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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계림 가을 단풍 모습
 경주 계림 가을 단풍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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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의 숲으로 변해버린 경주 계림

가을 단풍 이야기가 벌써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도 너무 자주 하면 지겨울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천년고도 경주는 강원도에서부터 시작한 단풍 이야기가 수그러들 때쯤 되면 단풍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올해는 제대로 된 단풍 구경은 하지도 못했는데, 벌써 서리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머뭇거리다가는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할 것 같아, 지난 9일 아침부터 시내권 단풍 명소 두 곳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경주 계림 가을 단풍,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될 것 같은 모습
 경주 계림 가을 단풍,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될 것 같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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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계림은 시내 한복판 동부사적지대 안에 있는 숲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곳입니다. 사적 제19호로 지정되었고,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되었습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 사생대회를 하면 꼭 여기 들러 도화지 위에다 그림을 그리던 추억의 장소입니다. 공식적인 명칭은 경주 계림(鷄林)이라 부르지만, 경주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계림숲'이라 부릅니다. 

경주 계림은 김씨 왕조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깃든 숲입니다. 계림은 원래 성스러운 숲이란 뜻의 '시림'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닭과 관련한 김알지의 탄생설화 때문에 '닭이 우는 숲'이란 뜻의 계림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경주 계림을 거닐고 있는 관광객들 모습, 아름다운 단풍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경주 계림을 거닐고 있는 관광객들 모습, 아름다운 단풍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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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들은 이야기지만 한번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신라 탈해왕때 호공이 계림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괴가 걸려 있었다. 호공이 이를 임금에게 아뢰어 왕이 몸소 가서 황금빛 금괴를 열어보니 총명하게 생긴 사내 아이가 있었고, 그 밑에 흰 닭이 울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갈수록 총명하여 이름을 '알지'라 하고, 금괴 속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을 김 씨로 불렀다고 합니다. 탈해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왕위를 받지 못하고 김알지의 육대손에 와서 김씨가 왕이 되었다는 설화입니다. 이런 설화를 초딩학생들한데 이야기 하면 재미있다는 듯 빙긋이 웃습니다.

경주 계림은 동부사적지대 안에 첨성대와 신라 궁궐터인 반월성 사이에 있는 숲으로 느티나무, 왕버들나무 그리고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등 고목이 울창하게 심어져 있어 가을철 멀리 가지 않고도 단풍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하고, 가을 단풍철이나 겨울 눈이 내린 후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전국의 많은 사진사들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경주 계림 사적지 남쪽 편에 향가비가 세워져 있는데, 앞면은 찬기파랑가가 적혀 있고, 뒷면은 일연 스님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림 입구에는 계림비각이 세워져 있는데 신라시대 세운 게 아니고, 조선시대에 세운 것입니다. 계림비각 안에는 계림의 내력과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설화를 새긴 '경주김알지탄생기록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나뭇가지 나뭇잎들은 이번에 내린 서리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으나 중간에 있는 단풍나무들과 은행나무는 지금이 절정입니다. 늦깎이 가을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한테는 좋은 장소일 것 같습니다.

울긋불긋한 가을 단풍나무들 사이로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정화되고, 저절로 힐링이 되는 듯하여 왔던 길을 다시 한 번 더 걷고 싶은 충동마저 느껴집니다.
 
낙엽이 거의 떨어진 경주  포석정지 모습
 낙엽이 거의 떨어진 경주 포석정지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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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장소지만 가을 단풍은 아름다운 포석정지


11월은 심술의 달인 것 같습니다. 평균적으로 이맘때쯤이면 포석정지도 가을 단풍의 절정을 맞이하는데 올해도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며칠 전 연이어 내린 비로 낙엽이 떨어지지 시작하고, 거기다 된서리마저 내렸습니다.

포석정도 경주 계림과 같이 시내권에 있는 가을 단풍 유명지입니다. 두 곳 모두 시내권이고 조용하여, 산책하고 다니며 힐링하기 좋은 장소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곳이지요.

