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쓸쓸함이 흥건하여 객석마저 적신다. 범람하진 않는다. 쓸쓸함의 존재 방식 역시 '쓸쓸함'이기 때문이다. 푸르스름한 달빛으로 물든 그 도시에서, 밤바람은 서늘하고 강물은 차다. 강물에 비친 도심의 불빛이 아득하게 이지러진다. 그 어느 것도 완전하지 않다. 마음이 헛헛하여 자꾸만 헛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라. 살아야 한다. 단호하고도 분명한 어투로 이 영화는 말을 건넨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컷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2020년 도쿄올림픽 메인스타디움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신지(아케마츠 소스케)는 한쪽 눈의 시력을 잃어간다. 한편, 병원 간호사인 미카(이시바시 시즈카)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퇴근한 뒤 걸스바에서 일한다. 둘은 우연히 걸스바에서 만나는데, 신지 옆에 있던 회사 동료 토모유키(마츠다 류헤이)가 미카를 마음에 들어 한다. 얼마 못 가, 토모유키가 급성 뇌경색으로 묵숨을 잃는 일이 일어나고, 신지는 신지대로, 미카는 미카대로 삶에 대해 씁쓸해한다. 불안과 체념이라는 삶의 태도를 가진 두 사람은 조금씩,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도시의 현대인은 저마다 공허하다. 그리고, 저마다 공허함을 앓는 다른 방식을 갖고 있다. 시력을 잃어가는 신지는 무슨 말이든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고, 미카는 아예 세상을 비웃어 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미카는 쉴 새 없이 말하는 신지에게 '불안한가 보구나'라고 말하고, 미카는 불쾌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역시 웃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신지가 말하는 건 불안하기 때문이고, 미카가 냉소하는 건 세상을 체념하기 때문이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컷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컷 ⓒ (주) 디오시네마

 
영화는 때로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화면의 절반을 가린 신지의 시점 쇼트로 불안을, 미카의 나레이션으로 체념의 정서를 표현한다. 특히, 도시에 살면서도 "도시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자살한 거나 다름없어"라고 말하는 미카의 독백은 그녀의 현재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러고 보면,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관한 것이고 체념은 절망으로 점철된 과거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앞(미래)이 절반이나 가려져 있기 때문에 신지는 불안해하고, 미카는 자꾸 뒤돌아서서 과거(엄마가 죽은 이유)를 되묻는다. 영화는 그들이 겪는 결여의 근원을 짚어주면서도 그것을 해결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건, 애초부터 인지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영화는 그들의 웅크린 어깨를 살짝 토닥이고, 기꺼이 일으켜 세워, 그럼에도 살아가라고 앞으로 등을 떠민다. 허리를 못 쓰게 돼 해고된 이와시타 아저씨(테츠시 다나카)도, 먼 이국으로 와 동남아 노동자란 이유로 차별받는 안드레스(폴 매그사인)도, 사랑에 굶주렸던 토모유키까지. 가장 짙은 푸른색 달빛 아래, 도쿄 그 도시에서 불안하고, 고독하고, 빈곤하며, 차별을 당해도. 그럼에도 살아가라고.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컷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컷 ⓒ (주) 디오시네마

 
상하가 뒤집힌 영화의 첫 장면은 여러모로 인상 깊다. 어두운 밤 강물에 비친 도쿄의 빌딩 전경인데, 거꾸로 된 탓에 마치 강물이 하늘 같고 하늘이 강물처럼 아래에 있다. 기본적으로 강물의 색은 (맑다고 전제할 때) 하늘의 색을 반영한다. 상하가 뒤집힌 쇼트에 의하면 도쿄의 밤하늘은 '강물'인 셈인데, 그게 어두운 이유는 밤하늘이 어둡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쿄의 밤하늘이 '짙은 블루'인 것은 그게 단지 밤이기 때문이라고. 시간을 견뎌내 어슴푸레한 박명이 하늘로 스미는 순간, 다시 이 세상은 몰라보게 환하게 될 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죽을 때까지 살 거야"라는 미카의 말을 절망에서 기어코 희망을 불러들이는 주문으로 나는 읽는다. 이건, 체념이 아니라, 다짐이다. 푸른 절망이 아니라, 붉은 생의 의지다. 달이 아니라, 해다. 허연은 자신의 시에서 비슷한 다짐을 한 적 있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컷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스틸컷 ⓒ (주) 디오시네마

 
별로 존경하지도 않던 어르신네가 
"인생은 결국 쓸쓸한 거"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는 지금도 연애 때문에 운다

오베르 가는 길
여우 한 마리 죽어 있다
여우 등에 내리쬐는 그 빛에 고개 숙인다

길 건너 저녁거리와
목숨을 맞바꾼 여우

보리밭 옆 우물가
사람들은 여기서도 줄을 서 있다

마음이 뻐근하다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한다

- 허연, '일요일'전문 


결국 삶이란,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비릿하고, 비참할지라도. 실패했던 과거와 불안한 미래,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전부. 쓸쓸할 줄 뻔히 알면서, 알아도, 살아가라. 그 모든 '그럼에도'를 끌어안고서 살아가야 한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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