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카인드 리와인드> 비디오 가게 전경

<비카인드 리와인드> 비디오 가게 전경 ⓒ 뉴라인씨네마


노스텔지어에 젖어

블루레이의 시대에 DVD도 아니고 VHS 대여점은 어쩐지 시대착오적이다. 이 영화는 VHS만 빌려주는 '비카인드 리와인드' 대여점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 지나간 시대에 대한 노스텔지어에 강하게 기대고 있다. VHS만 고집하는 대여점 주인 플레쳐(대니 글로버)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가게에 어떤 영화가 있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고 손님의 신상정보도 다 외울 정도다.

동네 비디오 대여점도 과거의 산물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인터넷 영화, 우편 대여에 밀려 동네 비디오 가게는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되감기를 할 필요없는 디브이디에 열광하는 동안 플레쳐는 비디오가 영원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2006년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더이상 VHS로 출시되지 않았다.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틴 셈이다.

기술에 대한 향수만 아니라 영화 전체가 노스텔지어다. 허물어져가는 플레쳐의 가게는 이미 도시 재개발계획에 포함되어 새로운 건물로 변신할 예정이다. 보수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면 가게를 그냥 내줘야 한다. 낡은 건물에 대한 애착은 그의 재즈 음악에 대한 사랑과 유사하다. 그는 특히 20~30년대 스윙재즈시대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팻츠 왈러의 굉장한 팬이다. 그는 이 건물이 팻츠 왈러와 깊은 인연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신축건물, 신기술 디브이디의 공세에 밀려 과거로 사라질 처지인 비디오 대여점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곳이다. 이 비디오 대여점이 위치한 도시 퍼세이익(Passaic)도 과거의 흔적이 가득한 곳이다. 이 도시는 뉴욕에서 불과 16킬로미터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1931년 미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다. 그래서 텔레비전의 탄생지로 알려졌다.

미국 원주민 말로 계곡이란 뜻의 이 도시의 역사는 1679년으로 거슬러 갈 정도로 오래되었다. 19세기 공업의 중심지로 섬유, 철강업이 발달했다. 지금은 인구가 6만 7천명 정도로 과거의 영광에 비해 쇠락한 흔적이 역력하다. 도시 전체가 과거, 역사의 느낌이 강하게 살아있는 곳이다.

향수가 판타지로 바뀌다

 고스터 버스터즈로 분장한 마이크(모스 데프)와 제리(잭 블랙)

고스터 버스터즈로 분장한 마이크(모스 데프)와 제리(잭 블랙) ⓒ 뉴라인씨네마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영화로 머무르지 않는다. 플레쳐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살아남으려고 여행을 떠난다. 아들처럼 여기는 마이크(모스 데프)가 그가 떠난 사이에 가게를 돌보게 된다. 플레쳐가 떠난 사이 대여점에서 일어난 일이 이 영화의 중심이다. 이곳에서 판타지가 드디어 시작된다.

마이크의 친구이자 비디오 대여점의 열혈고객인 제리(잭 블랙)는 우연한 사고로 몸에 전자기장이 흐른다. 그걸 모른 채 대여점 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가게 비디오를 다 지워버린다. 대여점을 고객을 만족시키려고 마이크와 제리는 지워진 비디오의 영화를 다시 찍는다. 가정용 캠코더와 고물상 소품으로 찍은 그들의 작품은 유튜브에 올라오는 아마추어 작품과 유사하다.

마이크와 제리는 영화의 대본을 모두 외울 정도로 영화광이다. 영화에 대한 기억으로 재구성한 장면을 주어진 여건에 맞춰 대충 찍은 작품이었지만 오히려 고객들은 이에 열광한다. 보통의 고객이라면 환불을 요구할 상황이다. 디브이디로 영화 보는 시대에 지나간 비디오로 영화를 빌려보는 고객이라면 이들도 영화광일 확률이 높다. 원작을 B급 영화판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니 영화광을 자극할만하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판타지다. 영화를 보는 두시간 정도 현실에서 벗어나 판타지의 세계로 빨려든다. 리메이크 제작에 빠진 마이크와 제리는 현실의 노동자의 삶을 벗어나 마음껏 영화 속 캐릭터가 되어 자유를 즐긴다. 하지만, 이들의 판타지는 현실과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다. 지워진 영화 원본이라는 과거와 겹쳐진 판타지일뿐이다. 마이크와 제리가 아무리 고스트버스터스가 되어 귀신을 혼내준다고 해도 현실은 비루하다. 비디오 가게의 점원과 자동차 수리공 등 노동자계급이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쪽짜리 판타지일지라도 이는 희망을 부르는 마법이다. 비록 영화가 현실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영화만으로 충분한 세상이다. 영화보는 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영화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또 위안을 받는 기능까지 무시할 수 없다. 영화는 희망도 보여주고 절망도 직면하게 한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아마추어 영화처럼 누구나 만들고 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희망적이다. 꿈은 계급에 상관없이 꿀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들이 만든 영화는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현실에 절망한다. 꿈을 꾸는 것과 그걸 현실로 실현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과거와 화해

 영화 촬영 중인 제리와 마이크

영화 촬영 중인 제리와 마이크 ⓒ 뉴라인씨네마

미셸 공드리 감독은 전작 '이터널선샤인'처럼 이 영화에서도 환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세상을 담았다. 퇴거 명령, 신기술의 위협, 동종업체의 경쟁,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현실이 마이크와 제리의 영화 만들기를 계속해서 방해한다.

제작현실과 끊임없이 싸우거나 타협해야하는 전문 영화작업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노스텔지어와 판타지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재즈시대의 과거를 기억하는 노인의 가게에서 미래의 로보캅이 돌아다닌다. 유쾌한 전복으로 영화는 점점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비카인드 리와인드 가게는 과거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해준다. 선진, 발전이라는 명목아래 이뤄지는 도시계획이 얼마나 폭력적 행위인지 알려준다. 낡고 허물어져가는 과거의 건물에 사는 사람의 기억을 하찮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다. 과거의 기억이 가진 소중함도 보존할 가치가 있다. 폭력으로 과거를 지우는 행위와 영화촬영으로 과거를 보존하는 작업이 이 영화 속에서 대립하고 있다.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의 가치는 과거에서 비롯된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과거의 사건, 인물에 대한 기록과 상상이 중요하다. 마이크와 제리는 과거의 영화를 되살리는 작업을 한다. 사라져가는 것들은 아름답게 절절하게 기억하는 방식으로 영화만한 것이 없다. 이들은 영화로 과거와 화해하고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시네마천국'에서 사라지는 극장의 기억 때문에 가슴 아팠다면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 비디오 대여점의 추억 때문에 아릴 것이다.

왠지 이 영화는 VHS로 봐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DVD로 봤다. VHS에 대한 정서가 가득 담긴 영화를 DVD로 보니 기분이 묘하게 역설적이다.

덧붙이는 글 2009년 1월 8일 한국개봉 영화입니다.
비카인드 리와인드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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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기자는 미국 포틀랜드 근교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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