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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세, 사표를 냈습니다. 10년 만에 얻은 쉼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다시 묻는 시간을 줬습니다. 그동안 삶의 정답이라고 여겨온 것들이 수많은 생각과 기회를 막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마침표를 찍은 문장들에서 마침표를 지우고 물음표를 넣어보기로 했습니다. '마침표 대신 물음표'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함께 찾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이제 알겠다. 일생에서 도전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설레게 하는지.
 이제 알겠다. 일생에서 도전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설레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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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직장인들의 관심을 끌 만한 설문조사 결과가 포털사이트에 오른 적이 있다. 한 구인구직 기관에서 성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직장생활 중 총대를 메야 하는 상황이 닥칠 때에 대해 물었다. 응답자 중 65%는 '직장생활은 가늘고 길게 하는 것이 최고'라며 '그 상황에 나서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리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여전히 바늘구멍인 것만 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얘기일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중소기업, 벤처기업, 소상공인 분야를 취재할 때다. 대기업에 잘 다니다가 나와서 벤처기업을 창업한 이들을 숱하게 봐왔다. 그들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안정적인 곳에서 나와 굳이 왜 고생하나 싶기도 했다. 국내 전체 기업의 1%에 속하는 대기업의 좁은 문을 통과한 이들이 또다시 성공률 한 자릿수에 그치는 벤처기업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랬던 내가 사표를 냈다.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공채 출신인 데다 회사 내에서 인정도 받은 편이었다. 사표를 던졌을 때 동료들과 업계 지인들은 "속 썩이는 직장이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며 나를 말렸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떠난 후였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얼마 후 기자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일하지 않고 쉴 만한 성격이 아닌 걸 알았기에. 2002년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끊임없이 일을 해왔던 나다. 10년이 훌쩍 넘은 기억을 끄집어 내보니 참 많은 일을 해왔다. 호프집 아르바이트, 카페 아르바이트, 액세서리 판매원, 초등학생 과외 선생, 대학교 근로장학생.

그래서 대학생 시절 '알바녀'라는 별명을 달고 다녔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한번 시작하면 후회 없도록 일하고 나왔다. 호프집 아르바이트도 2년 넘게 일하며 나름 매니저로 승진도 했다. 일을 잘한다며 명절마다 포상도 두둑하게 받으며 아르바이트 생활의 막을 내렸다.

신생 방송국에 입사해서도 끝까지 버텨냈다. 입사 두 달째부터 월급이 나오지 않았고, 10여 명의 입사 동기가 퇴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를 포함해 2명은 자리를 지켰지만 석 달째에는 함께 버텨온 한 명까지도 그만두면서 난 홀로 남아 1년을 일하고 나왔다.

이후 연고조차 없는 경상북도 안동에 내려가 취재리포터로 2년 3개월을 일했다. 가장 오래 일한 리포터라는 타이틀은 덤이었다. 마지막 회사에서 일한 기간은 만 7년이다. 언론계에 이직이 잦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직하게 일해온 셈이다. 아이를 낳고 3개월도 채 되기 전에 출근할 만큼 집보다 밖을 좋아했고, 휴식보다는 피곤함을 즐겼던 나였다. 그래서인지 일을 관둔다는 것은 나와 어울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남이 아닌 나에게 묻다 

더 이상 꾹 참고 싶지 않았다. 꿈을 찾기로 했다. 잠시나마 통장을 스쳐 갔던 월급은 끊겼지만 쉼을 얻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 10년 만이다. 쉼은 머릿속 깊은 곳의 생각들을 헤집는 기회였다.

처음 내 머릿속에 새겨진 생각들을 삶의 정답으로 여기고 살아온 지난날들. 그 정답이 다른 수많은 생각을 막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살아오고 있었다. 웅덩이 속에 고인 생각들이 넓게 퍼져 또 다른 생각을 만든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시작한 기자. 10년 만에 쉼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다시 묻는 시간을 줬다. 기자만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지만 기자가 아니어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 내 일상 속 마침표를 지웠다. 그리고 그 대신 물음표를 붙였다.

그리고 물었다. 직장생활은 가늘고 길게 한다? 10년 후 나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10년 후 나도 가늘고 긴 직장생활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잃은 게 있다면 행복한 미소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기에. 조금 더 신중해 보기로 했다.

다만 기사가 아닌 글을 쓰기 위해 펜을 바꿔 들었다. 사회에 대한 시선을 내면에 있는 생각과 감정들에 집중하려 한다. 어려운 기사가 아닌 오롯이 경험에서 나온 내 생각들로 독자와 만나기 위한 첫 번째 도전이다.

이제 알겠다. 일생에서 도전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설레게 하는지. 가늘고 길게 갈 수 있는 직장을 나와 도전하고 꿈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https://blog.naver.com/hobag555)


태그:#사표, #직장인, #직장생활, #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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