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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2.27 09:22수정 2019.02.27 09:22
전남 장흥군 대덕읍에 '풀로만 목장'이 있다. 초지 사료 수입을 하던 조영현씨가 지난 2011년 12마리 송아지로 시작한 목장이다. 목장 사료는 수입한 알파파와 라이그라스가 전부다.

전남 장흥군 대덕읍에 '풀로만 목장'이 있다. 초지 사료 수입을 하던 조영현씨가 지난 2011년 12마리 송아지로 시작한 목장이다. 목장 사료는 수입한 알파파와 라이그라스가 전부다. ⓒ 김진영

 
천엽을 먹었다. 천엽은 네 개의 소 위장 가운데 세 번째 위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썬 것을 소금과 참기름으로 만든 장에 찍어 먹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지만, 참기름 장 없이 먹었다. 늘 먹었던 천엽과는 달리 검은색이 아닌 옅은 주황색과 회색이 감도는 천엽이었다. 천엽 자체가 고소해서 참기름 장이 없어도 맛이 뒤쳐지지 않았다. 

소는 풀을 먹는다. 아니, 풀만 먹었다. 축산이 업(業)이 되면서 풀만 아니라 곡물사료, 즉 옥수수와 기름을 짠 후 남은 옥수수박, 대두박 등으로 만든 배합사료를 주로 먹는다. 물론 배합사료만이 아니라 알파파나 오차드그라스, 라이그라스 등의 조사료를 먹이긴 하더라도 배합사료보다는 적게 먹인다. 

30개월령 소가 먹었던 배합사료의 총량은 4929kg, 조사료의 양은 1/3 수준인 1521kg이다(국립축산진흥원, 한우사육 100문 100답). 배합사료를 더 많이 먹이는 까닭은 성장이 빠르고, '마블링' 형성이 잘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배합사료만 먹인다고 해서 마블링 형성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배합사료도 성장기와 마블링 형성 시기를 구분해 사료를 달리해서 준다. 지방 축적을 방해하는 비타민A를 제한해야 1++ 최고 등급이 나온다. 

육즙의 맛보다는 맛있는 향이 먼저 코를 자극
 
풀로만 키운 소의 천엽은 늘 먹었던 천엽과는 달리 검은색이 아닌 옅은 주황색과 회색이 감돌았다.

풀로만 키운 소의 천엽은 늘 먹었던 천엽과는 달리 검은색이 아닌 옅은 주황색과 회색이 감돌았다. ⓒ 김진영


지난주, 전남 장흥 출장길에서 먹어본 천엽은 배합사료 대신 풀로만 키운 소의 것이다. 소가 당연히 풀을 먹어야 하지만, 풀만 먹이는 경우가 드물어 지금은 독특한 사육 방식으로 취급받는다. 배합사료 없이 소를 키우면 성장은 더디다. 가격 결정 기준인 등급 판정에서도 좋은 등급을 받기 어렵다. 좋은 가격도 받지 못하는 소를 키우는 이유는 '맛' 때문이다. 풀로만 키운 소고기는 등급 좋은 소고기와 다른 맛이 있다.

풀로만 키운 소의 안심과 육회도 같이 먹어봤다. 육회는 보섭살로 엉덩이와 뒷다릿살 사이에 있는 고기다. 육회로 즐겨 먹는 부위다. 육회를 잘하는 식당에 가면 육장(참기름, 고추장, 다진 마늘 넣고 만든 양념장)이 특색 있다. 육회보다 육장이 맛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다. 

보섭살로 만든 육회를 천엽처럼 기름장 없이 그냥 먹고, 그 다음엔 소금을 살짝 찍어서 맛을 봤다. 육장 없이 먹었지만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났다. 육장 맛이 아닌 고기 본연의 맛이 혀에 느껴졌다. 소금을 조금 찍어 먹어보니 세포 속에 숨어 있던 단맛이 도드라졌다. 소금은 짠맛을 내는 것이 기본 역할이지만 단맛을 도드라지게 하기도 한다. 

먹기 좋게 잘라 무쇠 팬에 구운 안심은 다른 소고기와 달리 부드럽게 씹히지 않고 부서졌다. 씹을수록 덩어리가 작아지면서 알갱이 단위가 됐다. 향 좋은 음식은 눈이나 혀보다는 코가 먼저 반응한다. 혀가 느끼는 육즙의 맛보다 맛있는 향이 먼저 코를 자극해 침샘을 열었다. 

일년 내내 풀만 먹고 자란 소의 진한 육향
 
보섭살은 엉덩이와 뒷다릿살 사이에 있는 고기다. 육회로 즐겨 먹는 부위다.

보섭살은 엉덩이와 뒷다릿살 사이에 있는 고기다. 육회로 즐겨 먹는 부위다. ⓒ 김진영


전남 장흥군 대덕읍에 '풀로만 목장'이 있다. 초지 사료 수입을 하던 조영현씨가 지난 2011년 12마리 송아지로 시작한 목장이다. 목장 사료는 수입한 알파파와 라이그라스가 전부다. 쌀을 수확한 다음에 파종하여 이듬해 5월 라이그라스를 수확한 것을 말려놨다가 일 년 내내 먹이로 준다. 

유기농 쌀 생산자로서는 쌀과 라이그라스를 이모작으로 농사지을 수 있어 소득이 늘고, 목장에서는 안전한 사료를 공급받을 수 있어 인근에서 전량 계약재배한다. 풀만 먹여 키운 소는 시중에 유통하지 않고 개인 SNS를 통해 한 달에 한 마리 정도 분량만 예약 판매한다. 

풀로만 키운 소는 1+ 등급의 소고기와 다른 맛이다. 현행 소고기 등급제는 지방의 분포도가 판정의 기준이고, 맛의 척도처럼 인식되고 있다. 등급이 높으면 맛있고, 낮으면 맛없다고 생각한다. 등급이 낮은 것은 근내 지방이 적을 뿐, 맛 하고는 상관이 없다. 풀로만 키운 소는 육향이 진하다. 물론 마블링 높은 소고기도 향이 있지만, 풀로만 사육한 소가 품고 있는 향하고는 비교하기 힘들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높은 등급을 위해 예쁜 근내 지방을 얻고, 향을 잃었다. 장흥의 풀로만 목장뿐만 아니라, 연천의 명성 목장, 제천의 화식우 등 풀 위주로 키우는 곳들도 있다. 마블링이 아닌 다른 소고기 맛을 찾는다면 풀만 먹여 키운 소고기가 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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