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말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장원삼(LG트윈스)은 4년 동안 51승을 따내며 KBO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로 군림했다. 그리고 삼성은 2013년 장원삼에게 4년 60억 원의 대형 FA 계약을 선물했다. 장원삼은 FA 계약 후 첫 2년 동안 두 자리 승수를 올리며 '모범 FA'의 길을 가는 듯 했지만 이후 2년 동안 단 9승을 보태는데 그쳤다. 공교롭게도 삼성 역시 장원삼의 부진과 함께 길었던 왕조시대를 마감했다.

2017 시즌이 끝난 후 4년 60억 원 짜리 FA계약기간이 끝지만 재자격 요건을 채우지 못한 장원삼은 2018년 2억 원에 연봉 계약을 체결했다. 4년 동안 해마다 7억5000만원씩 수령하던 좌완 에이스의 연봉이 무려 5억5000만원이나 삭감된 것이다. 이는 KBO리그 역대 연봉 최다삭감 기록이었다. 한화 이글스의 이용규가 9억 원에서 4억 원(2018년), LG에서 활약했던 박명환이 5억 원에서 5000만원(2011년)으로 연봉이 폭락했던 기록이 있다. 

이처럼 대형 FA 계약을 맺었던 선수들은 계약 기간 동안 기대 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하면 계약 기간이 끝난 후 큰 폭의 연봉 삭감을 피하기 어렵다. 올 시즌에도 윤석민(KIA 타이거즈), 윤성환(삼성) 등이 상당한 수준의 연봉 삭감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미 LG에서는 작년 대비 83.3%의 연봉이 삭감된 선수가 등장했다. 바로 LG에 팔꿈치를 바친 '로켓' 이동현이 그 주인공이다.

팔꿈치 인대를 LG에 바친 '프랜차이즈 스타' 
 
 이동현은 가장 빛나야 할 20대 중,후반 시절을 수술과 재활로 보냈다.

이동현은 가장 빛나야 할 20대 중,후반 시절을 수술과 재활로 보냈다. ⓒ LG 트윈스

 
영남중 시절까지 외야수로 활약하던 이동현은 서울고 진학 후 투수로 전향했고 2학년때 경기고로 전학을 가면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특히 3학년 때는 황금사자기에서 경기고를 우승으로 이끌며 MVP와 우수 투수상을 휩쓸었다. 이동현은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김태균, 정근우(이상 한화 이글스) 등과 함께 2001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끈 '에드먼턴 키즈'이기도 하다.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LG에 입단한 이동현은 2001년 개막전에서 선발로 등판할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물론 고졸 신인이었던 이동현이 개막전 선발로 낙점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LG마운드가 김용수의 은퇴와 장문석, 최향남, 최원호 등 주축 투수들의 부상으로 시작 전부터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실제 이동현은 입단 첫 해 4승 6패 평균자책점 5.37에 그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동현이 날개를 단 것은 김성근 감독이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2002년이었다. 마무리와 중간 계투를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한 이동현은 8승 3패 7세이브 6홀드 2.67의 성적으로 LG의 준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하지만 선발 등판 없이 불펜으로만 78경기에 등판해 124.2이닝을 던진 이동현의 팔꿈치는 이미 고장의 징조를 보였다. 그리고 2004년부터 이동현의 오랜 재활이 시작됐다.

2004년 12월 첫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은 이동현은 재활을 서두르다가 통증이 재발했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친 2007년 11월 두 번째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이동현은 수술과 군복무, 다시 수술로 이어지는 기나긴 재활의 시간을 보냈고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4년이나 마운드를 비웠다. 그 사이 LG는 두 번이나 최하위를 기록하며 창단 후 최악의 암흑기를 보냈다.

2009년 기적처럼 마운드에 복귀한 이동현은 2010년 7승 3패 4세이브 15홀드 3.53의 성적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2013년과 2014년 LG의 가을야구 재입성의 순간 이동현은 LG불펜의 중심으로 맹활약했다. 반면에 이동현이 5승 5패 4세이브 11홀드 4.40으로 주춤한 2015년에는 9위로 추락했다. LG는 2015 시즌이 끝난 후 프로 입단해 15년 동안 LG를 위해 헌신한 이동현에게 3년 총액 30억 원의 FA 계약을 선물했다.

떨어진 구위, 풍부한 경험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이동현은 2000년대 초반 팀의 마지막 중흥기를 함께 보냈고 그 순간을 만든 주역으로 활약한 대가로 무려 4년이 넘는 공백을 감수해야 했던 투수다. 이동현이 하얗게 불태웠던 2002 시즌을 기억하는 LG팬들이라면 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동현은 성적이 다소 부진해도 좀처럼 팬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는다. LG 마운드에서 속된 말로 '까임방지권'을 소지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2일 한화전에서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통산 100홀드를 달성한 이동현은 4승 3패 2세이브 5홀드 5.40으로 FA 첫 시즌을 마치며 LG의 가을야구 복귀에 힘을 보탰다. 이동현은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2경기에 등판해 4.2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등판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동현은 2017년 마무리 임정우의 부상 속에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며 3승 6패 7세이브 5홀드 4.80을 기록하며 분전했다. 하지만 이동현과 홀드왕 진해수 정도를 제외하면 믿을 만한 불펜 투수가 없었던 LG는 SK 와이번스에 3경기가 뒤진 6위의 성적으로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LG는 2017 시즌이 끝나고 '야통' 류중일 감독과 '타격기계' 김현수, 빅리그 출신의 외국인 3루수 아도니스 가르시아를 영입했다.

LG는 2018년 가을야구 복귀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오히려 8위로 성적이 추락하며 원했던 반등을 만들지 못했다. 2017년까지 LG불펜의 중심으로 활약했던 이동현 역시 36경기에 등판해 2승 1패 4홀드 7.93으로 프로 데뷔 18년 만에 최악의 부진에 빠졌다. 이동현은 시즌 초반과 올스타 휴식기 직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1군에서 보냈지만 더 이상 전성기 시절의 구위를 기대할 수 없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와 떨어진 성적을 고려하면 이동현의 연봉 삭감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이제 이동현은 더 이상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묵직한 속구와 낙차 큰 포크볼로 상대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투수가 아니다. 하지만 이동현은 2000년대와 2010년대 LG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한 산 증인이다. 과연 이동현은 올 시즌 젊은 투수들을 이끌며 LG의 가을야구 복귀를 함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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