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2월~2월 농부들이 월요일 저녁 7시에 모여 10회에 걸쳐 공부했다
▲ 농한기 동양철학 모임 학습 모습 12월~2월 농부들이 월요일 저녁 7시에 모여 10회에 걸쳐 공부했다
ⓒ 김유애

관련사진보기


농사가 끝나는 12월부터 진안 산골은 조용하고 한가하다. 3월이 오기 전까지 공부하기 딱 좋은 농한기다. 12월~2월까지 '세 명만 와도 하겠다'는 한명재 목사님(좌포교회)의 제안으로 농부님들이 10회에 걸쳐 '농한기 동양철학 모임'을 가졌다. 농부 10여 명이 모여 중국철학의 흐름, 조선 성리학, 공자, 묵자, 노자의 철학을 개괄적으로 공부했다. 농사철에는 새벽 4시부터 밤 8시까지 그 많은 농사일을 열심히 하는 분들이라 역시 공부도 진지하고 열심히 한다.

2/16(토)에는 강좌 대신, 아침 8시부터 모여 전주로 역사탐방을 갔다. 전주는 가장 가까운 도시로 익숙하고 잘 아는 곳이다. 그러나 한명재 목사님의 해설과 함께 방문한 전주는 새로웠다. "몇 번 갔어도 휙 둘러보고만 왔지, 뭐 잘 모르지" 하며 모두들 호기심에 가득 차 해설을 귀담아 들었다.

먼저, 송하진 전북도지사 아버지인 강암 송성용님의 서예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강암서예원을 들렀다. 서예라 하면 '까만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라는 생각에 별 호감이 없는데, 해설을 들으면서 보니 이해가 갔다. 학교 다닐 때 의미도 모르고 외웠던 행서, 초서, 예서-사람이 다니는 것처럼 썼다고 행서, 풀이 움직이는 것처럼 썼다고 초서, 노예 이름을 적을 때 쓰던 글자체라 해서 예서-가 뭔지 알았다. 강암 선생 작품 중엔 대나무 그림이 유명하다. '큰 대나무와 어린 대나무,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파르르 떨고 있는 대나무 등, 그 표현이 다양하다"는 설명을 듣고 보니 '똑같은 대나무를 뭐 저렇게 많이 그려놨나' 했던 무식한 생각이 싹 가셨다.
 
강암서예원에서 한명재 목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보고 있다.
▲ 강암서예원에서  강암서예원에서 한명재 목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보고 있다.
ⓒ 김유애

관련사진보기


  
강암 선생님의 작품 중 대나무 그림이 유명하다. 어린 대나무, 큰 대나무, 바람에 파르르 떠는 대나무 등, 모르고 보면 다 같은 대나무이지만 해설을 듣고 보니 대나무가 다르게 느껴진다
▲ 강암 선생님의 대나무 작품 강암 선생님의 작품 중 대나무 그림이 유명하다. 어린 대나무, 큰 대나무, 바람에 파르르 떠는 대나무 등, 모르고 보면 다 같은 대나무이지만 해설을 듣고 보니 대나무가 다르게 느껴진다
ⓒ 김유애

관련사진보기



강암서예원에서 몇 걸음 더 가면 '전주 향교'다. 향교 입구에는 '말에서 내리라'는 비석이 서 있었다. 말은 지금으로 말하면 자동차일텐데, 향교 앞마당에 가득 찬 자동차를 보니, 낡고 오래된 비석이 멋쩍어 보인다. 향교에는 공부하는 선비들이 썩지 않고, 겉과 속이 똑같아야 한다는 뜻으로 은행나무와 배롱나무를 꼭 심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향교는 공립교육기관이고, 서원은 입시전문 사교육 기관이었다. 향교에는 누구나 다 와서 공부할 수 있었지만 귀족자제들이 묵었던 동제와 일반 자제들이 생활한 서제 기숙사가 나뉘었다. 한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신분을 나눠 가르치면, 학생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향교에는 말이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자동차인데, 향교 안 마당에는 자동차로 가득하다. 도시의 주차난이 심하지만은 향교의 정신은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중간에 파손된 하마비를 복원한 흔적이 보인다.
▲ 하마비(말에서 내리라) 향교에는 말이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자동차인데, 향교 안 마당에는 자동차로 가득하다. 도시의 주차난이 심하지만은 향교의 정신은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중간에 파손된 하마비를 복원한 흔적이 보인다.
ⓒ 김유애

관련사진보기


전북대학의 시초가 된 전주 향교 명륜당은 특이한 건축물이다. 눈썹처마에 빗살창, 그리고 색을 입히지 않고, 나무색을 그대로 살렸다. 기숙사 주춧돌은 자연석을 그대로 살린 덤벙주초였는데, 이는 지진을 대비한 건축기법이었다.
  
화려한 색채가 전혀 없는 눈썹처마, 빗살무늬 창이 독특한 명륜당, 전북대학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 전주 향교 명륜당 화려한 색채가 전혀 없는 눈썹처마, 빗살무늬 창이 독특한 명륜당, 전북대학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 김유애

관련사진보기


  
자연석을 그대로 살려 주춧돌로 놓았다.  이는 지진대비를 위함이라 한다
▲ 명륜당 기숙사 건물의 덤벙주초 자연석을 그대로 살려 주춧돌로 놓았다. 이는 지진대비를 위함이라 한다
ⓒ 김유애

관련사진보기


    
전주 한옥마을 입구에 멋있게 서 있는 전동성당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 역시 그냥 지나쳐버리는 곳이었는데, 해설과 들으며 자세히 보니 창문 하나, 기둥 하나 다 의미 있다. 전동성당에서 눈여겨 볼 것은 스테인드글라스, 회랑, 꺼지지 않는 불, 십자가가 있는 닷집, 창문 모양, 기둥들이다. 전동성당은 네오고딕양식(바깥 기둥 모양)과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지붕 위 십자가 개수)이 섞여서 지어졌다. 특히 스테인드그라스는 밖에서 볼 때는 하얀 색으로만 보인다. 안에서 볼 때는 다섯 가지 색으로 예쁘게 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이는 빛조차도 변하는 성스러운 성소를 말하는 뜻이다. 
   
