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회 청룡영화상의 선택은 6월 항쟁을 다룬 <1987>이었다. 저예산 영화 <미쓰백> 한지민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1987> 김윤석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공작>의 윤종빈 감독은 감독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에 이어 감독상 2관왕에 올랐다.
 
지난 23일 저녁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청룡영화상은 대작 흥행 영화가 대부분의 상을 차지하면서 앞서 열린 대종상이나 영평상과 비슷한 결과를 도출해 냈다. 최우수작품상(<1987>)과 감독상(<공조> 윤종빈), 여우주연상(<미쓰백> 한지민), 각본상(<암수살인>), 신인남우상(<안시성> 남주혁)은 영평상의 결과와 같았고 남우조연상(<독전> 고 김주혁), 신인여우상(<마녀> 김다미)은 대종상과 같은 결과를 나타냈다.
 
<1987>은 촬영조명상까지 받으며 3관왕에 올랐고, <신과 함께>는 여우조연상(김향기)과 기술상, 최대관객상을 수상했다. <공작>은 감독상과 미술상을 받으며 2관왕을 차지했다. 수상후보로 오른 작품들이 모두 만만치 않아 심사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박종철, 이한열 등 민주투사들께 감사한 <1987>
 
<1987>로 작품상을 수상한 우정필름 이우정 대표는 "박종철 열사 기념사업회와 이한열 기념사업회에 감사하고 배은심 선생님과 올해 돌아가신 고 박정기 선생님께도 감사한다"며 "우리가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힘차게 싸워주신 민주투사 여러분들 덕분에 큰 영광을 나눌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1987> 장준환 감독은 "김윤석 배우가 작년에 청룡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을 못했는데, 당시 영화 가 완성돼 개봉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라 김윤석 배우에게 <1987>로 남우주연상 받으실 겁니다고 말했다"면서 "다른 작품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셔서 조마조마했으나 예견이 맞아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김윤석은 "작년 겨울에 농사를 잘 지어서 올해 겨울까지도 수확을 하는 것 같다"며 "열사들의 가족분들과도 이 영광을 나누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영평상에서 눈물의 수상 소감을 쏟아낸 <미쓰백> 한지민은 이날도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순간 조연이었던 권소현 배우를 껴안고 눈시울을 붉혔는데, 수상 순간과 소감을 말할 때도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한지민 배우는 "영광스러운 상 감사하다"며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겠다는 시간고충이 감사하게도 다가오지만, 우리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짧지 않았던 시간 있었던 어려움들이 큰 무게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무겁고 힘들었던 시간 끝에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은 <미쓰백>이 갖고 있는 영화의 진심 덕분인 것 같다"면서 "<미쓰백>은 배우로서 욕심보다는 우리사회의 어둡고 아픈 것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힘 실어주신 분들께 이 상이 보답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신과 함께> 김향기도 눈믈의 수상 소감을 밝혔다. 김향기 배우는 "감사드려야할 분들이 너무 많이 있다"면서 스태프들과 배우, 감독 등에게 감사를 전했다. 김향기는 "처음 촬영을 했던 고1 때부터, 마지막 개봉한 고3 때까지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이 배웠다"면서 "덕분에 덕춘을 입체감 있는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올해 청룡영화상 수상작 중 저예산 영화나 독립예술영화는 <미쓰백> 한지민 외에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과 편집상을 수상한 <곤지암>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수상이었지만 청룡상만의 특별한 선택이라고 볼 만한 수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청룡상 선택 자체를 거부한 <버닝>
 
최근 몇 년 사이 대종상이 추락하면서 안정된 운영을 보이는 청룡영화상은 국내 영화상 중 권위가 높아지기는 했으나,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칸영화제에서 상영됐고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있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수상작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닝>의 경우 청룡영화상이 선택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이창동 감독과 제작사가 청룡상의 선택을 오래전부터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  
 
남우주연과 남우조연, 신인여우상 후보에 유아인과 스티븐 연, 전종서 등 배우들이 오르기는 했으나 이창동 감독과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는 최우수작품상이나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않았다. 이들의 청룡상 거부는 조선일보 영화상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버닝>은 대종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영평상에서는 국제비평가연맹 한국본부상과 촬영상을 수상했다.
 
참여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은 지난 2002년부터 청룡영화상 출품을 거부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자매사인 <스포츠조선>이 영화상을 개최한다는 이유다. 2010년 <시>가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을 때도 영평상과 대종상 부일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나 청룡영화상 후보로는 오르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다. 주연을 맡은 윤정희 배우만 그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이준동 대표는 수년 전에도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청룡영화상을 상대 안 한 지 10년이 넘었다"면서 "조선일보와 같이 잔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친문 코드 인사들의 당당한 문화계 진군'이란 칼럼 기사에서 "새 정부 출범 후 진행된 문화예술계 인사에선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에 있었거나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이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며 노무현 정부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의 동생이자 영화계 대표적 '친문 인사'로 꼽히는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가 연 600억 원 가까운 지원금을 나눠주는 영화진흥위원회 실세 위원으로 입성한 것 등을 거론했다. '블랙리스트' 항의와 촛불집회 참여를 훈장 삼아 '문화 권력'에 속속 진입하는 이들이 이전 집권세력과 별 차이가 없음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영화계 인사들은 <조선일보>의 이 같은 태도를 지난 보수정권에서 블랙리스트로 차별과 배제를 당했던 영화인들을 향한 억지스런 비판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창동 감독과 이준동 대표가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단호하게 각을 세우려는 이유기도 하다. 이 때문에 <조선일보>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이 주최하는 청룡영화상이 아무리 권위와 위상을 내세워도 이창동 감독이 작품이 나왔을 때만큼은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올해 청룡영화상은 <버닝>의 부재로 그 약점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