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다른 독립운동가 비석, '잘못'이지만 '위법' 아니다?

2007. 1. 15. 16: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

2000년 11월대전 은평공원 내 세워진 계룡건설 리인구 명예회장 조부의 휘호비(왼쪽)와 생애비(오른쪽)'. 당초 사업을 시행한 단체는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휘호비와 생애비를 세운다며 국고를 지원받아 뒷면에 새기고 앞면에는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의 확인되지 않은 독립운동 행적을 새겼다.
ⓒ2007 오마이뉴스 심규상

대전 도심 속 목좋은 곳에 은평공원(대전시 서구 월평동)이 있다. 이 곳에 지난 2000년 큼지막한 비석이 세워졌다. 비석에는 '대전애국지사숭모회' 이름으로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휘호를 새겼다.

하지만 이 비석에 새겨진 이름은 앞면과 뒷면이 다르다. 비석 앞면과 뒷면에 각기 다른 사람의 생애와 휘호를 새겨놓은 것. 비석을 앞뒤로 나눠 서로 다른 사람을 기리는 생경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확인 결과 황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전애국지사 숭모회가 자치단체로부터 대전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인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을 기린다며 국고를 보조받은 후 비문 앞면에 당초 계획에 없던 계룡건설 명예회장의 조부를 '독립운동가'라며 끼워넣기 한 것이다.

정작 김용원 선생의 생애비문과 휘호비문은 뒷면에 새겼다. 게다가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의 독립운동 행적은 객관적으로 인정되거나 확인된 바가 없다.

더욱 황당한 일은 비문에는 김용원 선생이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와 함께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기재된 것.

끼워넣기 비석, 수정한다더니 지금은?

김용원 선생 후손들은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접하고 "조부의 비문에 알지도 못하는 엉뚱한 사람이 끼워넣기 됐다"며 비문 수정 후 재건립해 줄 것을 국고를 보조한 대전시와 대전 서구청에 거듭 요구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취재 결과 이인구 명예회장의 조부의 독립운동 행적을 기록한 비석은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대덕구 무궁화 동산, 이 명예회장 조부가 살던 마을에 있는 공덕비, 심지어 김용원 선생의 묘소 앞 비문에도 있었다.

김용원 선생 후손들은 "누군가 대덕군수가 세워놓은 비문을 떼어내고 계룡건설 이 명예회장 조부의 행적을 끼워 넣기한 비문으로 바꿔치기 해놓았다"고 어이없어 했다.

대전시는 거듭된 민원제기와 언론 보도에도 불구하고 버티기로 일관하다가 늦게서야 "관련공무원의 업무소홀로 당초 계획에 없던 인물이 각인된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생애비 문안내용을 수정해 건립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비문 건립을 주도했던 이규희 대전애국지사숭모회 회장도 지난 2004년 2월 대전시에 "철거조치하고 재설치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각서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또 다시 수년이 흘렀다. 잘못 새겨진 비문은 고쳐졌을까?

최근 찾은 은평공원에는 계룡건설 이 명예회장 조부의 호와 휘호가 새겨진 휘호비(대전시 지원)가 7년째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바로잡아 세워져야 할 '생애비'는 여전히 공원 화장실 구석에 폐기물처럼 누워 있다.

대전시는 역사왜곡 우려마저 있는 비문 수정을 왜 수년째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후손들 "계룡건설 명예회장 조부라서 봐주는 것 아닌가"

2004년 2월언론보도 후 대선 서구청은 생애비(오른쪽)를 철거한 후 시정 후 다시 세워 놓겠다고 약속했다.
ⓒ2007 오마이뉴스 심규상

대전시 관계자는 12일 "보조금을 지원한 해당단체에 수 차례 시정을 촉구하고 부탁도 했지만 시정조치를 하고 있지 않다"며 "대전시로서는 행정행위가 종료된 만큼 더 이상 조치할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업시행자가 엉뚱한 사람의 비석을 세우는 잘못은 했지만 법적으로 위법 여부를 따질만한 사안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고 강변했다.

