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C: 더 벙커>의 김병우 감독

<더 테러 라이브>로 성공적으로 상업영화에 데뷔한 김병우 감독이 5년 만에 < PMC: 더 벙커>로 돌아왔다. ⓒ CJ 엔터테인먼트

  
시작부터 군대 이야길 할 수밖에 없었다. 비무장지대 지하에 마련된 벙커에서 민간기업이 고용한 용병들이 고군분투하는 영화 < PMC: 더 벙커 >(아래 < PMC >)는 일단 군인들이 전면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김병우 감독은 무기 종류와 각종 장비명을 막힘 없이 술술 설명했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함께 호흡한 배우 하정우의 간단한 아이디어를 김병우 감독은 5년에 걸쳐 발전시켰고, 지금의 영화를 완성해냈다. "10년에 두 작품이면 너무 적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그는 "동시에 제가 재밌어하는 걸 만드는 거면 기간이 뭐가 중요할까 생각하기도 한다"고 오랜만에 차기작을 내놓은 심경을 전했다. 

액션보다 더 힘들었던 또 다른 숙제

"처음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너무 간단해서) 영화화가 가능한지 아닐지 판단할 단계가 아니었다. 저 역시 벙커에서 일어난 일? 너무 재밌겠다는 생각이었지. 영화화 여부는 이걸 좀 더 파봐야 하니까 일단은 해봐야겠다 싶었다. 공간 자체가 흥미로우니까 여러 설정을 덧붙이며 시나리오를 써갔지. 제1 땅굴, 2 땅굴, 3 땅굴 등이 발견되는 때가 있었잖나. 그곳이 사실 남북한이 몰래 만나 각종 결정을 하는 공간이라고 상상했다. 거기다가 부대 시설을 남한과 북한이 각자 만들었다면 지금 영화 속 공간 같지 않을까 생각했지."

시나리오 작업만 3년 수개월. 처음엔 남한과 북한 간 이야기였다가 민간군사기업이 고용한 용병 설정을 덧대면서 이야기가 진전됐다. PMC(Private Military Company) 관련 서적만 십 수권을 읽었다는 김병우 감독은 "군인이라는 설정만으론 애국심, 전우애 정도의 키워드만 떠올랐기에 인물의 내적 갈등을 극대화하려면 돈 벌러 들어온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영화 초반 기획 단계의 설정을 전했다.
 

 영화 < PMC: 더 벙커>의 한 장면.

영화 < PMC: 더 벙커>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용병이라는 설정과 함께 중요했던 건 국가적 코드를 배제하는 것이었다. 한국 군인이라고 하면 남한과 북한 요소가 강해질 수밖에 없지 않나. 인물 내면으로 들어가 그 갈등을 다루려 했는데 국가 요소가 있으면 그게 흐려질 것 같았다. 민간군사기업은 전부터 몇 개 알고는 있었지. 블랙워터 같은 회사들도 있었고, 좀 더 찾아보고 다뤄보기 위해 여러 책을 봤다. 그 집단의 성격을 자세히 알아야 하니까. 

벙커에서 나와 공중에서 떨어진다는 설정은 초기부터 해놓은 것이었다. 제 입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북한 엘리트 의사인) 윤지의(이선균)였다. 영화 중반에 갑자기 등장하기에 인물에 대해 소개할 근거가 마땅히 없었다. 그런 그가 용병팀 리더 에이헵(하정우)에게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하잖나. 두 인물의 교감하며 관계를 쌓아가는 게 중요했는데 동시에 교감을 위한 사건을 만들 상황이 아니었다. 이선균 선배도 그래서 제게 여러 아이디어를 주기도 했고, 저 스스로도 풀지 못한 숙제를 안고 가는 심정으로 촬영을 시작해야 했다."


긴장감과 박진감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액션으로 꽉 차 있는 영화였는데 정작 감독의 고민은 인물에 있었다. 김병우 감독은 "이선균 선배 덕에 매우 차가웠을 영화가 어느 정도 (사람의) 온기로 채워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에이헵을 구원하고 싶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 PMC >의 인물 정서는 김병우 감독의 전작 <더 테러 라이브>의 그것에서부터 이어진다. 홀로 제한된 공간에서 분투해야 했던 윤영화(하정우) 곁에 또 다른 인물을 세우고 싶었던 감독의 바람이 지금 작품에 담긴 것. "<더 테러 라이브>를 끝내고 부족했던 걸 생각해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던 김병우 감독이 설명을 이었다.