전주 한옥마을 입구에 있는 전동성당
▲ 전동성당 전주 한옥마을 입구에 있는 전동성당
ⓒ 김유애

관련사진보기


   
기둥을 자세히 보면 층이 있고, 층이 올라갈 수록 얇아진다.  목재로 지었던 바실리카 양식에서 볼 수 있는 기둥 모습이라 한다
▲ 전동성당 기둥 기둥을 자세히 보면 층이 있고, 층이 올라갈 수록 얇아진다. 목재로 지었던 바실리카 양식에서 볼 수 있는 기둥 모습이라 한다
ⓒ 김유애

관련사진보기


  
유럽식은 밖에서 색이 보이지 않는다.  성당 안에서 빛이 비추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성소 안에서는 빛조차 변한다는 의미를 가졌다.
▲ 밖에서 보면 색이 보이지 않는 스테인드글라스 유럽식은 밖에서 색이 보이지 않는다. 성당 안에서 빛이 비추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성소 안에서는 빛조차 변한다는 의미를 가졌다.
ⓒ 김유애

관련사진보기



전동성당 옆에 있는 피에타 상 앞에서 목사님이 "이 동상에서 이상한 점이 없냐?"고 물었다. 수염이 난 늙은 남자를 젊은 여자가 안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너무 젊어요."라고 답했다. 왜 엄마가 더 젊을까? 예수님은 고난을 받은 모습을, 어머니인 마리아는 신성한 동정녀 마리아를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
 
자세히 보면 남자를 안고 있는 여자가 젊다.  아들인 예수가 더 나이들어 보인다. 동정녀 성모 마리아와 고난 받은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한다.
▲ 피에타상 자세히 보면 남자를 안고 있는 여자가 젊다. 아들인 예수가 더 나이들어 보인다. 동정녀 성모 마리아와 고난 받은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한다.
ⓒ 김유애

관련사진보기


    
전통적으로 유럽 성당 동쪽에는 일반 사람들의 무덤이 있고, 교회 지하에는 신부들의 무덤이 있었다. 이는 죽음을 안에 놓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돌아보게 하였다. 반대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성당 안에 매장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무덤과 장례식장이 혐오시설처럼 여겨진다. 마치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전주 한옥마을 입구에는 경기전이 있다. 경기전은 왕의 어진을 볼 수 있는 조선건국 이념 교육관이다. 함흥, 개성, 경주, 전주 네 곳에 어진을 보관하는 기관이 있었다. 어진은 6.25 전쟁 때 다 타고, 태조 이성계 어진만 원본이 남아 있다. 태조 이성계 어진은 두 점이 있는데, 젊은 이성계 어진은 북한에, 나이든 이성계 어진은 전주에 있다. 경기전에는 두 가지를 다 볼 수 있다. 어진은 있는 모습 그대로, 쥐꼬리털로 그린 극세밀화다. 왕의 존엄성은 눈과 얼굴에 드러난다. 여덟 번을 그려서 나온 작품이다. 뒷면에 색을 칠해 앞면으로 나타나게 하는 기법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정말 얼굴에 난 잔털까지 너무 세밀하게 묘사를 했다. 마지막 고종과 순종의 어진은 일본 사람 같이 그려졌기 때문에 유네스코에 등재되지 않았다. 경기전에는 왕의 행차 모습이 종이 인형으로 묘사되어 있다. 왕 한 사람 행차 하는데, 몇 천 명이 움직인다. 무거운 가마를 짊어진 사람들의 어깨를 보니 의전에 시달리는 고달픈 백성들의 삶이 느껴진다. 마치 내 어깨가 짓눌린 듯. 
전주 한옥마을에는 조선시대 왕의 어진을 모셔놓은 경기전이 있다.극세밀화로 그린 왕의 어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 미술 수준에 감탄을 하게 된다.
▲ 경기전 전주 한옥마을에는 조선시대 왕의 어진을 모셔놓은 경기전이 있다.극세밀화로 그린 왕의 어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 미술 수준에 감탄을 하게 된다.
ⓒ 김유애

관련사진보기


    
경기전을 둘러보고 나오니 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은 1938년 일본으로부터 한옥을 지키기 위해 선비들이 돈을 만들어 사들였다고 한다. 이런 문화재와 역사들이 살아 숨 쉬는 거리엔 한복인지 드레스인지 모를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예쁜 표정으로 사진들을 찍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중인 한옥마을은 소비를 하러 들르는 곳이었지 역사를 느끼는 곳은 아니었다. 함께 간 농부님들도 "자주 오는 곳이었지만 그냥 보고 지나쳤지, 이런 곳이었는지 처음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지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내용은 3월호 월간 백운에 실릴 수도 있습니다.


태그:#흰구름작은도서관, #농한기동양철학, #한명재, #전주향교, #경기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