에는 55.65%의 공격 성공률(1위)을 기록하며 삼성화재의 가빈 슈미트를 제치고 정규리그 MVP에 선정됐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그 시절 챔피언 결정전에서 3년 연속 삼성화재의 벽에 막혀 V리그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했고 서른에 접어든 김학민도 2012-2013 시즌을 끝으로 상근예비역으로 입대했다.

종목을 막론하고 나이가 꽉 찰 때까지 입대를 미룬 선수들은 전역 후 입대 전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김학민은 전역 후 첫 풀타임 시즌이었던 2015-2016 시즌 524득점을 올리며 건재를 과시했고 2016-2017 시즌에는 57.12%의 공격성공률로 개인 통산 2번째 공격 성공률 1위에 올랐다.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높은 V리그에서 2번 이상 공격 성공률 1위에 오른 선수는 이경수와 박철우(삼성화재), 그리고 김학민뿐이다.

컵대회 통해 부상회복과 공격력 건재 확인, V리그 조커 활약 기대
 
 지난 시즌 부상으로 첫 우승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 김학민은 컵대회를 통해 건재를 확인했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첫 우승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 김학민은 컵대회를 통해 건재를 확인했다. ⓒ 한국배구연맹

 
대한항공은 김학민이 맹활약한 2016-2017 시즌 정규리그 우승으로 챔프전에 직행하고도 챔피언 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게 패하며 또 한 번 준우승에 머물렀다. 대한항공은 2017-2018 시즌을 앞두고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가스파리니를 선발했고 대한항공은 다시 한 번 가스파리니와 김학민, 정지석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공격 라인을 완성했다.

대한항공은 2017-2018 시즌 5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V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가스파리니, 정지석과 함께 대한항공의 삼각편대로 활약한 선수는 김학민이 아닌 곽승석이었다. 시즌 초반부터 발목 부상으로 고전했던 김학민은 정규리그 28경기에 출전했지만 107득점에 그쳤고 챔프전에서는 3경기에서 원포인트 블로커로만 출전하며 단 한 번의 공격시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어느덧 30대 중반의 노장이 된 김학민은 2016-2017 시즌에 비해 1/4에도 미치지 못하는 득점에 그치며 은퇴가 임박한 듯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이 끝난 후 재계약한 외국인 선수 가스파리니가 세계선수권대회 참가로 컵대회 출전이 불가능해지면서 김학민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박기원 감독이 가스파리니의 자리인 라이트 공격수에 김학민을 투입한 것이다.

서브 리시브의 부담을 덜고 공격에만 전념한 김학민은 3경기에서 블로킹 9개와 서브득점 3개를 포함해 57득점을 올리며 정지석(64점)에 이어 팀 내 득점 2위를 기록했다. 물론 50%가 넘는 공격성공률을 손쉽게 기록하던 전성기에 비하면 49.45%의 공격성공률은 만족스럽지 못하겠지만 특유의 탄력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공격력 만큼은 여전했다. 무엇보다 발목부상의 부담을 털어내고 2경기 연속 풀세트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다는 점이 가장 고무적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두 시즌 동안 공격력이 좋은 신영수(은퇴)를 전위에 교체 투입해 주전들의 체력을 관리하고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누린 바 있다. 비록 전성기 같은 활약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김학민 역시 그 정도의 조커 역할은 얼마든지 소화할 수 있다. 그리고 박기원 감독이 김학민의 장점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한다면 '디펜딩 챔피언' 대한항공은 다가오는 2018-2019 시즌에도 우승후보로 군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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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제천·KAL컵남자프로배구대회 대한항공점보스 김학민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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