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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신장을 이식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친구 모습
 동생에게 신장을 이식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친구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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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프다 못해 아리다. 올해 66세인 친구가 동생에게 신장이식 수술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아침, 수술실에서 자신의 몸 일부를 떼어낸 침구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젊고 건강하면 괜찮을 수 있다. 의사 친구의 설명에 의하면 "신장은 하나만 가지고도 큰 문제 없이 살 수 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건강한 몸이 아니다. 지난해 3월에 관절수술을 해서 몸이 성한 상태는 아니다. 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아내가 유방암에 걸려 치료 중이기 때문이다. "한국의료진의 실력이 좋아 아내가 많이 호전됐다"라며 좋아하던 친구. 하지만 아내를 간병하며 보호해야 할 친구가 아닌가?

말려보려고 생각했지만 그의 거룩하고 간절한 생각을 뜯어 말릴 수 없어 더욱 안타깝다. "네 건강상태와 아내의 간병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묻자 "아내한테는 미안하지만 콩팥이 망가져 일주일에 세 번 투석하는 동생을 바라보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친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울림이 왔어. '내가 너를 한국에 보낸 건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라고. 실은 내가 수술한다는 소식을 들은 아들이 울면서 끝까지 반대했네. 심지어 아버지가 수술하면 아버지하고 인연을 끊겠다고 펄쩍 뛰었네. 아들한테 아비의 생각을 간곡히 말하자 아들이 마지막으로 '아버지 후회 안하시겠습니까?' 하면서 돌아갔네."

동생에게 신장이식을 하겠다며 나선 친구를 본 주치의가 가족관계를 살펴본 후 말했단다. "가족도 있고 동생들도 있는데 왜 하필 나이 많은 형이 수술해야 합니까?"라고. 동의해주지 않던 주치의는 친구의 간곡한 호소를 듣고 할 수 없이 허락했다고 한다. 미국 뉴욕에 살다 아픈 몸을 이끌고 고향에 돌아와 살며 회복 중인 친구 아내의 의중을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신장이식 수술 안했으면 좋겠어요. 나도 아프잖아요. 하지만 본인의 의지가 강하고 자기 형제 살리겠다는데 어떻게 막아요. '남의 생명도 살리는데 아픈 동생을 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느냐?'고 해서 더 이상 말리지 못했죠."

친구 집에는 수술소식을 듣고 미국 시카고에서 날아온 김수만(69)씨가 와 계셨다. "수술 소식을 듣고 동의는 했지만 착잡하다"라고 말한 그가 친구와 만난 사연을 이야기 해줬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친구와 김수만씨가 뉴욕에서 만난 건 8년 전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종교모임에서다.

김수만씨가 수술하기 한 달 전 친구 집에 도착한 건 2018년 12월 14일. 김수만씨는 아산병원에서 수술 받는 친구 간병을 위해 장기간 친구 집에 머물다 병원에 동행했다. 가족도 쉽지 않을 일을 하는 김씨에게 이유를 들어보았다.

"친구가 힘들어할까봐. 간호할 사람이 없어 왔어요. 정말 이기훈 집사나 저나 빚잔치처럼 살아요, '사랑의 빚'. 크리스천의 빚, 하나님께 빚 진자. 저 친구는 불신자 동생에게 자기 몸을 내주었잖아요. 똑같은 마음에서 곁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왔어요. 뉴욕에서 친구를 만나 얘기하다 많이 울었어요. 머리털 나고 그렇게 울어본 건 처음입니다."
  
한달 전 고향 친구집을 방문했을 때 기념촬영한 친구와 친구부인. 맨 오른쪽은 친구가 동생을 위해 신장을 준다는 소식을 듣고 간병차 미국 시카고에서 친구집을 방문한 김수만(69세)씨.
 한달 전 고향 친구집을 방문했을 때 기념촬영한 친구와 친구부인. 맨 오른쪽은 친구가 동생을 위해 신장을 준다는 소식을 듣고 간병차 미국 시카고에서 친구집을 방문한 김수만(69세)씨.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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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의 상식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친구 생각하기에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축복받을 일을 하니까요. 저 친구는 자신이 손해 보면 봤지 남한테 손해 끼치는 일 안하는 걸 보았죠. 남을 배려하는 자세에 감동받았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과 유학생을 위해 많이 베풀었어요. 약삭빠르고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면 여기까지 안 오죠."

