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19일 오후 5시 1분]

"난 앤이야. 끝에 꼭 'E'를 붙여줘."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것은 이것뿐이었다. <빨간 머리 앤>은 이미 여러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수많은 배우들이 앤을 연기했고, 닛폰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빨간머리 앤>은 무척이나 오랫동안 내 머릿속의 앤과 초록 지붕의 가족들을 규정하는 이미지였다.
 
 닛폰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1979)

닛폰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1979) ⓒ (주)미디어데이

 
주근깨에 빼빼 말랐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고뭉치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아이인 '앤(Anne)'의 이미지는 그 작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유별났으나 귀엽기만 했던 앤은 전혀 새로운 시대를 만나서, 무척이나 새로운 인물로 변했다. 넷플릭스가 재창조한 2017년의 '앤' 말이다.

넷플릭스 <빨간 머리 앤> 속에 표현된 앤의 트라우마

"넌 나의 앤이 아니야!(#notmyanne)"

100년이 넘게 지났다. 1908년에 캐나다의 프린스-에드워드 섬에서 태어난 앤이, 1970년대 일본을 거쳐 나에게 오기까지도 8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야 했다. 그 사이 세상은 변했고, 세상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도 크게 변했다. 그러니, 2017년에 이 시대의 가장 혁신적인 플랫폼인 넷플릭스를 통해 재창조된 <빨간 머리 앤>의 '앤'이 애니메이션에서 익숙했던 앤과 다르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했다! 그러니, 처음 발표되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저리 외쳤던 것이 아닐까?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 넷플릭스

 
다시 만난 앤은 정말 원작에서 뛰쳐나온 것 같은 외모를 갖고 있었다. 주근깨가 얼굴을 가득 덮었고, 몸은 뼈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빼빼 말라 있었다.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애니메이션에선 귀엽게 봐줄 수 있었던 앤의 '유별난 수다스러움'은, 거의 정신질환에 빠진 것은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게다가, 새로운 앤의 제작자는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앤에게 가해졌을 학대를 작품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열한 살 앤의 시선으로 적당히 감춰졌던 현실이 사실적으로 드러나는 순간, 동화는 드라마가 되었다. 차마 쉽게 보기 어려웠다.

"이번의 앤은 할머니 세대의 앤이 아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의 앤이다."

넷플릭스에서 새로 시작된 앤을 제작한 모이라 윌리베켓의 말이다. 모이라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번에 만난 앤은 변화된 2017년의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을 담아내며 새로운 것들을 보여준다. 1980년대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말이다.

지금까지는 앤이 고아가 된 후 어떤 곳에서 어떤 것들을 겪으며 살아야 했는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노동을 버텨내야 했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앤을 맞이한 초록 지붕집의 가족들이 앤을 진짜 가족으로 맞이하기까지 어떤 고난을 겪어야 했는지도 생각해 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고아 소녀의 행복한 성장만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게 앤은 '동화'였으니까.

새로운 시대의 앤을 환영하며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 넷플릭스

 
"그동안 그 어린애가 보고 견뎌야 했던 고난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

앤의 가족이 되기로 결심한 매튜는 앤의 트라우마를 알아챈다. 나 역시, 새로운 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꽤나 여러 번 보기를 멈춰야 했고, 힘든 부분을 애써 피해 가려 노력해야 했다. 힘든 일을 겪는 앤을 보는 게 쉽지 않았고, 동화적인 미화라고는 전혀 없는 현실은 가혹하고 어두웠다.

넷플릭스 <빨간 머리 앤>을 본 시청자 중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던 이유는, 단지 앤의 외모뿐만이 아니라 이야기의 현실감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혹독한 현실을 피해 상상의 세계에 숨었던 여자아이는 <미쓰백>(2018)의 지은이나 <어느 가족>(2018)의 쥬리와 다를 리 없을 테니 말이다. 앤의 자리에 이들을 대입하고 나면 앤을 구원한 초록 지붕집은 지금의 이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대변하게 된다.

사랑을 전해주는 가족이 있어야 했고, 그들의 공동체가 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친구를 만들어 주어야 했다. 아이들에게 허락된 교육을 받게 했어야 했고, 아이들의 문제가 그들의 관계 안에서 풀릴 수 있도록 도왔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믿음으로 앤이 어린 날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1908년의 앤에게 허락되었던 '공동체'의 보살핌이 100년이 넘게 지난 2019년의 우리 사회에는 충분한지, 이를 오직 '혈연에 의한' 가족의 선의에만 기대어 풀어야 하는 문제인지 계속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새롭게 다가온 앤은 당장 우리 옆집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였으니까.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 넷플릭스

 
100년이 지난 세상에서 앤은 많이 달라졌다. 내가 마릴라였다면 아마 정신병원에 제일 먼저 데려갔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극 중 앤은 학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앤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주체적이며 자기 인생의 주인이기에 당당하다. 비록 첫인상은 기괴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만나서 반가워, 우리 시대의 새로운 앤. 다른 무엇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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