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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소방재난본부에선 7일 현재 한강 투신 여성 사망 사건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선 7일 현재 한강 투신 여성 사망 사건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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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투신 20대 여성 사망 사고가 119의 장난전화 오인뿐 아니라 구멍난 자살예방체계가 부른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소방당국은 당시 초동 대응이 미흡했을 뿐 아니라, CCTV와 자살방지센서 등이 제대로 작동 안 돼 최씨의 투신 여부조차 확인 못 한 채 수색을 마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마포대교에서 한강에 뛰어든 최아무개(21)씨는 119에 구조를 요청했지만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유가족이 지난 4일 <오마이뉴스>에 공개한 전체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접수요원은 최씨의 신고 전화를 받고도 '수영하면서 전화하다니 대단하다'는 식으로 대했고, 정작 정확한 사고 위치 파악이나 사고 대처 요령 전달엔 소홀했다(관련 기사: 한강 투신 여성 유족 "119 통화 모두 듣고 판단해 달라").

1분 차이로 놓친 CCTV 영상

서울소방재난본부(아래 소방본부)는 7일 오전 서울 중구 본부를 직접 방문한 유가족에게 최씨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 영상과 수난구조대 무선 녹취록을 공개했다. CCTV 영상은 사고 직후에는 발견하지 못했다가 지난달 말 유가족 민원으로 다시 검색해 찾아낸 것이다.

밝은색 파카를 입은 최씨 모습은 지난 11월 27일 새벽 1시 22분쯤 마포대교(길이 1390m) 북단인 마포 방향에서 1/3 정도(450m 안팎) 지점에서 발견됐다. 같은 날 오전 1시 28분쯤 최씨가 119로 구조 신고하기 약 6분 전이다.
 
지난해 11월 27일 새벽 1시 22분쯤 마포대교 위를 서성이는 최아무개씨 모습이 119수난구조대 CCTV에 포착됐다. 하지만 최씨가 경계 지점에 있어 경보 신호는 울리지 않았고, 오른쪽 난간은 작업자 통로라 자살방지센서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유가족 제공 영상 갈무리)
 지난해 11월 27일 새벽 1시 22분쯤 마포대교 위를 서성이는 최아무개씨 모습이 119수난구조대 CCTV에 포착됐다. 하지만 최씨가 경계 지점에 있어 경보 신호는 울리지 않았고, 오른쪽 난간은 작업자 통로라 자살방지센서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유가족 제공 영상 갈무리)
ⓒ 서울소방재난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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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최씨의 신고 직후 이 영상을 찾았다면, 정확한 추락 시점과 지점을 확인할 수 있어 구조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런데 119수난구조대에서는 당시 마포대교 CCTV 25대 영상을 고속으로 검색하면서, 시간 절약을 위해 신고 접수 5분 전까지만 검색했고, 1분 남짓 차이로 이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소방본부 조사팀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오는 시점은 보통 추락 후 1, 2분 내외인데 이번엔 5분 30초 이전이었다"라면서 "CCTV를 5분 정도 범위를 두고 검색해 (최씨 영상은) 범위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출동 대원들은 신고 시점 기준으로 (물흐름에 따른) 예상 위치 파악이 가능한데, 신고 뒤 5분 30초가 지났다는 정보는 몰랐다"면서 "대부분 1분 안팎인데 5배 이상 시간이 흘러 신고자의 위치가 (예상 지점과) 크게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난구조대 예상 수색 지점과 실제 위치가 어긋나 최씨를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경고 신호도, '센서'도 없었다

마포대교는 한강에서도 투신자가 가장 많은 다리로 꼽히지만 마포대교에 설치된 CCTV는 초기 모델이어서 기능이 낙후됐고 사각지대가 많다. 공교롭게 최씨가 있었던 지점이 CCTV 경보 사각지대였고, 난간엔 자살방지센서조차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팀 관계자는 "CCTV는 관제요원이 앉아서 계속 지켜보는 게 아니라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신호가 울리도록 돼 있다"면서 "화면에 블록 설정을 해 그 안에 사람이 30초간 머무르면 신호가 오게끔 돼 있는데 (최씨가 있던) 경계 지점은 블록 설정이 안 돼 신호가 없었고, 최씨가 내려간 부분이 '작업구(작업자 통로)'여서 센서도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 2013년 119특수구조대원들이 한강에서 투신자 긴급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지난 2013년 119특수구조대원들이 한강에서 투신자 긴급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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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분 수색에 그쳐... "구조대, 확신 없었다"
  
CCTV 등 구멍난 자살예방시스템은 최씨의 정확한 위치 파악을 어렵게 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최씨의 신고가 장난전화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부추겼다.

