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의 단막극의 시리즈는 유구하다. 1984년 <드라마 게임(~1997)>을 시작으로 <테마 드라마(1997)> < TV문학관(1998~2011) > <금요극장(1987)> <일요베스트(1999~2000)> <드라마 시티(2000~2008)를 지나 2010년 <드라마 스페셜>로 정착한 이래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말이 정착이지 '시청률 지상주의'로 가득 찬 TV 시장에서 일부 단막극 애청자들만의 선택을 받는 <드라마 스페셜>의 운명은 애처로웠다. 토요일 밤과 일요일 밤 늦은 시간을 전전했으며 '연작'의 모색을 거쳐 2014년과 2015년에는 상반기-하반기로 나뉘어 27편, 15편을 방영했다. 이후 2016년부터 올해까지 해마다 10편의 작품을 <드라마 스페셜> 이름으로 방영했다.

그러나 '애처로운 운명'에 저항하는 <드라마 스페셜>의 방식은 '도전'이었다. 2010년 <무서운 놈과 귀신과 나> <위대한 계춘빈>, 2011년 <영덕 우먼스 씨름단> <터미널>, 2012년 <환향-쥐불놀이> <칼잡이 이발사>, 2013년 <마귀> <엄마의 섬>, 2014년 <들었다 놨다> <간서치 열전>, 2015년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 <붉은 달>, 2016년 <빨간 선생님> <전설의 셔틀>, 2017년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강덕순 애정변천사> 등 장편 혹은 미니 시리즈에서 시도할 수 없었던 드라마의 주제와 형식, 서사 등을 다루면서 KBS 2TV의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하는'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2018년 <드라마 스페셜>은 아쉽다.

<드라마 스페셜>의 경쟁작은 웹드라마인가   
 
 2018 KBS2 <드라마 스페셜> '너무 한낮의 연애'의 한 장면.

2018 KBS2 <드라마 스페셜> '너무 한낮의 연애'의 한 장면. ⓒ KBS2


올 한 해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른바 웹드(웹드라마)가 잔잔하게 인기를 끌었다. TV는 중장년층이 주고객인 올드미디어가 되어가는 반면, 바쁜 일상 속에서 틈틈이 즐길 수 있는 인터넷과 모바일은 젊은층의 사랑을 받으며 뉴미디어로서의 자리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맞는 드라마의 유통방식을 고민하다 나온 것이 웹드라마다. 기존 드라마와 달리 15분~30분 정도의 짧은 분량의 웹드라마는 네이버 등 웹사이트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다. 이 중에는 <퐁당퐁당 love>(2015)처럼 지상파 TV로 역진출(MBC 편성)하는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젊은층이 주 타깃인 만큼 이들 드라마는 대부분 젊은 남녀를 주인공으로 그들의 연애와 사회생활 속 이야기, 고민을 다뤄 공감을 얻고 있다. 이미 <간서치 열전>(2014)을 웹드라마 형식으로 방영한 바 있는 <드라마스페셜>은 2018년 시리즈에서는 젊은 층을 주 타깃으로 설정했는지 첫 작품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부터 <닿을 듯 말듯>까지 총 10편의 이야기 모두 젊은 남녀를 소재로 한 내용을 방영했다. 심지어 <엄마의 세 번째 결혼>처럼 모녀간의 갈등조차도 그 초점을 딸과 딸이 도발한 연애 사건에 둔 채 이야기를 전개했다.

당연히 2018년 시리즈에서는 사도세자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붉은 달>(2015)이나 파발꾼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마귀>(2013)같은 '새로운 시각의 사극'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스릴러 형식으로 해체된 가족 관계를 다룬 <엄마의 섬>(2013)이나 노인 누아르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2010), 지역 정치 장기판의 졸이 되어버린 소시민의 해프닝을 다룬<서경시 체육회 구조조정 스토리>(2011) 같은 신선한 소재와 형식의 이야기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KBS 2TV 드라마 부진, 그 원인은...
 
 2018 KBS2 <드라마 스페셜> '엄마의 세 번째 결혼'의 한 장면.

2018 KBS2 <드라마 스페셜> '엄마의 세 번째 결혼'의 한 장면. ⓒ KBS


올 한 해 KBS 2TV 드라마들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부진'의 이유를 그저 시청률 면에서만 질타하는 건 결과론적이다. 시청률은 부진했지만 호러와 로코의 조합을 시도했던 <러블리 호러블리>나, 귀신이 된 탐정의 수사극 <오늘의 탐정>, 하우스 핼퍼를 매개로 한 <당신의 하우스 헬퍼> 등 신선하고 실험적인 시도조차 묻혀서는 안 될 일이다. 시청률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평가한다면 최근 미니시리즈로 귀환하고 있는 김순옥, 문영남 등 이른바 '막장' 장르 등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문제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토속 신앙과 엑소시즘의 콜라보인 OCN 장르물 <손 the guest>가 올해의 드라마로 주목받고 있는 것과 달리 <러블리 호러블리>나 <오늘의 탐정> 등이 출연진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쓸쓸히 퇴장해야만 했단 사실이다. 두 드라마는 애초 시도했던 장르적 특성이나 주제 의식을 스스로 휘발한 채 쓸쓸히 사라졌는데, 이런 결과가 나온 데는 어설프고 안이한 완성도가 한 몫 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어설픈 완성도는 <드라마 스페셜> 시리즈에서도 이어지고 만다.

