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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그리고 고민

서울이란 곳에 정착한 지도 만으로 6년하고도 5개월이 되었습니다. 백일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안고 올라왔는데 어느덧 시간은 흘러 이 아이가 2일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지방에 살다 서울에 오니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 재간이 없어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먹고 사는 것 까지는 혼자서 어떻게든 하겠는데 도시적 삶이란 것이 먹고 사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항상 뒤에 남습니다.

▲ 학기 초가 되면 정말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됩니다.
ⓒ 유지웅
남들 하는 것도 해 봐야 하고 남들 입고 쓰는 물건들도 나도 입어 보고 써 보기도 하고 그래야 좀 위안이 됩니다. 어차피 소비와 경쟁을 부추기는 시대에 나 아닌 사람들과 비교하며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사람의 마음이겠지요. 더구나 대한민국 하고도 서울이란 곳은 그 극성스러움이 더할 수밖에 없겠지요. 교육 문제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어쨌든 서울에 올라올 때 백일도 안 되었던 아들이 맞벌이하는 부모 밑에서 잘 자라 주었고 학교에 입학하는데, 입학 전부터 저 혼자의 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은근한' 부담이 밀려오더군요. 아내의 친구들과 누나들, 동네 아주머니들로부터 시시때때로 들려오는 학교에 관한 '전설'들을 듣노라면 모골이 송연해질 때도 있습니다. 다름 아닌 '촌지' 때문입니다.

강남의 어느 지역은 얼마가 기본이고 강북은 얼마며 지역마다 집의 구조(아파트인지 주택인지)가 미치는 영향에 따른 금액. 그리고 선생님들의 반응과 그에 따른 대처 방법 등 좌우간 촌지에 얽힌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전설의 고향을 시리즈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초보 학부모에게 들려오는 촌지 괴담

그래도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1. 선생님이 어느 날 전화를 한다. 그러고는 아이가 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는다. 그러면 부모는 선생님이 말한 문제를 해결하러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 빈손으로? 아니! 봉투 들고.

2. 아이가 학교를 잘 갔다 와서는 엄마한테 말한다.

"엄마. 선생님이 다른 애들한테는 잘한다는 말을 하는데 나한테는 그런 말을 안해. 그리고 자꾸 나한테 벌을 주기만 해."

다음날 열일 제쳐 놓고 엄마는 학교를 갈 수밖에. 빈손으로? 아니! 봉투 들고.

3. 다 필요 없다. 학교 입학할 경우 선생님을 한 번은 만나야 한다. 대부분은 선물이든 봉투든 들고 간다. 그러면... 받는다.


아내와 저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가지고 논의했습니다. 아들의 담임 선생님이 '참 좋은 선생님'일 경우, 그리고 적극적이진 않지만 주는 것 거절하지 않는 선생님일 경우, 마지막으로 최악의 시나리오이긴 한데 촌지도 적극적이고 그에 따른 상벌이 분명한 선생님일 경우 이렇게 세 가지 정도로 경우의 수를 가지고 놓고 의견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나 아내는 촌지가 통하는 사회를 바라지 않을 뿐더러 촌지를 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시나리오 중 어떤 경우도 저희가 촌지를 건네는 가정은 하지 않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번째 선생님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참 난감하더군요.

전설의 고향 시리즈 중 가장 압권이었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너무 밝히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도저히 부담되고 부당한 생각도 들고 그래서 대들었다가(?) 아이 전학시키고 선생님은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론은 선생님은 여간해서 크게 다치는 경우는 없지만 아이는 많이 다칠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촌지, 정말 학부모의 잘못인가요?

"자기 자식만 잘 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발상의 극치다."

어떤 교육학자의 말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돈을 받는 선생의 문제보다는 돈을 건네는 학부모들이 더 큰 문제다."

어떤 선생님의 하소연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문제의 본질은 학부모라는 이야기겠지요. 그러나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어린 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위해 학교로 가는 이상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야 할 의무가 선생님들에게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칼자루는 선생님이 쥐고 있습니다. 학부모의 이기적인 욕심이 담긴 봉투든 선생님의 욕심이 불러온 봉투든 선생님들이 정중하게 돌려주고 안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실은 그런 훌륭한 선생님들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든 '일부'라는 단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지요. 학부모들의 이기심을 말하기 전에 자기의 욕심은 없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우리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출근하느라 아이의 입학식도, 아이의 담임 선생님도 뵙지 못했지만 제 고민은 아직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아직 어떤 것을 단정 짓기엔 너무 이른 계절입니다. 조금 더 겪어 봐야겠지요.

지금 저의 고민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학부모들의 공통된 고민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단지 저만의 기우이기를 또한 바랍니다. 그저 과거에는 많이 그랬었지만 지금은 전설 속의 이야기이기만을 아울러서 바랍니다. 그럼 제 고민도 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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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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