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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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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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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이 법관으로서 자격을 갖고 있는 이상, '공정한 재판을 하지 않는다' 이런 근거는 없습니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8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서 '특별재판부의 위헌성'을 주장하며 한 말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법농단 재판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 서울지법 형사합의부의 판사 상당수가 사법농단과 관계된 인물이라고 지적하자 안 처장은 이런 답을 내놓았다.

안 처장의 말에는 '어떻게 법관을 믿지 않을 수 있나'라는 저의가 깔려 있다. 사법농단 사태로 인해 곳곳에서 사법부를 향한 불신의 시선을 쏟아내고 있음에도, 여전히 대법원에선 사법부 방어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 처장의 말은, 5개월 전 마지막으로 언론 앞에서 "대법원 재판은 순수하고 신성한 것이다"라고 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관련기사 : 양승태 "대법원, 순수하고 신성하다")

안 처장이 특별재판부 도입이 아닌 재판의 무작위 배정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재판의 공정함" 때문이다. 즉 공정함이 대원칙이란 것이다. 수단이 대원칙을 앞설 수 없다는 관점에서, 현재 서울지법의 상황은 무작위 배당이 아닌 다른 수단을 고려해볼 만한 사정이 충분하다. 안 처장 스스로도 말했듯 서울지법 형사합의부 13곳 중 6곳에 사법농단과 관련된 인물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0.24% 확률'에 기대라는 대법원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자료사진).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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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안 처장은 "회피, 기피 제도가 있다"는 말도 했다. '무작위로 재판을 배당하되, 맘에 들지 않으면 재판부를 바꾸면 되지 않느냐'는 취지다. 회피는 법관 스스로 재판에서 물러나는 것이고, 기피는 재판 당사자가 법관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회피를 바라긴 어렵고 남은 건 기피뿐인데, 박주민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있었던 802건의 기피 신청 중 받아들여진 건 2건뿐이었다. 확률로 따지면 0.24%다.

박 의원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이혼소송을 예로 기피 신청 인용이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하기도 했다. 당시 이 소송의 판사가 강민구 현 서울고법 부장판사였는데, 임 전 고문 측이 강 부장판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기피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강 부장판사는 새해 인사는 물론, 자신이 삼성 제품을 홍보했다는 내용의 문자를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에게 보낸 인물이다. 이 사장이 삼성전자 회장의 딸이기 때문에 임 전 고문 측이 재판의 불공정성을 우려하며 기피를 신청한 것인데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안 처장의 말이 기계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그가 인용 비율 0.24%의 사실상 사문화된 제도를 조직 방어 논리로 사용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날 사개특위에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특별재판부는 빈사상태에 빠진 사법부에 산소호흡기를 대는 마지막 처방인데 이를 거부하면 사법부는 죽게된다"라며 "사법부 권력도 결국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사법부가 사법농단 및 재판거래를 했기 때문에 해결하기 위해 특별재판부가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정파 싸움'된 특별재판부

안 처장을 위시로 한 대법원의 이 같은 의견표명으로, 이미 자유한국당에 의해 정쟁의 늪에 휘말려 있던 특별재판부 도입 문제는 더 수렁에 빠져버렸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특별재판부 법안은 이제 그것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보다 '정파에 따른 논란'으로 프레임이 짜여 딜레마와 마주한 모양새다.

만약 특별재판부가 도입되더라도 역으로 사법농단 당사자들이 "재판부가 불공정하다"며 재판을 기피할 것이란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 8일 공개된 대법원의 의견서엔 "피고인들이 재판부 구성의 위헌성을 문제 삼아 재판절차 진행에 협조하지 않을 수 있다,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되는 경우에는 재판이 정지되는 등 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내용도 담겼다.

법안의 국회 통과가 어렵다면 대법원 자체적으로 특별재판부를 구성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에 보면 "부득이한 사정이 명백한 경우에는 관계되는 재판장과의 협의를 거친 후 다른 방법으로 (재판을) 배정할 수 있다"라고 나와 있다. 또 "각급 법원장 및 지원장은 (중략) 재판부 의견을 들어 확정된 법관 등의 사무분담을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

특별재판부는 아니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9월 '법관사무분담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내규'를 제정해, 법관사무분담위원회 논의를 거쳐 영장전담법관 2명을 추가로 배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 자체적으로 특별재판부를 구성하는 것 역시 현재 짜인 프레임으론 기대하기 어려운 가능성이다. 특히 안 처장의 말과 최근 고위 법관들이 공개적으로 발언한 내용 등을 떠올려보면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를 밀어붙일 여지는 부족해 보인다.

태그:#특별재판부, #안철상, #양승태, #김명수,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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