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부터 지금까지 치른 9경기에서 1승 7패 1무, 거기에 최근 5연패, 마지막 승리를 거둔 것은 2010년… 불혹에 접어든 한 UFC 파이터의 지난 9년간 전적이다. 어찌보면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 자칫 연패만 당해도 냉정한 퇴출의 칼날을 받아야 하는 UFC 옥타곤에서 그러한 성적으로 살아남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이 느껴진다.

심지어 해당 선수는 오는 30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더 포럼에서 있을 UFC 232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 비록 언더카드이기는 하지만 올해의 마지막을 장식할 의미 있는 넘버 시리즈에 나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도대체 그 선수는 누구이길래 이렇게까지 많은 기회를 받고 있는가.

하지만 그의 이름을 듣고 나면 어느 정도는 고개가 끄덕여지며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엄청난 특혜를 받고 있는 듯이 느껴지는 해당 선수는 다름 아닌 '천재' 비제이 펜(40·미국)이기 때문이다. 펜은 이날 넘버 시리즈에서 '마법사' 라이언 홀(33·미국)과 한판승부를 예약해놓은 상태다.
 
 비제이 펜은 2010년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승리를 맛보지 못했다.

비제이 펜은 2010년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승리를 맛보지 못했다. ⓒ UFC

 
'아, 옛날이여…' 리얼 천재였던 하와이안 전사
 
앞서 언급했던 전적은 어디까지나 2010년도부터다. 이전으로 거슬러 내려가면 왜 주최측에서 펜을 아끼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2001년 격투무대에 데뷔한 펜은 2009년까지 치렀던 21경기에서 15승 5패 1무를 기록했다. 5패 중 4패는 료토 마치다, 조르주 생 피에르(2회), 맷 휴즈 등 자신보다 윗체급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당한 것이다. 다른 선수들처럼 자신의 체급에서 안정적으로 경기를 가졌다면 커리어는 더욱 좋아졌을 것이 분명하다.

4패 역시 할말이 많은 경기다. 펜은 UFC 63대회서 휴즈에게 앞선 경기 내용을 보이다 이후 체력적 문제를 노출하며 역전패했다. 체력이 영향을 끼치지 않는 순수 기량 대결에서는 휴즈보다 앞섰다. 이를 입증하듯 이전 UFC 46, UFC 123대회서는 각각 서브미션과 넉아웃으로 손쉽게 경기를 잡아낸 바 있다.

마치다와의 대결 역시 판정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페더급까지 가능한 경량급 파이터가 중량급 강자 마치다와 경기를 가졌다는 자체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생피에르와의 1차전은 누구의 손이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을 경기였다. 당시 대결에서 펜은 타격에 한창 물이 올라있던 생 피에르를 상대로 외려 타격전에서 앞서나갔다.

생 피에르의 공격은 빗나가기 일쑤였고 반대로 펜의 예리한 펀치는 거침없이 안면에 꽂혔다. 안되겠다 싶은 생 피에르는 레슬링 카드를 꺼내들고 점수 쟁탈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펜은 멀쩡했던 데 비해 승자인 생 피에르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퉁퉁 부어올라 누가 이겼는지 혼돈이 올 정도였다.

2차전 같은 경우 레슬링을 앞세운 생 피에르의 압승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후 생 피에르의 바셀린 도포 사실이 밝혀지면서 팬과 관계자들 사이에서 '반칙 논란'으로 한참 시끄러웠다.

한창때의 펜은 동체급은 당연하다시피 지배했으며 상위체급으로의 외도가 많았다. '천재'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워낙 타고난 자질이 좋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본격적으로 주짓수를 수련한 펜의 습득 능력은 그야말로 '괴물'에 가까웠다. 화이트벨트로 블루벨트 대회에 참가해 우승까지 거머쥔 것은 물론 평균 10년 정도 걸린다는 블랙벨트를 단 4년 만에 따는 등 선천적인 재능으로 상식을 깼다.

그러한 펜이 관중들에게 어필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정상급 주짓수 테크닉이 아닌 화끈한 타격능력이었다. 타격을 제대로 집중 연마한 것이 아님에도 놀라울 정도로 빠른 핸드 스피드와 천부적 운동신경을 내세워 전문 타격가를 압도했다. 정교한 맛은 다소 떨어지지만, 단순히 막고 피하고 때리는 수준에서는 가히 타격 짐승을 연상케 했다.
 
'몰락한 천재', 불혹의 투혼 보여줄까?
 
물론 현재의 펜은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기 힘든 상태다. 전성기가 한참 지난 상태에서 나이까지 많은 지라 예전 같이 체급을 넘나드는 괴짜 행보는커녕 동체급에서 1승을 따내는 것조차 쉽지 않아졌다. 완전한 은퇴를 하는 쪽이 더 나아 보인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느껴질 정도다. (펜은 연패 기간 동안 은퇴와 복귀를 반복했다.)

펜과 맞붙을 홀은 분위기가 상당히 좋다. 데뷔전에서만 판정으로 패했을 뿐 이후 6연승의 신바람 행진을 벌이고 있다. 5연패로 신음하고 있는 펜과는 극과 극 행보다. 6연승과 5연패만 놓고 봤을 때 양선수의 시합이 이뤄진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펜의 이름값이 아니었다면 성사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TUF 22결승서 코너 맥그리거의 동료로 유명한 아르템 로보프(32·아일랜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던 홀은 빼어난 주짓떼로다. 테이크다운 능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일단 넘기거나 넘어진 상태에서 그라운드 싸움이 시작되면 물 흐르는 듯한 유려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주짓수 감옥 속으로 가둬버린다.

스탠딩에서 유효타를 쌓아가다가 답답해진 상대가 거리를 좁히며 적극적으로 나오면 기습적인 하단태클과 하체관절기 시도 등으로 전장을 바꾸는 플레이를 선호한다. 2016년 12월 ´더 불리(The Bully)´ 그레이 메이나드(39·미국)에게 이긴 뒤 2년 만에 옥타곤 복귀전을 갖는다.

일단 최근의 전적과 분위기만 놓고 봤을 때는 펜 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위험한 타격가 스타일이 아닌 주짓떼로라는 점은 그나마 희망을 갖게 한다. 순발력은 떨어졌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은 그라운드 기술을 가지고 있는 펜인 지라 홀을 상대로는 스탠딩, 그래플링에서 사용가능한 옵션이 어느 정도 있어 보인다.

과연 9년여 동안 승리의 맛을 보지 못한 펜은 만만치 않은 홀을 상대로 불혹의 투혼을 보여줄 수 있을지, 희박한 확률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천재의 반란'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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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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