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니멀> 메인포스터 영화 <애니멀> 메인포스터

▲ 영화 <애니멀> 메인포스터 영화 <애니멀> 메인포스터 ⓒ 부산국제영화제


01.

아르만도 보 감독은 생소한 이름과 달리,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 전에는 <비우티풀>의 각본을 통해 죽음을 선고 받은 한 남자의 애틋함을 그려내며 긴 여운을 남긴 바 있다. 역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과의 작업이었다. 두 작품을 모두 관람한 사람이라면 이제 더 이상 그 실력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직접 연출한 작품은 어떨까? 영화 <애니멀>은 아르만도 보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으로, 각본 역시 그가 직접 썼다.

이번 작품은 육류가공회사의 생산라인을 관리하는 안토니오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호화로운 삶은 아니지만, 성실히 쌓아 올린 시간과 노력으로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낸 가장. 그런 그의 삶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무너지고 만다. 신장 이식을 받지 못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장을 이식 받는 일은 쉽지 않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혈액을 투석 받으며 기다려 보지만 신장 이식을 대기 중인 명단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아들 토미는 수술 받기를 거부한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불법 장기 매매라는 새로운 방법이 나타나고,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 <애니멀> 스틸컷 영화 <애니멀> 스틸컷

▲ 영화 <애니멀> 스틸컷 영화 <애니멀>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2.

이 영화의 오프닝은 주인공인 안토니오가 평범한 가정의 아버지임을 보여주는데 충실하고자 한다. 아내에게는 물론, 자식들에게까지 한없이 친절하고 젠틀한 아버지의 모습. 매일 아침 확인하는 금연 날짜 역시 그가 얼마나 성실한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오프닝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더욱 진한 그림자를 남기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이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말기 때문이다. 안토니오의 건강 문제로 인해서 말이다.

문제가 생긴 이후에도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던 그의 삶은 신장을 이식 받지 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의해 점차 조이기 시작한다. 약 712일. 2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버텨왔지만, 아들이 기증의사를 거부하고, 함께 투석을 받던 환자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가 불법 이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자신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왔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정작 자신의 목숨이 걸린 문제에 대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지금 이 상황 자체에, 어떤 노력으로도 보장받지 못하는 건강에, 하염없이 대기자만 기다려야 하는 시스템에 회의가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03.

불법적인 장기 이식을 선택하는 것도 문제이기는 하나, 그에게 신장을 떼어주겠다는 엘리아스와 그의 여자친구 루시의 태도는 더욱 큰 문제를 만든다. 조금씩 더 큰 보상을 원해오던 그들의 요구는 이내 그와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을 넘보는 문제에 이르게 되고, 눈 앞으로 다가온 장기 이식의 가능성 앞에 안토니오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스스로의 삶을 구하기 위한 목적은 곧 맹목적인 믿음이 되고, 그 실체 없는 믿음은 거짓이 되어 앞으로 나아간다. 거래의 균형은 점차 무너지게 되고, 안토니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존재, 동물(Animal)의 모습이 되어간다.

여기에 문제를 더 하는 것은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에게는 아내 수잔에 세 자식까지 딸린 가족이 있다. 그의 생사 여부는 가족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엘리아스와 루시의 과도한 요구 역시 마찬가지다. 안토니오가 자신의 목숨을 어찌하는 일에만 매달려 이성을 잃은 후에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아내 수잔은 이 거래가 불법이라는 사실에 반대하며 필요에 의한 교환이지만 정당하지 않다는 논리를 세우지만, 안토니오의 귀에 그 말은 곧, 이 작품의 오프닝에 등장했던 과거 자신의 노력의 대가가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변질되어 들리기 때문이다.
 
영화 <애니멀> 스틸컷 영화 <애니멀> 스틸컷

▲ 영화 <애니멀> 스틸컷 영화 <애니멀>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4.

어떤 인물의 선택이 옳은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은 분명히 아니다. 각자의 사정에 의해 다른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영향을 받을 수 없는 우리의 삶이 이 영화 <애니멀>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안토니오의 가족을 벼랑 끝으로 내몰던 엘리아스와 루시 커플 역시 그들이 원하던 목적이 곧 닿을 위치에 놓이게 되자 서로 조금 더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기 위해 욕심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상황이 복잡해지기는 했으나, 그 누구에게도 면죄부를 쥐어줄 수는 없을 것 같다. 비록 자신의 목숨이 걸린 문제라 하더라도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도 불사하는 이에게도, 타인의 절망적인 상황도 자신의 현재 안위를 위해서는 이용하고자 하는 이에게도 인간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지 않나.

05.

아르만도 보 감독은 자신의 첫 번째 작품 <라스트 엘비스>에서도 역시 둘 중 어느 하나의 삶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주인공을 밀어넣은 바 있었다. 무대 위 화려한 스타의 삶을 선택할 것인지,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삶을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가 지난 작품의 딜레마였다면, 이번 작품 <애니멀>에서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을 선택할 것인가, 혹은 독립된 주체로서의 자신을 선택할 것인가의 딜레마가 남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감독은 하나의 선택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를 어렴풋이 보여준다. 완전히 열린 결말이 아니라,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단서를 남겨 놓는 것이다. 이 또한 어떤 선택이 옳은가에 대한 가치 판단은 보류되어 있는 듯하다. 그저 그가 그런 선택을 했기에 우리는 가늠할 뿐이다. 안토니오는 과연 어떤 삶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영화 무비 애니멀 부산국제영화제 아르만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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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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