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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를 만나기 이전

타고난 것인지, 불우한 가정환경 탓인지 어려서부터 유난히도 불안도가 높았다. 불안은 엄연한 불편요소인 반면 톡톡한 보호자 노릇도 해왔다. 부모도 불안했다. 약하고 상처투성이였다. 부모와 가정은 안전한 울타리나 따뜻한 품이 될 수 없었다. 황량한 벌판에 외로이 서서 타고난 불안에서 오는 예민한 촉으로 나를 지켜오는 데 급급한 삶이었다.

주변에 말 걸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꽤 오래 보냈다. 내가 그 누구의 관심을 받을 만큼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 혼자였고 외로웠다. 말 걸어 주는 사람은 오로지 선생님 뿐이었다. 내가 본 가장 건강하고 건전한 어른상인 선생님을 선망하며 교사가 되고 싶었다. 소외된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었다.

학비걱정에 국비 장학생이 되기 위해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지망했다. 운 좋게 경쟁시험을 통과했다. 구겨진 자신감이 살짝 펴졌다. 고1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온갖 역경에 휘말렸다. 슬럼프에 빠져 무기력의 나락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오로지 삶에 대한 불안에 힘 입어 대입을 준비했다. 입학 후에는 가까운 이웃이나 친척 중에 대학 교육 받은 이가 적다보니 상대적인 자부심이 생겼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뒤로는 자신감이라는 걸 제법 갖으며 살게 되었다. 경쟁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조금씩 어깨가 펴졌던 것이다.

아귀다툼하듯 살아가는 빈민가의 부모와 이웃들에게 벗어나 품격있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돌아보니 그 누구보다 더 통속적인 방법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왔다. 성장기를 통해 내가 찾은 나는 유일한 존재로 존재하는 나가 아닌 평가의 산물, 사회가 소비하게 될 하나의 도구가 된 것이다.

잘하지 못하면 안 되는 삶을 살아오면서 보이지 않는 진짜의 나는 점점 더 구겨져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로지 불안에 대한 저항으로 버텨오던 내가 어느 순간 황무지에 지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렸다. 안간힘을 쓰며 맞춰온 수십만 조각의 퍼즐이 일순간 와르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더 잘하자고 격려하는 일을 더는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당황했다. 앉아도 누워도 마음만은 열심히 불안을 겪어내야만 했다. 살기위해 치유자를 찾았고 오랜 시간 뼛속까지 차오른 자기 절제의 노폐물을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관성이라는 것이 다시 과거로 돌려놓곤 했다.

매일 연습했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갖자', '내 마음의 목소리를 듣자' 피나는 싸움이었다. 쏟아진 퍼즐 조각을 맞춰 다시 자리 잡는 데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건강하지 않은 나는 그 누구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회복한 나는 가장 강한 적인 나 자신과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47년간 나가 아닌 누군가의 평가 대상으로 살아오게 만든 세상을 향해 부당하다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이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날이 서있고 분노가 차 올라서 뒷목이 뻣뻣한 날의 연속이었다.

더는 불안이라는 에너지로 노력을 갈아 넣으며 버티고 버티다 쓰러진 그날처럼 스스로에게 잔인하지 않았다. 내 탓도 내 주위 사람의 탓도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내가 해방되었듯 이 사회의 구성원 모두를 이 지옥에서 구출하고 싶었다. 나 혼자만 빠져나온 것이 미안해서 사회에 대한 표독한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당신이 옳다>를 만난 이후
 
마치 응급처방과 같이 마음이 아플때 꼭 찾아보고 싶은 생각에 포스트잇을 붙여 글귀를 적어놓기 시작했으나 어느새 한 권 전체가 되어버린 필자의 도서
▲ 꼭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 책 전체에 포스트잇이 붙은 도서 마치 응급처방과 같이 마음이 아플때 꼭 찾아보고 싶은 생각에 포스트잇을 붙여 글귀를 적어놓기 시작했으나 어느새 한 권 전체가 되어버린 필자의 도서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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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출판을 알리는 글을 보면서 '아, 나도 이제 남을 살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살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지옥을 뒤돌아보며 다른 이들도 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가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것은 오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장이 잘 넘어 가지지 않았다. 중고등학생도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간결한 문체로 잘 쓰여진 글을 후루룩 읽어내지 못했다. 한 문장 한 문장, 한 쳅터 한 쳅터가 돌부리처럼 내 마음을 걸고 멈추게 했다. 머뭇거리게 했다.

