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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 하나에 50kcal면 오늘 4개 먹었으니까…'

추석 연휴에 하릴없이 들어간 SNS에는 손쉽게 접하게 되는 정보들이 있다. 송편, 전, 갈비 등 명절 음식들의 칼로리를 알기 쉽게 정리한 것들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밥 한 공기를 기준으로 비교하기도 하고, 전문가 권장 칼로리에 비해 얼마나 과한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는지 친절히 알려주기도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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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사진을 본 이후로 명절 음식을 먹을 때면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들의 칼로리가 얼마쯤인지 나도 모르게 속으로 셈을 했다. 아침에 거울을 보며 지난 밤보다 조금 더 붓지 않았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왠지 전날보다 조금 퉁퉁해진 듯한 기분이 들면 '오늘은 조금만 먹자'고 습관처럼 다짐했다.
  
내 몸의 기본값은 마른 몸?

그런 다짐과 더불어 집안 어른들의 가벼운 농담들이 마음에 꽂혔다. 명절 음식이니 양껏 맛있게 먹으라고 하면서도 "역시 다이어트 중이라 많이 안 먹는구나", "지금 먹고 남산 몇 바퀴 돌고 와라" 하는 말들이다.

나의 몸은 어쩐지 고칼로리의 명절 음식을 먹어서 붓기 전의 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살이 찌지 않은, 그런 몸매가 언젠가부터 내 몸이 가져야 할 기본값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 관리'라는 말을 할 때도 늘 그 목록에 '다이어트'를 끼워 넣었다. 스스로를 더 나은 '여성'으로 관리하는 방법 중 몸매유지는 늘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일종의 '다이어트 명령'이었다.

여성으로서의 나는 특히 그러한 명령에 강박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회의 기준에 나의 몸이 부합하지 않으면 부끄러움이나 위기감 같은 것을 느꼈다. 계속해서 마르고 싶었다. 나의 건강을 위함이라고 대충 둘러대곤 했지만 사실은 몸에 살이 붙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른 몸에는 죄가 없다

어쩌면 내가 신체를 단련하는 것에 대한 욕구가 큰 탓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사회의 명령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 욕구가 만든 강박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욕구조차 정말 나의 것인지 헷갈린다. 내가 신체를 단련함에 주체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들 그 '단련된 신체'라는 형태는 늘 사회가 받드는 '예쁜' 몸과 맞닿아 있었다. 

나는 그것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마른 몸을 우상화함에 나를 보태게 될까 봐 차마 당당히 "나의 의지"라고 외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다시 곱씹어보아도 운동을 하고 식단 조절을 해서 신체를 가꾸는 것에는 죄가 없다.

여전히 나는 다이어트가 자신을 표현하는 한 방식일 수 있다고도 믿는다. 다만 그러한 '주체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여성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기엔 이미 여성의 마른 몸이 너무도 대상화되어 있지 않은가.

그 결과 나는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강박적인 다이어트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이고, 나의 몸은 나의 것이라 외치며 주체적으로 몸을 가꾸는 실천을 하더라도 결국은 늘 죄책감이 뒤따랐다. 혹여 그것이 페미니즘에 반하는 행위가 되어버릴까 염려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다이어트에 고통 받는 것도, 그것으로부터 탈피하려 애쓰는 것도, 그 탈피의 과정을 다시 검열하는 것도 내 몫처럼 느껴졌다.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살이 찌든 아니든 그것 때문에 남이 나를 깎아내릴까 걱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지금 나를 감싸 안고 있는 이 사회 구조 속에서는 이 걱정이 정말 내 것인지 아닌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언젠가 내 몸을 정말 '온전한' 나의 것으로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역시 나는 모른다. 그저 추석음식을 앞에 두고 SNS에 떠돌아다니는 음식 칼로리의 숫자 셈들이나 다이어트 자극 영상, 때맞춰 쏟아져 나오는 다이어트 약품 같은 것들을 전보다 재빠르게 넘기는 수밖엔 없다. 풍요로운 명절, 상다리는 휘어지지만 내게 허용된 음식은 한 접시에 불과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청년언론 <고함20>에서 발행되었습니다.


태그:#추석, #명절, #다이어트,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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