"<더 테러 라이브> 땐 인물과 사건이 반반이거나 사건의 비중이 좀 더 많았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인물을 온전하게 완성하지 못하고 끝내버린 느낌이 있었다. 사건에 쏠려 버렸다고 할까. 영화 내에선 인물을 따라갔는데 사건을 위해 인물이 희생돼버린 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이후엔 인물에 더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설계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 PMC >는 구조 자체가 에이헵의 심리탐구세계라고 할 수 있다. 

벙커의 구조가 복잡한 것도 에이헵의 심리를 형상화시킨 것이다. 모든 사건과 설정은 에이헵에게 자극을 주는 용도여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건은 지워나갔다. 마지막 낙하산 장면에서 그런 선택을 하게끔 해줘야 하니까. 영화 안에서 몇 차례 에이헵은 같은 질문을 받잖나. 동료가 위기에 몰렸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매번 에이헵은 같은 답을 내린다. 그러다 윤지의를 통해 스스로 각성하는 것이지."

 

 <PMC: 더 벙커>의 김병우 감독

"<더 테러> 이후엔 인물에 더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설계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 PMC>는 구조 자체가 에이햅의 심리탐구세계라고 할 수 있다." ⓒ CJ 엔터테인먼트

 
이 대목에서 김병우 감독은 각성이란 단어를 '구원'으로 정정했다. 한국 군대를 불명예 제대한 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돈에 오고 가는 용병 생활에 찌든 그(에이헵)를 감독은 구원시키고 싶다고 고백했다. "오랫동안 떠안고 있던 응어리들을 떨치고 보다 나은 사람으로 살 수 있겠다는 어떤 희망을 담고 싶었다"고 김병우 감독이 말했다. 

제한된 공간이라는 엔진

제한된 공간의 기막힌 활용. 그의 전작이자 상업영화 데뷔작이 그랬고 학부생 때 찍은 <리튼>(written) 역시 비좁은 욕조 안에서 남자가 깨어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보통은 이런 닫힌 공간은 예산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영화적 수단이기도 한데 그만큼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제한된 공간에 대한 일종의 애착이라고 묻자, 김병우 감독은 '그것보단 인물에 대한 추종으로 봐달라'고 정정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벌인다는 일종의 하이콘셉트(high-concep, 설정이나 내용이 복잡하지 않지만 특이하면서 재밌는)보단 전 인물의 시선을 쫓아가며 관객으로 하여금 바로 옆에서 인물과 함께 사건을 겪게 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더 테러 라이브>와 < PMC >는 그런 면에서 기본 엔진이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전작의 엔진을 개량하고 실린더 사이즈를 키운 게 지금의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왜 그랬냐고 여쭤보시면 제가 자신 있고, 잘하는 걸 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후 또 다른 영화를 어떻게 만들지는 일단 시간이 좀 지나고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 PMC >를 제가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더 테러 라이브> 직후에 그랬듯 앞으로 뭘 할지 보다는 뭘 했는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사실 지금 빈털터리다. 갖고 있는 이야기가 없거든. 음악이나 만화책, 그리고 요즘은 유튜브 채널을 많이 보고 있다. 사이-파이(Sci-Fi, 공상과학)에 관심이 가는데 아직 한국 영화 시장에선 투자하기엔 여러 약점이 있는 것 같다. 많은 감독님이 도전해보고 싶어 하는 산일 텐데 저도 그 산에 한 번 오르고 싶다."

 

 영화 < PMC: 더 벙커>의 한 장면.

영화 < PMC: 더 벙커>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 PMC >에 등장하는 무기의 비밀

기본적으로 전투 설정이 많은 만큼 각종 무기와 장비의 고증 또한 필수였을 것이다. 극중 에이헵은 작은 권총 하나만 갖고 팀을 지휘한다. 용병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무기를 쥐고 벙커를 활보한다. 무기류에 대해 김병우 감독에게 물었다.

"용병 집단이다 보니 어떤 제식 총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각양각색의 무기를 각자가 구해서 자신에 맞게 개량했을 거라 생각했다. 가능한 서로의 총기가 안 겹치게 설정했다. 용병을 위협하던 또 다른 용병들은 중국에서 만든 총으로 통일시켰지만, 이쪽인 다국적 인물이 모이다 보니 다 다른 총기를 드는 게 중요했다.

영화를 하면서 장비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됐다. (다리를 못 쓴다는 설정 상) 에이헵은 후방에서 지시하는 인물이기에 교신 장비를 쓸 것이라 설정했지. 참고로 에이헵의 권총은 발터시리즈다. 007(제임스 본드)가 쓰는 것과 같은 계열의 총이다. 총기의 기능보단 캐릭터를 생각한 결과다. 만약 제가 그런 실전 상황이라면 발터보단 좀 더 무게감 있는 글록17를 잡겠지만, 에이헵과는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김병우 PMC 더 벙커 하정우 이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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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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