수도 없이 돌아보는 과거의 자잘한 기억들이 내 눈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되걸어 들어갔다. 가물가물 했던 내 상처들의 발생 시점으로, 그리고 충분히 다루고 재해석하는데 성공했다고 믿었던 상처들의 두꺼운 딱지 속으로.

3, 4년을 투자한 재구성의 시간이 얼마나 엉성하고 급한 회복이었는지 다 티가 나 버려서 실망하는 시간을 잠시 견뎌야 했다. 겨우 되찾아 꿰어 맞춘 퍼즐 조각들이 군데군데 솟아 있어 가만가만 눌러 보아야 할 지점들이 꽤 많았던 것이다.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솟고, 저쪽을 누르면 또 다른 쪽이 솟았다.

다 맞춘 퍼즐을 쓰다듬어 확인하듯 까슬까슬한 작은 상처 조차도 손 끝에 닿을 때마다 가만히 어루만져주는 과정에서 점차 깃털처럼 자유로워지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자신감이 두둑히 차올랐다. 눈물이 나지만 힘이 나는 눈물이었다. 언 땅을 녹이고 대지를 적셔 새 싹을 틔워낼 봄비처럼 내려앉을 사랑의 대상을 정확하게 찾은 눈물이었다. 아, 이제 나는 자유다!

책을 읽기 시작한 뒤로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했다. 주로 학급의 아이들과 내 가족들, 그리고 학부모와 동료들이었다. 마침 학부모 상담주간이었다. 상담을 예약해 온 부모님과의 대화를 위해 해당 학생들의 사전 상담만으로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수업시간 이외의 모든 시간을 바쳐서 최대한 많은 이들과의 상담에 집중했다. 내 안에서 넘쳐나는 궁금증이 더 많은 존재들과의 만남을 원했다.

"지금 네 마음이 어떠니?",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묻고 싶어 안달이 났다. 놀랍다. 그 한 마디의 물음이 일으키는 기적. 나는 마음의 빗장을 푸는 하나의 마법을 발견한 마술사처럼 피곤한 줄도 모르고 아이들의 진정한 마음과 만나고 있다. 내 가족과 만나고 학교 아이들의 부모와도 만나고 있다. 잠깐만에 너무 많은 이들과 아주 개별적이고도 끈끈한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마술 같은 일이 내 안에 넘쳐 흐르고 있다.

부부이자 동료지간인 심리치유자 정혜신과 영감자 이명수의 페이스북을 통해 두 사람의 삶을 자주 접해왔다. '세상에! 이렇게 우아한 연인이자 부부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황홀한 관계가 더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신의 경지 같았다. 스스로의 삶을 천국에 올려놓은 그들의 우아한 마음짓과 몸짓에 무한한 동경을 품곤 했었다. 이제 나에게도 중요한 미션이 주어졌다.

'우아하게 나를 만나고 더 황홀하게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뜨겁게 세상을 사랑할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오천만 권쯤 사서 전 국민에게 선물하고 싶다. 5천만 모두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는 한 방에 헬조선을 탈출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 열망을 알아챈 듯 두 사람은 전국을 발로 뛰며 갈망의 마음들을 이어가 줄 것이다. 이로써 우리 대한민국에 거대한 치유와 회복운동이 일어나리라는 예감이 든다.
 
비가 바람에게 말하듯 정혜신 선생님이 이명수 선생님께 말씀하셨다. "너는 밀어붙여 나는 퍼부을 테니"(에필로그 중)

머지않아 고단한 대한민국을 살아오느라 상처 투성이인 우리 모두가 그 빗줄기에 다가가 흠뻑 젖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저자 정혜신이 영감자 이명수와 함께 전국을 다니며 '당신이 옳다 심리적 CPR 전국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 "당신이 옳다 심리적 CPR 전국워크숍" 안내 포스터 저자 정혜신이 영감자 이명수와 함께 전국을 다니며 "당신이 옳다 심리적 CPR 전국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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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해냄(2018)


태그:#정혜신, #적정심리학, #당신이 옳다, #이명수, #다정한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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