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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장터 3.1운동 만세시위 장소로 신한은행 사거리를 지정한 내용이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수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주장터 3.1운동 만세시위 장소로 신한은행 사거리를 지정한 내용이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수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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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이 2009년 국내항일운동 사적지로 지정한 경주 '신한은행 사거리'가 실제 경주장터 3.1운동 만세 시위 장소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독립기념관은 지난 2009년 국내항일독립운동 사적지 실태조사 학술용역을 발주하면서 대구·경북지역 사적지 실태조사를 사단법인 안동독립운동기념사업회에 의뢰했다. 이를 바탕으로 경주지역 5개 항일독립운동 사적지를 지정하면서 이 가운데 신한은행 사거리를 경주장터 3.1운동 만세 시위지로 지정했다. 1919년 3월15일 경주군 주민들이 장날을 이용해 만세시위를 펼친 곳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현재까지도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 박문홍 등 당시 경주지역 독립운동가들의 판결문과 당시 경주장터 지도, 신한은행 사거리 사진 등과 함께 게재돼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른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라키 준 박사가 11일 각종 자료를 보이며 만세시위 장소 지정 잘못을 설명하고 있다.
 아라키 준 박사가 11일 각종 자료를 보이며 만세시위 장소 지정 잘못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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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근대사를 연구하고 있는 아라키 준 박사(荒木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류학 박사)는 최근 박문홍 등 당시 경주지역 3.1만세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문,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경주군의 장날등에 대한 자료를 근거로 당시 3.1운동 만세시위 장소가 독립기념관이 지정한 신한은행 사거리가 아닌 '봉황대 근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1919년 4월 15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의 박문홍 외 11명의 경주지역 만세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문을 확인했다. 판결문은 '피고 최성렬, 김억근, 박봉록 등은 동월 15일 경주읍내 작은 장날에 동면 노동리 봉봉대(鳳鳳臺)아래에서...오후 3시경 동소에 모여 많은 사람과 함께 조선국 독립만세를 높이 외쳤다'고 경주지역 만세운동을 기록했다.

당시 일제 법원 직원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판결문 원본에서도 … 동면 노동리 봉봉대鳳鳳臺) 아래...라고 한자로 표기해 두고 있다.
박문홍 등 경주 3.1만세운동 관련자 12명에 대한 판결문 번역본. 원문의 표기대로 봉봉대로 기록하고 있다.
 박문홍 등 경주 3.1만세운동 관련자 12명에 대한 판결문 번역본. 원문의 표기대로 봉봉대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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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판결문 원본. 동면 노동리 봉봉대하...등의 글씨가 보인다.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판결문 원본. 동면 노동리 봉봉대하...등의 글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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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아라키 준 박사는 "당시 경주지명을 잘 알지 못하는 일본인 법원 직원이 봉황대(鳳凰臺)를 봉봉대(鳳鳳臺)로 잘못 썼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번역본을 제작할 때에도 경주의 지명을 잘 알지 못하는 학자가 원문을 그대로 옮겨적어 생긴 오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경주에는 봉봉대라는 지명이 없는 만큼 봉황대의 잘못된 표기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아라키 준 박사는 당시 판결문에서 적시한 '동월 15일 경주읍내 작은장날'을 근거로 해도 만세 시위장소가 당시 '큰장'이 섰던 신한은행 사거리가 아닌 '봉황대'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생활상태 조사, 경주군편>의 경주장날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제시한다.

조선시대 경주 중심부에는 부내장(府內場. 2‧7일장)과 사정장(沙正場. 4‧9일장)이 있었으며,이는 일제 강점기에도 계승돼 큰장(2‧7일장)과 작은 장(4‧9일장)으로 이어졌고, 큰장은 경주읍성내 중심부인 현재 신한은행 사거리가 맞지만, 작은 장의 위치는 경주읍성 남문 밖이다.

