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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는 남성 커뮤니티에서 여성 고등학생을 지칭하는 은어다. 은꼴게시판, 일간베스트 등의 사이트에 하루도 멀다하고 올라오는 불법촬영물 속에서 여성 청소년의 몸은 '고등어', '영계' 등으로 명명되어 상품화되고, 남성의 유희거리로 전락한다.

최근 웹하드 카르텔 수사를 통해 여성을 착취하는 거대한 포르노 산업의 전말이 드러났지만, 대중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 모든 일의 중심인 양진호 사장이 얼마나 잔악하고 폭력적인 인간인지였다. 그렇다면 양진호 사장을 처벌함으로써 우리는 여성을 착취해온 포르노 산업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혜나'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김여진 활동가와의 대화를 통해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청소년 불법촬영, 나의 몸은 상품이 아니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혜나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혜나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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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르라는 채팅 앱 아시나요? 피해자 분은 아자르에서 만난 남성에게 자위영상을 찍어서 보내줬는데 남성이 그걸 포르노사이트에 유포한 거에요. 그래서 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고...10대 피해자가 본인 영상에 '영계'라는 이름이 붙어 팔려나가는 걸 봐야 했어요."

기억에 남는 청소년 피해자 상담 사례를 묻자 김여진 활동가가 들려준 이야기다.
포르노 사이트에서 여성 청소년의 몸은 '영계', '고등어' 등의 이름으로 상품화되어 팔려나간다. 피해 사실을 깨닫고 도움을 요청하면 피해자가 듣게 되는 이야기는 자명하다. "그러게 왜 그런 영상을 찍었냐?", "(유포될 걸)너도 알고 한거 아니냐?"

피해자가 청소년일 때, 이러한 2차 가해는 더욱 심해진다. 우리는 아직 청소년이 성적 주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적 행위를 한 청소년은 더 이상 순수한 피해자가 아닌 '발랑 까진 애' 정도로만 인식된다.
 
혜나: 청소년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굉장히 모순적이에요. 교복은 단정하되 허리선은 들어가 있어야하고, 성애화되어있으면서도 순수할 것을 요구하죠. 청소년이 섹슈얼리티를 누린다는 게 요즘에는 약간 죄악시되는 것 같아요.
 
어른들은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청소년을 성으로부터 격리하려 하지만, 어쩌면 그 때문에 청소년은 성범죄에 더욱 취약해지는 것이 아닐까. 혜나는 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해결책이 유독 일차원적이라고 지적한다.
 
혜나: 예를 들어 성매매를 하면 구매자랑 판매자 둘 다 처벌하면 끝나는 거 아니냐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실제로 그런 식으로 처벌이 이루어지잖아요. 누구 하나를 처벌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청소년이 성애화되고, 폭력에 노출되는 이런 것들이 하나의 커다란 사회 구조잖아요. 그런데 그런 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하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요.
 
최근 드러난 웹하드 카르텔 수사만 봐도 불법촬영과 포르노가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우리는 경험했지 않나. 성폭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피해자의 자발성이나 가해자의 잔악성 같은 것이 아니라 구조 그 자체이다. 청소년이 너무나 쉽게 불법촬영과 포르노에 노출되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폭력적인 구조에 얼마나 무심했는가를 말해준다.

폭력을 묵인하는 일상
   
지난 11월 3일 학교 내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미투 집회가 열렸다.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력과 그것을 묵인하는 학교의 태도는 청소년을 폭력에 무감하게 만든다.
 지난 11월 3일 학교 내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미투 집회가 열렸다.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력과 그것을 묵인하는 학교의 태도는 청소년을 폭력에 무감하게 만든다.
ⓒ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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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중반을 넘어가자 우리는 최근 있었던 불법촬영 사건을 화두로 꺼내며 일상 속에서 느껴야 했던 폭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혜나: 사실 저는 (불법촬영 이슈를 듣고) 분노했지만 또 엄청 놀라지는 않았어요.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중학생때도 어디 학교에서 남학생이 화장실 밑을 촬영해서 걸렸는데 무마가 됐다더라, 그 이유가 뭐냐 물으니까 아빠가 검사장이어서 합의를 받아냈다더라 하는 얘기가 돌았어요. 확실하진 않아요, 소문이니까. 그런데 그 때에는 그렇게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공론화되는 걸 보니 이제 학생들이 폭력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되었구나... 뿌듯하고 기뻤어요.
 
김여진 활동가는 포르노를 소비하는 문화가 청소년에게 자연스럽게 학습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진: 가해자의 연령이 점점 어려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지인능욕'이라고 지인 사진을 채팅방에 올리는 가해 사례가 있는데 절반 이상이 청소년이 동기 학생들을 촬영한 사례에요. 사회에서 아동 포르노를 소비하는 것이 개인의 취향처럼 받아들여지니까 남성 청소년도 성폭력을 자신의 욕망이자 취향으로 재학습하는거죠.
 
피해자들을 향한 폭력은 눈에 보이는 가해 뿐만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 있는 포르노를 공유하고 여성을 품평하는 문화,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풍조는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을 위협하는 문제다. 메사추세츠대학 아동심리학 교수 샤론 램의 연구에 따르면 포르노를 소비하는 문화는 특히 여성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성적으로 행동해야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압박 속에서 자존감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식이장애와 같은 질환으로 이어지고, 성인이 되어서도 연애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압박이 가해진다. 남성은 언제나 섹스를 원하는 존재로 묘사되는 환경에서는 남자아이들도 기대치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 마련이다. (원문: http://newspeppermint.com/2018/07/26/backdrop-sexualization-of-children/)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폭력에 맞서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김여진 활동가는 한사성에서 진행하고 있는 법제화 활동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홈페이지의 모습.
한사성이 진행해온 사이버성폭력 근절 활동들이 소개되어 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홈페이지의 모습. 한사성이 진행해온 사이버성폭력 근절 활동들이 소개되어 있다.
ⓒ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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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불법촬영은)사실 유통이 없어지면 해결되는 문제죠. 그래서 저희는 유통 근절과 처벌 강화가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해요. 사실 웹하드 업체를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이 이미 존재하지만 담당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이것을 방조하고 있어서 유통을 막기가 어려워요. 국가 기관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꾸준한 법제화 노력을 통해 지난 11월 30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 14조가 개정되면서 촬영에 동의했더라도 대상자 의사에 반하여 촬영물을 유포하거나 복제할 경우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웹하드 업체의 의무를 명시하는 내용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여진 활동가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며 앞으로의 각오와 활동 방향을 밝혔다.
 
여진: 저희는 올해 웹하드 카르텔 관련 많은 수사가 진행되었기는 했지만, 아직 이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단체를 안정화 시키면서 앞으로도 법제화 등의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고요. 더 많은 분들이 연대와 지지를 보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혜나: 더 근본적인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인식이 피해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피해자를 탓하는 것이 아닌 구조적인 폭력에 초점을 맞추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소녀, 소녀를 말하다' 프로젝트는 소녀가 직접 소녀의 삶을 취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스쿨미투, 가부장제, 탈코르셋, 팬덤문화 등 소녀의 삶과 맞닿아 있는 주제를 다룹니다.


태그:#소녀소녀를말하다, #청소년페미니즘모임, #페미니즘,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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