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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드는 추세를 읽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런저런 일로 가을여행을 늦추다보면 단풍이 훅 져버려 허탕 치는 일이 많다. 단풍의 남하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절정 시기를 예상하기가 어렵다. 이미 강원도 단풍놀이는 시작돼 다음 계절로 바통을 넘겨줄 준비를 하는 듯하는데... 남하 하는 단풍만 기다리기에는 이 가을이 너무 짧다.

내장산국립공원은 지금 단풍 화(火)모니
 
장성 백양사의 가을 장성 백암산은 미려한 가을의 백양사를 품고 있다. ⓒ 최정선
   
애기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은 가을이면 누구나 선망하는 방문지. 산바람을 따라 툭툭 떨어지는 붉은 애기단풍의 손길을 찾아 서둘러 나서본다. 이쯤 단풍명소를 간다면 새벽안개를 가르며 활보하는 사진가들과 딱 맞닥뜨리는 건 당연지사. 나도 동참해 본다. 어슴푸레한 새벽의 찬 공기가 상쾌하다.

내장산국립공원은 내장산(內藏山), 백암산(白岩山), 입암산(笠岩山) 등 세 개의 산으로 이뤄져 있다. 1971년 내장산과 백암산이 한데 묶여 내장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내장산(763m)과 백암산(741m)은 한뿌리지만 백양사가 앉은 산을 백암산(장성), 내장사가 앉은 산을 내장산(정읍)이라 부른다.

'봄에는 백양, 가을에는 내장'이라는 말이 있지만 가을의 미려한 정취는 두 곳을 그냥두지 않는다. 내장탐방안내소가 있는 매표소에서 백양사까지 약 2.5km의 산책로는 단풍나무들이 어깨를 휘어 서로 껴안고 있다. 그 아래로 단풍 낙엽길도 열려 있다. '걷는게 여의치 않아!' 이런 마음으로 내장산 단풍놀이를 포기하신 당신, 걱정 붙들어 매길 바란다. 걷기가 힘든 내장사 방문객을 배려해 구간 셔틀버스가 운영된다.

단풍들이 화(火)를 내듯 우화정(羽化亭) 주위를 둘러쳐있다. 우화정을 점령한 단풍들은 이미 불붙어 활활 타고 있다. 사진촬영 명소로 입소문이 난 우화정은 내장사 연못에 지어진 정자다. 1965년 지어졌고 2009년 다시 단장됐다.

신선이 이 정자에 노릴다 날개가 돋아 승천(昇天)했다는 설화가 있는 곳.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에 '세상을 버리고 홀몸이 되어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오르는 신선이 된 것만 같다(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라는 문구에서 착안한 '우화등선(羽化登仙)'에서 우화정이 비롯됐다. 우화(羽化)는 원래 번데기가 날개 달린 나방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정읍 내장산의 우화정 단풍 화(火)모니의 절정, 우화정에 물들다. ⓒ 최정선
    
우화정에서 머문 발걸음을 재촉해 내장사로 향했다. 내장사로 향하는 길은 빨간 단풍 옷을 입은 고혹적인 아름드리나무들이 쭉 뻗어 있다. 내장산 단풍길 중에서도 으뜸은 일주문에서 내장사에 이르는 단풍터널길이다.

숨겨진 보물이 쉴 새 없이 터져나와 사람들은 내장산(內藏山)이라 부른다. 속을 감추지 못하는 산. 흔히 내장산을 신성봉 아래 천 년 사찰 내장사가 들어선 금선계곡 일대를 말한다. 붉은 단풍의 아름다움을 옛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도 노래했다. 봄꽃의 화려함보다 단풍의 붉은 아름다움을 읊조렸으니 그곳이 바로 내장산이 아닐까 싶다.

가을빛에 잠긴 숲은 물빛도 붉게, 여행객들의 얼굴도 홍조로 물들인다. 단풍 종류도 애기단풍, 당단풍, 좁은단풍, 털참단풍, 네군도단풍 등 다양하다. 백양사의 단풍도 애기단풍, 내장사의 단풍도 애기단풍이다. 나뭇잎이 작아서가 아니라 나무가 작아서 그렇게 부른다.

산사의 가을은 이렇듯 운치가 깊다.

영동여행은 이곳, 송호관광지 & 도마령

충북 영동은 유독 볕이 좋아 포도와 감이 유명하다. 과일이 풍부한 것은 유유히 흐르는 금강(錦江) 덕이다. 풍부한 볕과 이름처럼 비단같은 금강이 풍요로움을 만든다. 옛날엔 금강을 두고 웅진강(熊津江)이라 불렀다. 말에 짐작하듯이 금(錦)은 곰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사음이다. 그 흔적이 충남 공주의 금강 유역엔 남아있는 '곰나루'다. 금강은 전북 장수에서 시작해 서해의 군산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곳 영동의 먹거리로 금강에 난 피라미를 튀긴 도리뱅뱅이와 어죽도 그만이다.
 
영동 송호관광지의 가을 오색찬란한 가을빛으로 물든 송호관광지와 금강. ⓒ 최정선

금강과 오색찬란한 가을을 동시에 느끼고 싶다면 영동군 양산면 송호관광지로 가보라 권하고 싶다. 이곳은 울긋불긋 단풍이 비단물결처럼 흐르는 금강과 어우러져 장관이다. 풍성한 단풍과 강변의 벤치에 앉아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는 것도 낭만일 듯. 캠핑장이 있어 주말이면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는 굽잇길이 유독 많다. 그 길을 꼬부랑길 또는 고개라 표현한다. 산 많고 골 많은 영동도 굽이굽이 돌아가는 고갯길이 많다. 그 중 유독 유명한 곳이 있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와 용화면 조동리를 잇는 국가지원지방도 49호선에 위치한 도마령(刀馬岺·840m)이다.

