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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논객 지만원씨와 예비역 준장 박경석 장군.
 극우논객 지만원씨와 예비역 준장 박경석 장군.
ⓒ 이희훈/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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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그 사람 아주 유능하고 예리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5.18 북한군 침투설이) 가짜라는 걸 모를 리 없거든요.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육군 예비역 준장 박경석(87) 장군은 5.18민주화운동과 인연이 깊다. 1980년 당시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이었던 그는 당시 광주의 인사동향을 파악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당연직인 공적심사위원장도 맡고 있었다. 5.18 직후 전두환 등의 무공훈장 심사를 거부했다가 결국 군복을 벗었다.

박 장군은 "5.18 때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됐다"라고 주장하는 지만원씨와도 인연이 있다. 전역 후 한국군사평론가협회를 만든 그는 회장 자리에 있으면서 부회장인 지씨와 10년 넘게 교우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지씨가 5.18 북한군 침투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인연을 끊었다.

최근 지씨와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국회에서 5.18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여론의 뭇매가 쏟아지자 일부 의원의 유감 표시만 있었을 뿐, 여전히 5.18을 왜곡하는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마저 그들의 망언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오마이뉴스>는 5.18 당시 육군 내부 분위기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으며, 평론가로서 지씨와 오랜 시간 교류한 박 장군을 지난 22일 대전 자택에서 만났다. 5.18 북한군 침투설에 단호한 반응을 보인 그는 지씨가 그런 주장을 하는 까닭을 묻자 "무슨 목적인지 궁금하다"며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도 보였다.

"5.18, 정권찬탈에 분노한 정의감 분출"
 
박경석 예비역 준장의 대전 자택은 군에 대한 그의 애정을 반영하 듯 장군기를 비롯한 각종 훈장과 자료들로 가득하다.
 박경석 예비역 준장의 대전 자택은 군에 대한 그의 애정을 반영하 듯 장군기를 비롯한 각종 훈장과 자료들로 가득하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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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장군은 이른바 '육사생도 2기'이다. 육사생도 2기는 1950년 육사 입학 후 한 달도 안 돼 6.25전쟁이 터져 임관도 하지 못한 채 전장에 투입된 이들을 말한다. 육사 10기와 11기 사이에 끼어 정식 기수로 취급되지 않다가 최근에야 인정받았다.

육사생도 2기는 곧장 포천에 배치돼 전투를 치렀는데 이때 동기 330여 명 중 8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육군종합학교에 흡수돼 소위 계급장을 받았지만, 결국 전선에서 절반이 사망하고 말았다. 다행히 목숨은 건진 박 장군이었지만, 전투 중 수류탄 파편에 맞아 몸의 왼편을 크게 다쳤다. 그때 왼쪽 귀의 고막을 잃었다.

때문에 인터뷰 내내 박 장군의 오른쪽 귀는 기자를 향해 있었다. 그는 소음이 발생할 때마다 손을 귓바퀴에 가져다 댄 채 집중했고, 질문을 되묻기도 했다. 그럼에도 5.18 북한군 침투설을 묻는 질문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불성설"이라고 답했다. 당시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이었던 그는 "그때 보고받고 파악했던 광주 상황 중에 북한군이 와 있다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광주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니까 군에선 이북에 대한 경계에 초점을 두고 있었어요. 미군 7함대가 바다를, 미공군이 하늘을 지키고 있었죠. 우리도 비상경계 하에 최고도로 철책선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육군본부 모두 긴장하고 경계에 초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600명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못 들어오는 경비태세였던 거죠. 그런데도 그런 주장을 하는 건 정말 미친 짓입니다. 국제적, 군사적으로도 난센스예요."

박 장군은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유병현 장군의 회고록에도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가 서재에서 꺼내온 <한미연합사 창설의 주역 유병현 회고록>에는 "한미공조로 북 개입 원천 봉쇄", "600명 침투시켰으면 정전협정 위반이고 한미연합사·유엔사 모두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 "북한군 침투설은 완전히 거짓말"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경석 예비역 준장 "전두환 일당에게 무공훈장을 주면 광주시민들은 적이 돼 버리는 겁니다. 그럼 우리 역사가 어떻게 되겠어요?"
 박경석 예비역 준장 "전두환 일당에게 무공훈장을 주면 광주시민들은 적이 돼 버리는 겁니다. 그럼 우리 역사가 어떻게 되겠어요?"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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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장군은 당시 "육군본부 내에서도 광주시민 편에 선 군인들이 상당했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장군, 영관장교, 위관장교 할 것 없이 다수가 5.18의 원인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의 쿠데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라며 "일부 하나회 멤버를 제외하곤 썰렁한 반응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박 장군 자신도 "당시 소요는 전두환의 정권찬탈에 분노한 정의감의 분출"이라고 5.18을 명확히 규정했다. 5.18 직후 무공훈장 심사를 거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5.18이 끝난 후에 공적심사위원장인 나한테 이만한 서류가 내려왔습니다. 이희성 육군참모총장, 황영시 참모차장, 김홍한 인사참모부장을 통해 내려온 것이었죠. 전두환부터 시작해서 이름이 담겨 있는데 놀랍게도 그들에게 무공훈장을 주라고 하는 겁니다. 상훈법 상 무공훈장은 적과의 전투에서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도록 돼 있어요. 전두환 일당에게 무공훈장을 주면 광주시민들은 적이 돼버리는 겁니다. 그럼 우리 역사가 어떻게 되겠어요?"

