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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대 1. 2016년 서울시 국공립 어린이집 평균 경쟁률입니다.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에 비유되니 '로또 보육'이란 말까지 나옵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이 더 나은 보육을 제공할 거란 기대가 반영된 현상입니다. 그런데 또 한 편에서는 "일부 국공립은 원장의 소왕국"이라고, "무조건 믿고 아이를 맡기지 말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 간극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왜 일부 국공립은 학부모들의 믿음을 배신하는 걸까요? <오마이뉴스>가 그 이면을 추적했습니다. 앞으로 매일 12회에 걸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말]
"국공립 어린이집 vs. 민간 어린이집 둘 다 연락 온다면 어디로 보내실 건가요?"

"2019년 3월이면 15개월 되는 남아 엄마"라 본인을 소개한 '로라**'는 네이버 맘카페 '맘스홀릭'에 지난해 12월 질문 글을 올렸다. "아이가 너무 어려 국공립을 보내도 되나 걱정"이라고 했다. 11명이 댓글을 달았다.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10명이 '국공립 어린이집'을 택했다.

"아무리 좋은 가정·민간이라고 해도 국공립이 나은 것 같아요" (인자*)
"무조건 국공립이요~ 국공립이 더 관리 잘돼요" (박지*)

질문자 '로라**'는 "국공립 선호도가 굉장히 높네요. 국공립, 국공립 하는 이유가 있나 봐요"라고 결론 지었다. 대다수의 엄마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국공립이 낫다"고, "더 관리가 잘 된다"고. 또한 그 믿음은 이처럼 전파된다. 그렇게 정설이 되어간다.

그 믿음을 실현시켜야 할 운영 주체, 지자체도 학부모들의 '신뢰'를 인지하고 있다. 2013년 12월 17일 춘천시의회 예결위원회, '부모들이 왜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하냐'는 시의원의 질문에 춘천시 복지국장은 "한 마디로 딱 잘라서 얘기하면 신뢰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먹는 음식이라든가 보육 질이라든가 시가 관리하면 믿음이 있다는, 그런 신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게 믿어도 될까? 실상은 '무늬만 국공립'이라면, '로라**'의 결론은 달라질까?

국공립 어린이집인데, 원장 개인에게 위탁한다?
 

첫째, 운영 측면에서 보자. 국공립 어린이집이니 나라에서 운영해야 할 것 같지만, 지자체는 대부분의 운영을 개인·법인에 맡긴다.

2017년 10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어린이집 4만여 개 가운데 국공립은 3034개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고작 84개(2.8%)다. 97.2% 국공립 어린이집이 누군가에 맡겨져 있다. 여기서 또 절반 이상(55.7%)이 원장 개인에 운영을 위탁한다. 그럼에도 '국공립 어린이집'이라 불린다.    
 
국공립 어린이집 수탁체 유형별 현황
<출처 : 2017년 10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국감 자료>
 국공립 어린이집 수탁체 유형별 현황 <출처 : 2017년 10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국감 자료>
ⓒ 안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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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은 어떨까. 2019년 현재 춘천에 국공립 어린이집은 모두 13개. 이 중 시가 직접 운영하는 곳은 0곳, 100% 위탁이다. 법인이 운영하는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인 위탁이다.

'무늬만 국공립'인 이유 두 번째는 관리 부실에 있다. 위탁돼도 국가가 관리만 잘하면 될 터다. 그러나 춘천시 출산보육과장조차 이 '믿음'에 반하는 얘기를 한다.

2018년 춘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조금 부정수급에 아동학대까지 발생해 시가 어린이집 폐원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출산보육과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점검 나가면 아동대비 교사 수라든가 눈에 보이는 것들, 서류만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서는 저희들이 들여다보고 문제를 발견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2018년 9월 11일 춘천시의회 행정사무감사)

2017년 또 다른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원장이 보조금 2840만 원을 부정 수급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출산보육과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원에 갔을 때 그런 (문제 있는) 부분들을 세밀하게 찾아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2017년 6월 21일 춘천시의회 내무위원회)

결론은, 문제가 공론화되기 전까지는 알 수 없고 그 후에야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한'이 없다고 했다. 문제가 곪아 터지기 전에 이를 예방하고 제대로 된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데, 지자체에서는 이를 할 수 없다는 사실상의 자기 고백이다.

실제 지난해 또 다른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부실급식'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 사건 또한 교사의 내부고발로 촉발됐다. 춘천시 보육아동과 관계자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사태가 발생하기 전 추가 점검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도감독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의견도 있다. 춘천의 한 시의원은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도감독 하는 사람이 공정하게 사안을 봐야 하는데, 시청 공무원들이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고 전했다. 그는 "교사가 시청에 내부고발해도 원장한테 고발자가 누군지 얘기가 들어간 사례도 다수 있다, 시의 후속 조치를 믿을 수 있겠냐"며 "보육교사들에게 시의 지도감독이 제대로 이뤄지냐 설문하면 높은 점수가 안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도감독 부재 속에 재위탁... "시 어린이집인데 개인 어린이집 같아요" 
 
2015년 2월 4일,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열렸던 '땜질식 보육정책 규탄 기자회견' 당시 모습.
 2015년 2월 4일,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열렸던 "땜질식 보육정책 규탄 기자회견" 당시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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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편한 진실'은 반복된다. 지도감독 부재 속에서 시청은 위탁을 준 원장에 또 위탁을 준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점차 사유화된다. 춘천시 시의원들이 수년에 걸쳐 여러 차례 문제 제기한 부분이다.

