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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의원수가 아니다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둘러싼 선거제도 개혁은 현재 정치권의 큰 현안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의원 수의 문제'가 커다란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다.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의원 수를 늘려야 하는데, 국민 대다수가 의원 수 확대를 반대하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선거제도 개혁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 의원 수의 문제는 선거제도 개혁을 반대하는 중요한 명분으로 작동하고 있다.

유럽에 있는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약 33만 명에 불과하지만 국회의원 수는 63명이다. 국회의원 한 명당 5238명의 국민을 대표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북유럽의 스웨덴은 국회의원 1명 당 2만7977명을 대표하고, 노르웨이는 의원 1인당 3만769명을 대표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1명이 무려 약 17만 명의 국민을 대표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의원 수는 총 576명로서 의원 1인이 대표하는 인구수는 6만9683명이고, 독일은 의원 수가 709명으로 의원 1인당 인구수는 12만2501명이다.

제헌헌법 제정 당시의 1948년에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수는 200명이었지만, 당시의 인구는 약 2천만 명에 불과했다. 현재 우리 인구는 5천만 명을 넘어 제헌의회 당시보다 인구가 2.5배 증가했다. 그러나 의원 수는 0.5배 증가했을 뿐이다.

"소수를 유지함으로써 성역을 유지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를 유지함으로써 '독점적 특권'을 유지한다"는 그릇된 권위주의적 상식이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대법관이 300명을 넘어서는 등 대부분 유럽국가의 대법관 수는 100명 수준이지만, 우리나라의 대법관은 14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대법관 수를 소수로 유지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대법관을 소수화함으로써 대법관의 권위와 특권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또 과거 외무고시 역시 적은 수를 선발하여 고위 외교관의 귀족화와 특권화를 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쉽게 말해, '소수의 순혈주의'를 유지함으로써 '성골과 진골'의 특권을 유지하고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특권과 독점을 극복하고 정상적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듯 특권화된 '소수의 성역'을 허물어야 한다. 대법관 수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여 당연히 대폭 증원돼야 마땅하고,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의원 숫자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오늘날 국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어떻게 진정성 있게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에게 위임받은 직책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는가의 문제이다. 그런 국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는 의회를 구성할 수 있는 선거제도의 도입이다. 민의가 왜곡되어 의회가 구성되고 승자독식으로 많은 국민의 뜻을 근본적으로 봉쇄하는 현 선거 제도야말로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초래하는 핵심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의원 수의 문제'가 선거제도 개혁의 당위를 넘어설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는 못한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지금 특권화되고 성역화된 국회의 높다란 문턱을 대폭 낮춰 그 수를 늘리고 특권은 대폭 낮추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다.

태그:#선거제개혁, #연동형, #의원수, #성역,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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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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