박 장군은 윗선의 압력에도 심사 업무를 거부했고, 결국 이듬해 7월 군복을 벗었다. 박 장군의 업무거부에도 전두환 등은 '5.18 진압'을 공로로 무공훈장을 받았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25년 넘게 유지됐던 그들의 무공훈장을 5.18민주화운동특별법에 따라 박탈했다(관련기사 : 국무회의, 전두환·노태우 서훈·훈장 박탈 의결).

"지만원, 대중에게 박수받는 것 행복하게 생각"

 
예비역 준장 박경석 장군. 5.18 직후 전두환 등의 무공훈장 심사를 거부했다가 결국 군복을 벗었다.
 예비역 준장 박경석 장군. 5.18 직후 전두환 등의 무공훈장 심사를 거부했다가 결국 군복을 벗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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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역 후인 1980년대 말, 박 장군은 한국군사평론가협회를 만들었고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때 지씨가 부회장을 맡아 두 사람은 함께 활동했다. 박 장군은 "전쟁기념관 4층에 (협회 사무실이) 있을 때 (지씨가) 부회장으로서 나를 도왔다"라며 "그때 마신 소주가 모두 합해 100병은 넘을 거다, 내가 사는 집에 여러 번 방문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학적 두뇌도 뛰어났고 영어도 기가 막히게 잘했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예리한 관찰력을 지니고 있었다"라며 지씨와 일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던 지씨의 현재 모습에 박 장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만원(박 장군은 지씨를 지만원 혹은 지 박사로 칭했다)의 머리로 600명이 들어올 수 없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알면서도 저러는 것 같다"라고 추측했다가, 한편으론 "진짜로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걸까"라며 의문을 품기도 했다. 다만 "대중에 영합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 지씨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일 잘하고, 똑똑하고. 육사 후배지만 월남전 후배이기도 합니다. 저도, 지만원도 포병장교로 월남에 다녀왔어요. 근데 이런 얼토당토않은 (5.18 북한군 침투설)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 그와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골방에서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나하곤 성격이 다르더라고요. 지 박사는 국회에 나가 연설하고,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그러면서 대중에게 박수 받는 걸 굉장히 행복하게 생각했어요."

- 그와 갈등이 있었거나 언쟁을 벌인 적도 있나요?
"몇 번 있었죠. 제가 너무 아꼈기 때문에 대놓고 충고하지 못했는데, 술 마시면서 소리를 한 번 지른 적이 있어요. 600명이 북한에서 내려왔다고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너무 대중영합주의로 가는 것 때문이었죠. (5.18 북한군 침투설은) 시빗거리도 안 되는 거고, 상식도 아니잖아요."

- 지씨가 왜 그런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내가 미치겠어요. 지만원이 얼마나 예리한 두뇌를 가진 사람인데. 600명이 못 내려온다는 거 뻔히 알 건데."
 
박경석 예비역 준장 "나는 보수주의자. 하지만 보수가 잘못한 게 있으면 지적하는 것 또한 내 임무다"
 박경석 예비역 준장 "나는 보수주의자. 하지만 보수가 잘못한 게 있으면 지적하는 것 또한 내 임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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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 장군은 "지씨를 옹호하는 이들로부터 많은 항의 전화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를 통해 5.18 북한군 침투설을 비판한 데 따른 것이다.

"다들 지 박사를 따르면서 과거 나와도 함께 했던 전우들입니다. 주로 베트남전쟁 전우들이죠. 그 사람들이 '왜 지 박사를 안 돕냐'고 전화를 걸어와요. 심지어 '그렇게 머리가 좋으신 양반이 나이 들더니 흔들리시냐, 600명 넘어온 게 뻔한데 왜 그러시냐' 그래요. 그렇게 이야기해버리면 대화가 안 되는 거죠."

"난 보수주의자, 하지만..."
 

박 장군은 "군에선 나를 진보주의자라고 그러는데 아니다"라며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보수가 잘못한 게 있으면 지적하는 것 또한 내 임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생각에 기초해 박 장군은 그동안 친일군인, 정치군인 반대에 앞장서왔다. 이명박 정부가 백선엽 장군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고 하자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특설대 경력을 문제 삼아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무산시켰다. 앞서 백 장군이 추진한 것으로 알려진 '6.25 전쟁영웅 심일 소령'의 공적이 허위라는 점도 발굴해냈다. 또 1987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의 특보로 활동하며 하나회 척결과 관련해 자문했고, 김영삼 정부 출범 후엔 방송과 검찰에 나가 하나회의 실상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활동의 이유를 "대한민국 사람이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박 장군은 최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에 지원하기도 했다. 자신이 적극 나선 것은 아니고 "대전 지역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추천하겠다기에 그러라고 허락했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자유한국당은 권태오 전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처장,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 차기환 변호사를 추천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권 전 처장, 이 전 기자의 임명을 거부했고, 임명엔 동의했지만 차 변호사에게도 사실상 불신임 의사를 표명했다(관련기사 : 문 대통령, 한국당 추천 5.18 조사위원 2명 '임명 거부').

박 장군은 "권 전 처장은 군사적 식견은 훌륭하겠으나 5.18 진상을 규명하는 데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고, 이 전 기자는 앞장서서 5.18을 폄훼한 사람인데 (임명하면) 되겠나"라며 "문 대통령이 잘 선택한 것으로 본다, 중립적인 사람이 들어가 진상규명에 참여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5.18 진상은 백일 하에 다 드러나 있다"라며 "지만원과 태극기부대의 세력이 너무 커버렸는데 한편으론 이러한 소용돌이도 필요하다, 이런 소용돌이가 진실로 가는 흐름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태그:#5.18, #박경석, #장군,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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