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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에 창건된 '묘수사'가 마을의 문화사랑방, 골목박물관으로 재탄생됐다,
 1920년에 창건된 "묘수사"가 마을의 문화사랑방, 골목박물관으로 재탄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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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면서 어느 도시에나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뉴욕시는 이 문제점들을 지혜롭게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면서 이전에는 없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다, 때로는 제도를 바꾸고, 때로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오고 할렘을 변화시킬 때처럼 때로는 자본주의의 법칙을 치사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연한 대처가 가능한 것은 건축이나 도시를 단순한 유산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일종의 파트너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한 대목이다.

도심 속 허름하고 낡은 공간을 마을의 문화사랑방, 골목박물관으로 재탄생시킨 곳이 있어 찾아가봤다.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에 위치한 행궁동 골목박물관 이야기다. 지난 2018년 12월 문을 연 이 박물관은 원래 묘수사 자리였다. 묘수사는 1920년에 창건한 불교법화종 최초 사찰이다.

수원에 위치한 사회적 기업 더 페이퍼(대표 최서영)는 비어있던 이 건축물의 외관은 그대로 유지하고 먼지 낀 실내공간을 마을기록전시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건물이 노후되면 기존의 건축물을 흔적조차 없이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대신, 기존의 건축물을 그대로 다시 사용하고 그 안에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행궁동 골목박물관 마당에 수원시 행궁동에서 122여 년의 역사를 안고 다른 곳으로 이전한 신풍초등학교에서 오래전 사용한  풍금과 교과서 등이 전시돼 있다.
 행궁동 골목박물관 마당에 수원시 행궁동에서 122여 년의 역사를 안고 다른 곳으로 이전한 신풍초등학교에서 오래전 사용한 풍금과 교과서 등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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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벽시계와 선풍기, 서랍속 골무와 반짇고리, 연고, 낡은 잡지와 빛바랜 사진, 옛사진을 모아둔 영양제 상자, 오래된 녹음기와 교과서, 풍금 등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했거나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가 사용했음직한 살림살이가 전시돼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오랜 세월의 흔적은 고스란히 간직한 낡은 물품을 들여다보니 묘한 여운이 남는다. 늘 가까이 있어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사람처럼 평소 무심했던 생활 속 물건이 귀하고 가치 있게 보인다. 추억과 의미를 담고 새롭게 다가온다. 매일 그 거리를 지나면서도 허투루 본 동네 가게 주인 어르신, 건물, 그곳의 물건 등도 마찬가지다. 최서영 대표에게 도시 재생 관점에서 골목박물관을 기획하게 된 취지를 들어봤다.   
  
"머무르고 살아가는 공간은 어디가 되었든 시간의 통로를 지나 끊임없이 변화하죠. 골목박물관은 문화적 도시 재생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도시를 문화적으로 재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행해야 할 것은 마을기록 작업이라고 봤고요. 그 일을 진행하려면 공간이 필요하죠. 그 공간의 역사, 앞으로 그 공간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도시 재생을 통해 이 공간이 없어지거나 멈춰 서 있는 저장소가 아닌 과거와 현재, 세대와 세대간, 사람과 사람이 유기적으로 대화하고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공유하고 기록하면서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스물세 살에 남수동으로 시집온 후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이웃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살고 있다는 이병희 할머니 이야기
  스물세 살에 남수동으로 시집온 후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이웃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살고 있다는 이병희 할머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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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으로 된 골목박물관의 열린 대문으로 들어가면 이곳이 100여 년 전의 법당이었을까 싶다. 군데군데 흔적은 있으나 공간마다 마을의 역사와 지역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자료와 살뜰한 이야기 등이 가득하다.

최서영 대표는 이어 골목박물관과 지역 기록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강조했다. 

"도시가 변해가는 과정에서 발전과 개발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지역성을 빠르게 훼손시키고 문화까지 획일화시켜가고 있습니다. 골목박물관은 원도심의 바람직한 도시 재생 해법을 제시하고, 사업의 주체인 기업에게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기록 작업과 공익적 사업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입니다. 또한 지역의 역사와 기록은 마을과 사람을 연결합니다. 마음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통하고 마을 문화를 활성화시키면서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살려내기도 하지요. 지역 기록은 단순히 지역의 풍경 또는 경관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역의 정체성과 소중한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15편의 다큐멘터리 영상물, 골목박물관 탄생 과정 , 수원에서 터를 잡고 오래 살아온 어르신 5인의 이야기, 지역 주민 25명의 삶의 이야기가 담긴 책, 수원 다방 기행, 122년여 역사를 안고 행궁동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신풍초등학교 이야기, 동요 <오빠 생각> 작사가 최순애와 그녀의 오빠이면서 일제 강점기 '편집의 귀재'라 불리던 최영주 이야기, 1938년 10월 최영주가 편집· 발행을 맡아 창간한 우리 문단 최초의 수필잡지 '박문' 영인본,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거나 현존한 잡지 등. 마을 주민 및 행궁동 이곳저곳에서 기증받거나 마을 사람들의 기억을 수집·일상생활에 숨어있는 문화자원을 발굴해 가치를 부여한 물품들이다. 
 
 행궁동 골목박물관에 전시된 오래된 잡지
  행궁동 골목박물관에 전시된 오래된 잡지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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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표는 골목박물관에 대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덧붙였다.

 "'에코뮤지엄(ECOMUSEUM)'이라고 흔히 '지붕없는 박물관'이라고 하는데요, 마을 사람과 양성교육을 받은 시민기록자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그 지역에서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는 것을 발굴, 수집하여 기록 작업을 하고 다른 지역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문화콘텐츠,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공간이 개인의 역사와 시대에 따른 마을의 역사 자료를 공유하고 마을사람들의 공론장이 되어 마을 문제를 서로 의논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해 가는 소통의 창구가 되기를 바라고요. 지역의 시민기록자들이 느슨하지만 연대 모임과 워크숍을 하는 매개체가 되고 철학, 인문학 등을 공부하면서 지속적으로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 해야겠지요. 그것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를 만날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지역에서 보존해야할 공간이 보존되고 그 공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 역할을 잘 수행해 가기를 바랍니다."

설 연휴 동안 가족과 함께 둘러봐도 좋을 곳, 행궁동 골목박물관 전시는 오는 2월 말까지 진행된다.
 

태그:#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 행궁동 골목박물관 , #에코뮤지엄, #최영주, #문화적 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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