소방본부에 따르면 사고 당일 출동대는 지휘본부차, 육상구조대 2대, 구급차량, 펌프차 등 5대로 편성됐다. 수난구조대는 수면 위에서 서치라이트로 수색했고, 마포대교 위와 남북단 수면에서도 각각 수색 작업이 진행됐다.

애초 구조대는 사고 현장 도착 후 20분 정도 주변을 수색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날 구조대 녹취록 확인 결과 실제 수색 시간은 13분 정도에 불과했다. 구조대 녹취록에 따르면 이날 새벽 1시 30분쯤 구조 지령이 난 뒤 여의도수난구조대가 탄 배는 1분 30초만인 1시 31분 35초쯤 마포대교 남단에 도착해 수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난구조대는 불과 6분 뒤인 1시 38분쯤 "남북단 상류하류 다 조사했는데 특이사항 없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다시 6분 뒤인 1시 44분쯤에는 지휘부에서 "철수하라"는 지령이 떨어진다.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뒤 철수하기까지 전체 수색 시간은 13분 정도에 불과했다.

이날 최씨 유가족이 "수난구조대가 한 번 (구조) 나가면 40분 안에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들었다"면서 통상 수색 시간이 얼마냐고 묻자, 조사팀 관계자는 "특정하기 어렵다"면서도 "투신이 확실하면 찾을 때까지 수색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유가족인 "수색을 15분에서 20분 했다는 건 투신이 확실하다는 생각은 안 한 건가"라고 되묻자 이 관계자는 "그렇게 유추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당시 구조대가 '피해자 투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느냐'라는 기자의 거듭된 질문에도 그는 "그렇게 보인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이날 익사자 구조나 시신 유실 방지를 위한 로프 작업 같은 후속 작업도 없었고, 다음날 아침 시신 수색 작업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12월 1일 최씨의 주검이 한강 하류인 가양대교 북단에서 발견된 뒤에야 최씨의 '신고'는 사실로 확인됐다.

최초 접수자 '장난전화 의심'이 화근
 
▲ 한강 투신 여대생 구조 신고 119 통화 녹취록 지난 11월 말 여대생 최씨가 서울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린 후 119에 구조 요청을 했다. 하지만 신고 접수를 받은 119대원은 “한강인데 말을 잘하시네요”리며 “지금 강에서 수영하시면서 저하고 통화하는 거냐”고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구조 당국은 이런 통화 주고받다 뒤늦게 출동했지만 최씨를 찾지 못하고 결국 최씨는 사흘 뒤 가양대교 인근에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이 영상은 최씨와 구조 대원의 녹취록을 담은 내용이다. (제공 : 제보자 / 편집 : 박소영)
ⓒ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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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의 신고가 '장난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최초 접수자의 의심스런 대응도 화를 키웠다. 조사팀 관계자는 이날 "접수요원 본인도 큰 충격을 받고 혼란스러워 정확하게 왜 그랬는지 얘기를 잘 못하는 상황"이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장난 전화를) 의심하다 보니 속마음에 있는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나"라면서 자신의 '말실수'를 인정했다.

사고 당일 수난구조대는 남단에서 출발해 북단까지 마포대교 주변 전체를 수색한 것으로 나온다. 신고자 말대로 '(마포대교) 가운데쯤'이라는 위치만 제대로 전달했어도 수색 범위를 더 좁힐 수 있었다.

조사팀 관계자도 "(접수요원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게 맞는데 당시 정보 파악이 미흡하지 않았느냐 관점에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씨 유가족은 "(소방본부에서) 그렇게 안 주려고 했던 CCTV 영상을 보고, 이거 하나 얻으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어 슬펐다"면서 "구조대 녹취록을 보고 수색 내용이 너무 부실해 놀랐다, 이번 사고는 투신한 사람의 신고를 장난전화로 오인해 벌어진 인재"라고 지적했다.

태그:#한강투신여성, #119수난구조대, #서울소방재난본부, #119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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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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