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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인 지난 9월 24일 오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지난해 11월부터 300일 넘게 고공농성을 이어온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노조원들(사진 위)이 추석을 맞아 찾아온 동료들(사진 아래)의 응원을 받고 있다.
 추석인 지난 9월 24일 오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지난해 11월부터 300일 넘게 고공농성을 이어온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노조원들(사진 위)이 추석을 맞아 찾아온 동료들(사진 아래)의 응원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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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기를 끊는다고 세상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도 단식을 결의한다. 일정이 많아서 단식농성장에 계속 눌러 앉아 있지는 못하지만, 일정을 소화하면서 단식농성 대열에 참가하기로 했다. 얼마나 갈지도 모르는 단식이라서 불안하기도 하고, 집에 와 계신 노모께 걱정 끼치지 않으면서 해낼 수 있을까도 걱정이다. 벌써부터 식구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다른 방법은 없냐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한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단식은 가급적 하지 말자 주의다. 단식농성도 인플레가 심하게 되어 있어서 열흘이나 보름 정도 단식 한다고 세상에서 알아주지도 않고, 어떤 압박도 되지 않는다. 한 달도 넘어서 병원에나 실려가야 관심을 가져줄까? 그런데도 무모할지도 모르는 단식농성을 결의한다.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 올라간 파인텍의 홍기탁, 박준호 두 노동자의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난겨울 초에 굴뚝에 올랐다. 하늘이 더 가까운, 아래서 쳐다보면 너무도 아득한 그곳 굴뚝에 겨우 폭 1m 남짓한 곳에 비닐 천막을 치고 4계절을 다 지나고 다시 혹한의 겨울을 맞고 있다. 건강 상태가 좋을 리 없다. 그들이 하루 빨리 땅을 디딜 수 있도록 힘을 보태자고 단식을 한다. 오는 12월 24일이면 마의 숫자 408일이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홍기탁 고공농성 402일, 차광호 지회장 무기한 단식농성 9일째인 18일 오전 농성장이 설치된 서울 목동 스타플렉스(파인텍) 서울사무소앞에서 사회단체 대표자 나승구 신부,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박승렬 목사, 송경동 시인 무기한 동조단식 돌입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왼쪽부터) 송경동 시인, 차광호 지회장,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박승렬 목사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홍기탁 고공농성 402일, 차광호 지회장 무기한 단식농성 9일째인 18일 오전 농성장이 설치된 서울 목동 스타플렉스(파인텍) 서울사무소앞에서 사회단체 대표자 나승구 신부,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박승렬 목사, 송경동 시인 무기한 동조단식 돌입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왼쪽부터) 송경동 시인, 차광호 지회장,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박승렬 목사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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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압박 사라지자 사회적 합의 용도 폐기

지금은 파인텍 본사가 있는 목동 CBS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차광호가 지난 2014년부터 2015년까지 408일을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했다. 고공농성 408일이다. 사회적인 압박에 스타케미칼 대표였던 김세권씨와 합의서를 작성하고 내려왔다. 신설 회사를 만들어서 고용을 승계하고, 노조의 활동을 보장하며, 단체협상을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노사 간의 당연한 합의고 사회와 한 약속이었다. 그런 약속을 믿고 굴뚝에서 내려왔고, 농성을 해제했다.

그렇지만 이름을 파인텍으로 바꾼 회사에 출근을 한 뒤에 회사의 태도는 바뀌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조건의 회사 환경, 작업량도 없고, 겨우 최저임금을 면하는 수준의 임금만 주는 그런 상황은 모욕이었다. 결국 기업사냥꾼의 본색을 드러낸 것인데, 이때 사회적 합의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사회적 합의는 사회적 압박에 못 견뎌서 마지못해서 응했던 결과일 뿐이고, 사회적 압박이 사라지고 나자 그 합의는 용도 폐기될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시 2명의 노동자가 높디높은 굴뚝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홍기탁 고공농성 402일, 차광호 지회장 무기한 단식농성 9일째인 18일 오전 농성장이 설치된 서울 목동 스타플렉스(파인텍) 서울사무소앞에서 사회단체 대표자 나승구 신부,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박승렬 목사, 송경동 시인 무기한 동조단식 돌입 기자회견이 열렸다. (왼쪽부터) 송경동 시인, 차광호 지회장,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박승렬 목사.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홍기탁 고공농성 402일, 차광호 지회장 무기한 단식농성 9일째인 18일 오전 농성장이 설치된 서울 목동 스타플렉스(파인텍) 서울사무소앞에서 사회단체 대표자 나승구 신부,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박승렬 목사, 송경동 시인 무기한 동조단식 돌입 기자회견이 열렸다. (왼쪽부터) 송경동 시인, 차광호 지회장,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박승렬 목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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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408일 넘기지 않도록

촛불 이후 다시는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가 없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여전히 굴뚝에 오를 수밖에 없다. 노동자에게는 가혹한 법과 제도 그리고 판결이 있다. 합법적으로 노동3권을 행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회사 측은 어떤 짓을 해도 법도 제도도, 판결도 지나치게 관대하다. 노동자는 걸핏하면 감옥에 가고,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까지 청구당하지만, 사용주는 단체협상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해도 처벌이 너무 가볍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와 범죄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행태로 인해서 수많은 노동자와 심지어는 국가사회 전체가 엄청난 피해를 입어도 처벌되지 않거나 그 처벌이 너무도 미약하기만 하다. 기울어졌어도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굴뚝에라도 올라가지 않으면 알아주지도 않으니 노동자들은 억울해서 죽을 지경이다. 그러니 그들의 곁이라도 지켜야 한다. 제발 408일을 넘기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청와대에서 스타플렉스(파인텍의 모기업) 본사까지 5일간의 오체투지로 이어졌고, 다시 단식농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굴뚝에서 다시 겨울을 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이런 마음이 모아지기를 바라는 심경에서다.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곁을 지키는 일, 그로부터 사회적 합의와 약속이 지켜지는 그런 날, 굴뚝 위의 두 노동자와 땅에서 굴뚝 위 두 노동자와 함께 싸우는 세 노동자가 감격스럽게 얼싸안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

[관련기사] 백기완 "백두산 천지만 다니지 말고 노동자 당장 만나야"

덧붙이는 글 | 박래군님은 인권재단 사람 소장입니다.


태그:#스타플렉스, #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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