이에 앞서 대전시는 시민사회단체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을 통해서는 "비문 수정 및 삭제는 사업을 벌인단체가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 후손과 협의해 할 일로 대전시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비영리단체 국고지원법에는 사업계획서와 다른 용도로 보조금을 사용했을 경우 환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허위사실을 기재한 경우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대전시가 편파적인 행정을 넘어 의도적으로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007년 1월하지만 잘못 세워진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의 휘호비는 아직도 그대로 서 있다. 이 명예회장 조부의 휘호(國忠民爲)와 호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2007 오마이뉴스 심규상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후손인 김옥경씨는 "대전시가 잘못 세워진 비문의 인물이 전직 국회의원을 지낸 건설회사 명예회장의 조부이기 때문에 문제해결을 꺼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강창일 열린우리당 의원도 지난 2005년 대전시를 상대로한 국정감사를 통해 "같은 공적비의 앞뒷면에 서로 다른 사람의 공적 내용이 새겨지는 코미디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조부의 공적내용이 새겨진 것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 아니냐"고 추궁한 바 있다.

실제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의 지난 2005년 대전충남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과 기업인으로는 각각 계룡건설(55.0%)과 이인구 회장(40.0%)이 꼽혔고 삼성(20.8%)과 이건희 회장(9.6%)을 앞서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뜻을 기린다며 대전광역시와 서구청으로 부터 모두 1260만원의 보조금을 받아 건립했으나 비문 앞면에 독립운동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의 생애와 휘호를 새겨넣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인구 명예회장, <오마이뉴스> 손배소 기각 확정

법원 "이씨 조부 항일행적 관련 보도는 진실에 부합"

▲2007년 1월 모습. 대전 서구청은 잘못 세워진 생애비를 철거했다. 하지만 수정 후 새로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철거돼 공원 화장실에 버려진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의 생애비.
오마이뉴스심규상

법원은 이인구 계룡건설산업 명예회장 조부의 항일운동 행적은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는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해 "진실에 부합하거나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최종 판단했다.

대전고등법원 제 2민사부는 지난 해 10월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 등이 "조부의 반일 항일투쟁 경력을 조작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보도해 명예를 훼손하고 계룡건설과 의 사회적 가치를 저하시키고 조부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오마이뉴스>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원심 판결 그대로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MBC에 대해서도 3000만원을 지급하고 '정정보도' 하라는 원심을 깨고 계룡건설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 측은 고등법원 판결 후 상고를 제기하지 않아 소송이 종결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가 반일 항일투쟁을 하고 애국지사 김용원과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원고 측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실증적인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볼 때 기사내용은 진실에 부합하거나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해당단체가 국고를 지원받아 엉뚱한 사람의 공적비를 세웠다는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해서도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대전시로부터 보조금을 신청하면서 계룡건설 이 명예회장 조부에 대해서는 사업내용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며 "진실에 부합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오마이뉴스>는 지난 2003년 12월 '독립투사의 공적비가 변조된 사연'을 통해 대전애국지사숭모회 등이 대전지역 곳곳에 세운 이 명예회장의 조부인 고 이돈직씨 비문에 새겨진 항일운동 행적과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고 무리하게 끼워넣어진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특히 대전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은평공원(월평공원)에 세워진 이돈직 생애비와 휘호비는 당초 사업계획에는 없는 것으로 지원대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 명예회장 등은 지난 2004년 4월 <오마이뉴스>와 MBC를 상대로 모두 16억원(<오마이뉴스> 6억원). 2심에서는 12억원(<오마이뉴스> 3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전시는 그동안 생애비와 휘호비의 오류를 시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당사자 간에 소송이 제기돼 있어 그 결과를 봐야 한다"고 말해오다 소송이 종료된 최근에는 "소송 내용은 생애비와 휘호비 시정문제와는 별개"라고 입장을 바꿨다.

/심규상 기자

- ⓒ 2007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