장티푸스 걸려 쥐 잡아먹고 살아난 친구...야간 중·고등학교를 거쳐 MBA과정까지
 

2008년 희망제작소 회원 10여 명과 함께 뉴욕을 방문하게 돼 친구에게 소식을 전했었다. 뉴욕친구 집을 방문하자 "오랫동안 미국에 살고 있지만 고향친구 방문은 처음이라며 맘이 설레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라며 "아무도 찾아주는 친구가 없어 외로웠고 자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났다"라고 말해줬다. 친구는 필자를 위해 가든파티를 열어주고 극진히 환대해주며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전해줬다.

친구는 초등학교 때 몇 달을 결석했다. 아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냥 형편이 어려워서 그랬겠지 하고 상상했었는데 이번에 결석한 사유를 정확히 알았다. 친구가 들려준 얘기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장티푸스에 걸려 머리가 다 빠지고 힘이 없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죽은 줄 알고 아버지가 자신을 멍석에 말아 산에 묻으러 가려는데 꿈틀거렸다. 살아있다는 걸 확인한 할아버지가 쥐를 잡아서 먹였다. 가난해 고기를 살 길이 없자 할아버지는 손자의 영양 보충을 위해 쥐를 잡아 먹인 것.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지만 중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못된 친구는 날마다 십리 길을 걸어 다니며 나무를 하다가 "이대로 내 인생을 시골에서 썩힐 수 없다"고 결심한 후 쌀 한 자루를 메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 신당동 철공소에 들어가 열심히 일을 하며 기술을 연마했다.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본 철공소 주인은 "내가 너를 공부시켜 주마"라고 하며 오후 2시까지만 일하게 하고 야간학교에 보내줬다. 1970년대 당시 먹고 자고 월급 1300원을 받던 시절이다.

열심히 일하며 공부한 그는 야간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4개의 자격증을 땄다. 졸업 후 1977년에 엔지니어로 쿠웨이트와 사우디에서 일하다 1982년에 돌아와 서울에서 건설업을 시작했다.

향학열에 불탄 그는 내친 김에 세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했다. 외국생활에 대한 동경을 꿈꾸던 그에게 때마침 담당 교수가 UCLA의 MBA과정을 추천해 미국으로 건너와 월·수·금 3일은 학교에 가고 나머지는 건설 현장에서 돈을 벌며 학업을 마쳤다. 뉴욕에서 조그만 건설회사까지 차린 친구.

호사다마라던가! 잘 나가던 그에게 암초가 나타났다. 자신만 믿고 따라와 살던 부인이 유방암에 걸렸다. '3개월밖에 못 살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한국인 의사에게 무릎 꿇고 "살려 달라"고 울며 빌자, 최후로 수술을 한번 받아 보자고 하여 수술 후 많이 회복됐다.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도 임파선 암에 걸렸지만 완치됐다. 자신의 노력이면 다 이뤄질 줄 알았던 그는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어 종교에 의지하게 됐다. 나이가 들어 건설업을 접은 그에게 마지막 숙제 하나가 있었다. 치매에 걸려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고향에 혼자 계시는 아버지 임종을 지켜보고 싶은 것.

인생의 숙제는 끝이 없는 걸까? 마지막 숙제를 풀자 또 다른 숙제가 기다려  

그는 마지막 숙제를 풀었다. 그의 아버지는 작년에 친구 품에서 돌아가셨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그에게 고향은 너무나 편안했다. 내친 김에 건설업에 종사했던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 집을 고친 그는 아내와 함께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살이가 어디 뜻대로 되는가? 동생의 신장이 망가져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했지만 방법이 없단다. 고민하던 그가 결단을 내렸다. 동생을 위해 신장이식을 하겠다. 서울로 올라가는 그가 말했다.

"신성일씨도 82세에 세상을 떴는데 내가 15년만 지나면 82세야. 그때까지 좋은 일 하고 가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숙제야."

기상예보가 맞았나 보다. 겨울이어서인지 아침 일찍 내리던 비가 눈발로 변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며 시야를 가린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자가용 앞 유리 창 히터를 켜자 눈이 물로 변해 흘러내린다. 친구를 도와줄 방법이 없어 오직 마음속으로 기도만하는 내 가슴속에도 하염없이 눈이 내린다. 가슴속을 흘러내리던 눈은 기어이 비로 변했다. 가슴이 먹먹하다.

친구여! 친구 아내여! 친구 동생이여! 모두 건강하게나! 그래야 고향에서 웃으며 다시 만나지.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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