"공모 때마다 재임용되는 게 반복됐습니다. 시에서 관리하는 어린이집임에도 불구하고 '개인' 어린이집인 것 같아요. 공모를 통해서 원장들을 바꿔보는 게 어떨까요."

유호순 춘천시의원은 2012년 7월 5일 행정사무감사 내무위원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그러나 변화는 없었다. 2년 후 똑같은 문제 제기가 이어진다. 이상민 춘천시의원은 2014년 12월 4일 내무위원회에서 "국공립어린이집이 연임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시에서 영향력이 떨어지면서 사유화된다는 우려가 있어요, 한 곳에 14년씩 계시는 분들도 있다 보니... 원장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능력 있는 분들이 (새로 부임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부분도 부족합니다"라고 말했다.

역시 바뀌는 건 없었다.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 근속연수만 늘었다.

"지금 제일 오래 근무하신 원장님이 17년 5개월 근무한 곳도 있고요. 15년, 14년 이런 식이에요. 한 번 채용되면 특별한 과실이 없으면 무기계약직 식으로 계속 가는 거 아닙니까?"

2015년 7월 14일 행정사무감사에서 변관우 의원이 물었다. 춘천시 여성가족과장은 "예"라 답한다. "특별한 위법행위가 없을 때에는 지속해서 근무하게끔 계약을 하고 있다"고 했다.

춘천 국공립어린이집 '재위탁' 역사    

사실상의 '무기계약직'이라는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 위탁. 얼마나 장기간 위탁이 지속됐을까.

춘천시가 보건복지부를 통해 윤소하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최다 위탁자는 엄아무개 원장으로 총 7회, 19년 동안 위탁받았다. 2000년 처음 위탁을 받았고 14년 동안 한 원을 운영했다. 그러다 2015년 춘천시의 원장 순환배치 조처로 다른 국공립 어린이집 운영을 맡았다. 엄 원장은 옮겨 간 원에서 재위탁을 받았고, 2020년 2월 29일까지 위탁 계약을 맺은 상태다.

본래 최다 위탁자는 황아무개 원장으로 총 8회(20년 위탁) 국공립 어린이집 위탁을 받았다. 황 원장은 1998년 첫 위탁을 받기 시작해 한 곳에서 6번의 위탁을 받았다. 그러던 중 엄아무개 원장과 마찬가지로 2015년 순환배치 조처로 다른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이 됐다. 이 원에서도 한 차례 더 위탁을 받았으나 보조금 2840만 원 부정수급 문제로 2017년 위탁이 취소됐다. (관련 기사 : "가는 곳마다 말썽" 그는 어떻게 국공립 원장 됐나)

윤소하 의원은 춘천시에 첫 국공립 어린이집이 문을 연 1990년 이후 모든 위탁 자료를 요청했으나, 시는 이 이상의 장기 위탁 자료는 "보존기관 경과로 폐기된 정보"라고 답했다. 결국, 40년 동안 이어진 '국공립 어린이집 위탁'의 역사를 춘천시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2017년 7월 열린 춘천시의회 내무위원회 모습.
 2017년 7월 열린 춘천시의회 내무위원회 모습.
ⓒ 춘천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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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1일 내무위원회, 이원규 시의원(현재 시의회 의장)은 황 원장 부정수급 사건에 대해 이렇게 질타했다.

"부정수급이 15개월에 걸쳐서 일어난 일인데 전혀 파악을 못 하고 있다가... 지도 감독이 제대로 안 이뤄졌다는 거죠. 다른 데도 이런 일이 안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과거에도 이 원장 문제를 일으켰지요? 그런데도 계속 맡겨가지고... 위탁 줄 때 회계 관리 같은 건 심사 기준에 안 들어가요? 처음부터 안전장치를 만들어 놔야죠."

이 질문을 역으로 생각하면,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의 부정수급(교사의 내부고발로 발각됨) 문제를 시는 15개월 동안 몰랐고, 문제를 일으킨 원장에 또 재위탁을 줬고, 다른 원에서 이런 일이 안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으며, 위탁 줄 때 문제 있는 원장을 걸러낼 안전장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단순히 '장기 위탁'만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원을 내 것처럼 여기는 '제왕적' 원장님 밑에서 위법행위는 묻힌다. 용기를 낸 내부고발 교사가 없었다면, 황 원장은 아직도 원을 운영함은 물론이고 또 재위탁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호연 민주노총 보육노조 비리고발센터장은 "장기위탁 및 부실행정은 국공립시설의 사유화 요건이 된다, 사유화된 국공립은 소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극소수 국공립 어린이집 시설이 새로 생기면 신규 원장을 필요로 하는데, 이를 위해서 각 원에서 자기 사람(새끼 원장)을 키우고 교사들은 새끼원장이 되기 위해 원장에게 줄을 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김 센터장은 "원 내부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나 급식 비리가 발생했을 때 전권을 행사하는 위탁 원장에 항의는 쉽지 않다"라며 "결국 '소왕국' 국공립 어린이집의 폐해를 아동들이 고스란히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짚었다.

오승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차장 역시 "국공립 어린이집이 민간 위탁되면 파편적으로 운영돼 원 간 격차가 크다, 오히려 국공립 원장들이 만든 '근로기준법 위반, 노무 관리 수법' 등이 각종 관행처럼 전파돼 나쁜 것만 서로 물들고 있다"라며 "통합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공공성 측면에서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다"라고 잘라 말했다.

여기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온다.

"국공립 어린이집 vs. 민간 어린이집 둘 다 연락 온다면 어디로 보내실 건가요?"

태그:#춘천, #국공립어린이집, #재위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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