포석정지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왕의 별장과 같은 곳으로 이곳에서 외국 사신을 접대하거나 왕실의 연회를 주로 했습니다. 신라 말기 경애왕이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었는데, 후백제 견훤이 쳐들어 왔고 이곳에서 견훤의 강압에 못 이겨 생을 마감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가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으로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는데, 포석정은 이를 본떠서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포석정지 바로 옆 계곡에 있는 계욕장소, 움푹 파인 곳에서 목욕재개 했다는 곳
 포석정지 바로 옆 계곡에 있는 계욕장소, 움푹 파인 곳에서 목욕재개 했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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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지에 대한 또 다른 주장

포석정지는 전해 내려오는 설과는 다르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지금부터 15년 전 포석정지 주위에 있는 유적을 조사하던 중 포석(砲石)이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를 발굴했습니다.

이 기와 출토로 포석정지가 삼국시대 신라의 사당이었음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발굴조사 시 포석이라 새긴 기와 외에,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류도 함께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 포석정지는 경애왕의 유흥 장소로 사용된 것이 아니고, 국가적인 행사나 제사의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학설이 지배적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음력 11월 한창 추운 겨울에 후백제 견훤이 쳐들어 온다고 하는데, 어디 여기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었겠느냐는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포석정지 바로 옆에 계욕(禊浴) 장소가 있습니다. 경주 남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에 몸을 깨끗이 씻고 목욕을 통해 부정을 쫓는 정화의례를 했다는 것을 증거로 내세웁니다.
 
낙엽이 떨어지고 막바지 가을 단풍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포석정지
 낙엽이 떨어지고 막바지 가을 단풍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포석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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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지는 경주 서남산 삼릉 가는 길에 위치해 있어 경관이 좋으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전국에 가족과 함께하는 걷기 좋은 길 5곳에 선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온 가족이 가을 단풍 구경과 역사 공부를 함께 하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멋진 곳입니다.
  
경주 추령재 백년찻집 주변 단풍 모습
 경주 추령재 백년찻집 주변 단풍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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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철 드라이브 명소 경주 추령재

우리나라 단풍의 일번지라 할 수 있는 강원도 월정사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벌겋게 물들어 있는 곳이 경주 감포 가는 길 추령재입니다. 관광버스 기사들이 손님을 태우고 전국 유명 단풍놀이 코스로, 중부 이남 쪽은 경주 추령재를 꼽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떨어진 낙엽과 노랑 옻나무 모습이 아름다운 경주 추령재.
 떨어진 낙엽과 노랑 옻나무 모습이 아름다운 경주 추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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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평일인데도 뒤따라오는 차량들 때문에 아름다운 단풍의 모습을 촬영은 못하고, 눈으로 감상만 하며 지나갔는데, 한 번쯤 젊은 연인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하면 멋진 드라이브 길이 될 것입니다. 경주 추령재는 추령터널 넘어가기 전, 바로 옆에 있는 옛길을 따라 구경하면 더 좋습니다.

특히 추령재 백년찻집 부근에서 걸어가면서 산책해도 좋습니다. 아름다운 단풍 모습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습니다. 모두 좋아 탄성을 지르는 곳입니다. 몇 해 전부터 해외로 한 번씩 나가 보지만, 추령재 단풍만 한 곳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햇빛에 반사된 경주 추령재 가을 단풍 모습
 햇빛에 반사된 경주 추령재 가을 단풍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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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틀 비로 인해 낙엽이 많이 떨어져 조금은 엉성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햇빛이 나면 보기 좋은 곳입니다. 추령재를 지나 토함산으로 다시 올라오는 드라이브 코스를 추천드립니다. 이번 주 지나면 단풍은 떠난다는 귀엣말도 남기지 않고 작별을 고할 것 같습니다.

태그:#경주가을단풍, #경주계림, #경주포석정지, #경주추령재, #드라이브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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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발길 닿은 곳의 풍경과 소소한 일상을 가슴에 담아 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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