또한 당시 장날은 음력으로 운영됐으며, 경주 만세시위가 일어난 3월 15일은 당시 음력 2월 14일로, 이는 4‧9 일 장이었던 경주 작은 장날의 날짜와도 일치한다. 이 점에서 실제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은 봉황대 주변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경주군 생활상태조사 498쪽. 경주군의 시장을 조사한 내용편. 경주부내장, 사정장 뿐만 아니라 하서, 어일.모량등 당시 경주군내의 5일장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경주군 생활상태조사 498쪽. 경주군의 시장을 조사한 내용편. 경주부내장, 사정장 뿐만 아니라 하서, 어일.모량등 당시 경주군내의 5일장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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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군 생활상태 조사 499쪽. 빨강색 선 상자안에 시장의 소재지가 소시는 노동리라는 기록이 보인다. 아래 파랑색 선 상자안에는 시장의 개최일(시일)에 대시는 2.7.12.17.22.27일, 소시는 4.9.14.19.24.29 기록이 보인다. 시일아래 녹색 원안에 표기된 구(舊)에 대해 아라키 준 박사는 음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주군 생활상태 조사 499쪽. 빨강색 선 상자안에 시장의 소재지가 소시는 노동리라는 기록이 보인다. 아래 파랑색 선 상자안에는 시장의 개최일(시일)에 대시는 2.7.12.17.22.27일, 소시는 4.9.14.19.24.29 기록이 보인다. 시일아래 녹색 원안에 표기된 구(舊)에 대해 아라키 준 박사는 음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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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포커스>가 아라키 준 박사의 도움을 받아 조선총독부 발행 경주군 생활상태 조사 사본을 확인한 결과 498쪽에 경주지역 시장상황을 조사한 기록에 사정장은 '남문외. 4‧9 개시'로 적혀 있었으며, 사정장의 날짜도 별도로 4‧9로 기록해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기록과 실제 만세시위가 발생한 시점 등이 일치하는 점으로 볼 때 아라키 박사의 주장은 사실이 가능성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1931년 경주읍내시가약지도를 근거로 당시 3.1만세 운동 장소가 현재의 신한은행 4거리가 아닌 작은장날이 열렸던 봉황대 인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아라키준 박사 제공
 1931년 경주읍내시가약지도를 근거로 당시 3.1만세 운동 장소가 현재의 신한은행 4거리가 아닌 작은장날이 열렸던 봉황대 인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아라키준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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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키 준 박사는 이 같은 기록을 근거로 최근 (재)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 수정을 건의하기도 했다.

일본인 연구자에 의해 경주지역 만세운동 장소 변경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아라키 준 박사는 "경주지역 한 교회로부터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한 강의를 요청 받고 3.1운동 관련 자료를 살펴보다가 이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며 "경주근대사를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진작에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저 스스로가 부끄러웠다"고 오히려 자책했다.

아카리 준 박사로부터 수정요구를 받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수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한준호 학예연구부 차장은 "독립기념관의 의뢰로 2018년 경상북도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실태조사를 하고 진행하고 있다"면서 "2개월 이내에 자료정리가 끝나고, 독립기념관에 보고서를 제출한 이후에 수정 여부가 최종 결정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련 자료나 판결문등에서 당시 경주지역 만세운동 장소가 현재 지정한 장소와 다른 것으로 확인되는 만큼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기 전까지 수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주겨레하나 이남희 대표는 "100년전 경주지역 선열들이 만세운동을 벌인 역사적인 장소가 정부가 지정한 곳과 다른 것으로 각종자료로 확인된 만큼 정부에 의해 잘못된 독립운동 사적지 지정은 역사 바로잡기 차원에서라도 시급히 수정돼야 한다"며 "올해 정부가 앞장서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는 만큼 3월1일 이전에 수정을 위한 절차가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주시 도심 봉황로 봉황대 인근 현재 모습. 이 일대가 사정장이 섰던 곳으로 작은장날 만세운동이 벌어진 곳으로 추정된다.
 경주시 도심 봉황로 봉황대 인근 현재 모습. 이 일대가 사정장이 섰던 곳으로 작은장날 만세운동이 벌어진 곳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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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09년 실태조사 당시에는 지역의 한 원로 향토 사학자에게 전화로 자문을 받은 뒤 현재의 신한은행 장소로 확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한준호 차장은 "2009년 조사당시에는 경주지역 사정에 밝은 유력 원로에게 전화로 자문을 받은 뒤 판결문 등을 근거로 신한은행 사거리를 지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따라서 당시 국내독립운동 사적지 조사 및 지정과정이 부실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경주포커스에도 실립니다.


태그:#경주포커스, #3.1운동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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