2017년 '30회 TV 드라마 단막극 공모전'에서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된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황승기 연출, 배수영 극본)>가 연 서막은 산뜻했다. 수능 출제 의원으로 연수원에 입소한 도도혜(전소민 분)가 감금이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첫사랑, 전남편과 엮이며 다시 한 번 '흑역사'를 재연하는 기발한 설정의 '로코'다.
 
 2018 KBS2 <드라마 스페셜>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의 한 장면.

2018 KBS2 <드라마 스페셜>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의 한 장면. ⓒ KBS


올 한 해 <드라마 스페셜> 중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작품이지만 솔직하고 발랄하다 못해 때론 지나친 도도혜의 캐릭터나 전남편, 첫사랑 캐릭터는 수능 출제 연수원이라는 배경의 신선함과 달리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나, 전개, 연기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는 작품이었지만, '공모전 최우수 작품'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땐 평범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특별하게 단점이 두드러지지 않는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와 달리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방관'하는 현대인들의 딜레마를 다룬 <잊혀진 계절(김민태 연출, 김성준 극본)>이나, 자살 문제를 다룬 <도피자들(유영은 연출, 백소연 극본)>의 경우, 작품이 다루는 주제 의식에 있어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우리 사회에서 한 번쯤 다뤄볼 만한 주제이긴 하나, 과연 1시간여의 단막극을 통해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주제의식이 역설적으로 범죄나 자살을 합리화하거나 방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을까 아쉬움을 생겼다.

또한 남녀간 사랑과 이별을 통해 시대적 공감을 얻으려 했던 <너무 한 낮의 연애(유영은 연출, 김금희 극본)>는 이미 김금희 작가의 소설로 대중적으로 인정받은 작품인 데다, 최강희가 출연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남녀간 이별이라기엔 무지하고 비겁해서 아팠던 19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그리고 현실에 대한 여전한 공감을 한 시간여 동안 잘 그려냈는가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유려한 영상미, 그러나...
 
 참치와 돌고래

참치와 돌고래 ⓒ kbs2

  
 너무 한낮의 연애

너무 한낮의 연애 ⓒ kbs2

 
 닿을 듯 말듯

닿을 듯 말듯 ⓒ kbs2


<참치와 돌고래(송민엽 연출, 이정연 극본)>나, <닿을 듯 말듯(황승기 연출, 배수연 극본)>은 수영과 컬링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남녀 주인공을 엮었다는 점에서 신선했지만, 과연 각 종목을 '소재' 이상으로 극에 잘 버무려 냈는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닿을 듯 말듯>은 여주인공의 청력 이상을 과거 여주인공 아버지의 강제진압 현장에 있었던 전경 출신 선배(그마저도 강제 차출돼 전경이 된 인물)에게 돌리는 방식이었다. 그 책임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화해를 보여주는 카메라의 시선은 안이했다. 과거사라는 묵직한 해원에 대한 해법으로 설득력을 가졌는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남녀 사이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이토록 오랜 이별(송민엽 극본, 김주희 연출)>은 도돌이표가 반복되는 돌림 노래를 보듯 느슨했고 <너와 나의 유효기간(김민태 연출, 정미희 김민태 연출)>은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한 90년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였다. 또한 모녀 사이의 관계를 다룬 <엄마의 세 번 째 결혼(김영진 연출, 정미희 극본)>은 김영진 연출의 은퇴작이라는 기념비적 작품이었지만, 시한부 환자로 결혼을 통해 한 몫 챙겨 딸에게 주겠다는 엄마의 이기적인 사랑과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결혼할 아저씨의 아들에 대한 딸의 무책임한 도발을 그저 모녀간의 해프닝과 화해로 마무리하려 해 공감하기 어려웠다.

KBS 2TV 드라마의 장기 중 하나인 오피스물 <미스 김의 미스터리>는 산업 스파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를 다루고자 했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김과장>, <저글러스>에서 이미 너무나 익숙해진 형식을 답습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만을 남겼다. 이런 상투적 접근은 최근 신선한 내용임에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죽어도 좋아>까지 이어지며, '장기'가 '함정'이 되어버리는 한계에 봉착하게 됐다.
 
 2018 KBS2 <드라마 스페셜> '도피자들'의 한 장면.

2018 KBS2 <드라마 스페셜> '도피자들'의 한 장면. ⓒ KBS2

   
그럼에도 2018 <드라마 스페셜> 10편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영상미다. 하지만 거듭된 영상의 미학이 주제의 천착과 구성의 아쉬움을 상쇄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영상'만으로 설득하고자 하는 건 아닌가라는, 안이함에 문제 제기를 하게 된다. 또한 필요 이상의 필터링된 뿌연 화면에 대한 피로감까지 높아졌다. 이 최근 <땐뽀걸즈>를 상대로도 제기되고 있는데, 과연 필요한 영상적 구현인가라는 의문까지 갖게 한다.

물론 살펴본 2018 <드라마 스페셜>은 남녀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냈지만, 다양한 주제와 구성 방식을 배치하려 애쓴 흔적 또한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8년 <드라마 스페셜>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냉담하다. 그리고 이 냉담함은 올 한 해 KBS 2TV 미니시리즈에 대한 시청자의 냉담함으로 이어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제 아무리 좋은 의도와 기술이라도 그 속에 시청자를 설득해 낼 수 있는 기승전결의 개연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해 내기엔 미흡하다. 올해와 같은 방식이라면 2019년에도 <드라마 스페셜>을 향한 시청자들의 차가운 시선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때보다도 <드라마 스페셜>의 운명이 걱정되는 2018년이다.  
 미스 김의 미스터리

미스 김의 미스터리 ⓒ kbs2

   
 이토록 오랜 이별

이토록 오랜 이별 ⓒ kbs2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드라마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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