이 고갯길은 칼을 든 장수가 말을 타고 넘었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 가을이면 24굽이를 따라 진하게 물든 단풍이 아름답다. 도마령처럼 꼬부랑 고갯길로 유명한 경남 함양 '지안재'와 '오도재'가 있다. 그 모양새도 인상적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꼬부랑길 풍경으로, 사진가들 발길이 잦은 곳이다.

충북 영동의 도마령은 지금 춤추듯이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고갯길과 단풍이 청명한 가을하늘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그야말로 이것이 만추의 절경,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면 민주지산, 각호산, 삼봉산, 천마산 등에 병풍처럼 둘러싸여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가파른 산비탈을 심하게 핸들을 꺾으며 올라온 보람이 있다. 전망대에서 주차하고 팔각정자인 상용정까지 올라가가 '겹쳐진 굽잇길을 한눈으로 담으라' 말하고 싶다.
     
단풍은 경주 불국사가 최고!

가을, 신라의 옛 서라벌 거리가 단풍빛으로 물든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경주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수두룩하다.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사사성장 탑탑안행(寺寺星張 塔塔雁行)이라는 말로 서라벌을 표현했다. 은하수가 하늘에 길을 놓듯 신라 서라벌에는 절들이 가득하다는 표현이다. 상징물인 탑들이 서라벌의 거리를 메우는 것은 당연지사. 그 탑들이 늘어선 모습이 마치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떼 같다는 표현이다.
 
불국사의 가을 천년의 사찰 기와에 내려앉은 가을 ⓒ 최정선
 
경주 여행의 첫 걸음은 단연 '부처님의 나라'를 뜻하는 불국사다. 불국사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김대성이 신라 751년(경덕왕 10)에 짓기 시작해 774년(혜공왕 10)에 완공됐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김대성은 현세의 부모님을 위해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불국사 경내는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으로 크게 나뉜다. 불국사하면 두말이 필요 없는 다보탑(국보 제20호)과 석가탑(국보 제21호), 자하문에 다다르는 청운교와 백운교, 극락전으로 통하는 연화교와 칠보교를 손꼽는다. 이들은 불국사의 배경사진으로 단연 으뜸이다.
  
다보탑과 석가탑이 쌍둥이처럼 불국사 대웅전 앞 나란히 서 있다. 다보탑은 정교하고도 수려한 자태로, 석가탑은 무던하며 의연한 자태로 방문자를 압도한다. 가을 정취만큼 두 탑의 독특한 정수를 느낄 수 있다. 2012년부터 불국사 경내에서 석가탑을 보기 어려웠다. 그러다 2015년 5월에 복원돼 우아한 자태를 뽐내게 됐다. 탑을 더 튼튼하게 쌓기 위한 복원 공사가 무려 4년간 진행됐다고 한다. 사실 석가탑은 지난 1966년 도굴꾼에 의해 탑의 일부가 훼손된 적도 있었다.

가을 햇살 사이로 바람이 살짝 불어온다. 발걸음이 가볍다. 입구에서 경내까지 가을 단풍이 장관이다. 단풍빛이 고운 나무 밑에는 예외 없이 사진 찍는 이들이 북적인다. 동남아에서 온 관광객들이 특히 많았다. 가을이 빚은 불국사의 단풍이 이국인에게는 이채롭게 느껴지는 듯하다. 그들은 연신 가을을 담으려 셔터를 누른다. 대조적으로 이국적 가을을 담고자 일본 교토로 가는 사진가들이 많다. 나는 가을 아름다움의 결정체는 불국사라 감히 말하고 싶다.
 
불국사 관음전의 가을 풍경 대웅전 뒤편 무설전의 회랑에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다. ⓒ 최정선
 
불국사의 동북쪽 관음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이곳을 기준으로 남쪽과 서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단계적으로 낮아진다. 불국사 경내에서도 가장 깊고 높은 곳에 위치한 관음전 뒤뜰. 그곳에서 울긋불긋 단풍꽃이 피었다. 붉게 톤온톤으로 천년의 사찰을 덮었다. 봄꽃보다 화려한 단풍이 얼마나 아련한지 불국사에 가보면 알 것이다. 어디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단풍이 아찔하다.

관음전에서 바라본 대웅전 뒤편 무설전의 회랑에 걸쳐진 단풍 풍경은 숨겨진 명소다. 가히 당대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음전 담장에서 내려 본 불국사 법당과 어우러진 단풍은 겹겹이 꽃을 피워 하늘을 가리고 있다. 불국사의 관음전은 봄이면 목련으로 보답하고 가을이면 단풍으로 우리들 마음을 설레게 한다. 단풍빛이 고찰을 장엄하게 빛낸다.

익숙한 듯 낯선 경주는 학창시절 한 번쯤 다녀온 곳. 성년이 된 지금도 행사나 세미나 차 가는 곳이 경주다. 안다고 생각한 불국사도 무엇을 아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별로 없다. 불국사의 아름다운 모습이 언제인가를 펜을 들고 생각해 본다. 불국사에 대해 글을 쓰면서 '아쉬움 많은 여행을 했구나' 하는 휘휘한 마음이 앞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생각없이 경주> 저자입니다. 이 기사는 블로그 '3초일상의 나찾기'( https://blog.naver.com/bangel94 )에도 실립니다.

태그:#생각없이경주, #단풍, #경주여행, #여행책, #가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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