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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적인 거대정당들은 오로지 정치에 올인한다. 정책은 늘 뒷전이다. 사실 내세울만한 정책도 별로 없다. 선거 때마다 공약집을 살펴보면 예전 것을, 남의 정당의 것을 적당히 표절하거나 교묘하게 재활용하는 수준이다. 거기서 거기고 그놈이 그놈이다.

새로운 정책을 개발할 정치적 철학도 내부역량도 부족하다. 반복학습의 효과로 인해 유권자들도 이제 눈치를 챘다. 그런 수준의 정당에 더 이상 정책은 기대하지 않는다. 정책의 차별화가 되지 않으니, 판단기준이 없으니 학연이나 혈연, 지역감정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태로 한국의 정당이 민주주의의 발전이나 국가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걸림돌이나 훼방꾼 노릇으로 퇴행하는 건 아닌지 걱정과 불신이 깊다.

특정지역에 지지기반을 둔 매국적, 민족반역적 일부 야당은 굳이 거론할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정당의 기본적인 자세나 양식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니 비판하기도 부적절하다. 남북, 북미 평화협상 반대, 세월호 국정조사 방해, 심지어 5.18 망언을 일삼는 매우 저급한 수준이다.

일베나 태극기부대 수준의 저열한 정치력과, 과거 서북청년단의 수준의 사악한 역사의식이다. 일반적인 유권자들은 그들의 실상을 모르지 않는다. 내년 총선에서 한국정치의 무대에서 자가도태, 퇴출될 전망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문제는 합리적인 진보, 민주화세력을 자처하는 집권 여당이다. 그런 수준 이하의 일부 야당에게 휘둘리고 발목을 잡혀 적폐청산이나 개혁은 커녕, 좀처럼 한발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주요 사안마다 주춤거리고 망설이고 있다. 결단과 결행을 못 하고 있다. 오히려 농정, 노동, 경제 분야 등에서는 슬그머니 역행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혹여 야당에게 말못할 치명적인 약점을 잡힌 건 아닐까. 초록은 역시 동색인가. 설마, 정치인으로서 동업자의식에 사로잡혀 모종의 뒷거래를 하는 건 아닐까. 상식적인 국민들은 몹시 답답해하며 의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집권여당은 당명만큼이라도 민주적이기는 한가. 도덕적이고 정의로운가. 그렇지 않다는 징후와 증거는 곳곳에서 돌출하고 있다. 일부 소속 의원들의 인사 부정청탁, 갑질 횡포, 예산횡령 등의 비리가 이어지고 있다. 소위 민주화투사 출신인 당 대표 조차 비리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지경이다.

각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여당 대표는 의정활동 명목으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발주한 18건의 정책연구용역 중 1건을 표절했다. 본인도 인정하고 반납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18건의 정책연구용역 중에 16건에 대해서는 연구보고서를 여전히 비공개하고 있다. 그래서 표절이나 허위연구용역이 아닌지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 지출된 연구용역비는 7450만원에 달한다.

어쩌면 실무자의 실수에 의한 옥의 티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상상이 가능하다. 그동안 정당 내부에서 관행으로, 관성적으로 만연한 비리로서 빙산의 일각일 수 있는 것이다. 자료공개와 검증을 피하며 자꾸 오해와 의심만 증폭시킬 게 아니다. 작은 돈이, 작은 사안이 아니다. 당장, 스스로 떳떳함을, 무죄를 증명하는 길 밖에 없다.

그래야 국민들도 떳떳하게 여당을 지원하고 당당하게 지지할 수 있다. 공공의 적으로 타락하고 있는 일부 야당의 대항마로서, 조련사로서 믿고 인정할 수 있다. 과거사의 적폐를 청산하려는 한국정치 혁명의 역사적 과업에 기꺼이 동지적 연대를 보낼 수 있다.
 
정당명부식 연동형비례대표제로서 무지개빛깔의 다양한 정당이 국회로 들어가야 정상적으로 민의를 대변하고 대표할 수 있다.
▲ 국회 의원회관  정당명부식 연동형비례대표제로서 무지개빛깔의 다양한 정당이 국회로 들어가야 정상적으로 민의를 대변하고 대표할 수 있다.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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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당에는 철학과 정책이 없다

지금 여당의 적은 야당이 아닌 듯 하다. 최대의 강력한 적은 정확히 여당 내부에 도사리고있는듯하다. 싸워야 할 적이나 풀어야할 문제가 결코 외부에 있지 않다. 오로지 내부에 산적해있다. 스스로 제 살을 도려내고 제 뼈를 발라내야 한다. 그래서 정당의 혁신, 정치 혁명이 어려운 것이다.

지난날, 국회에서 어느 진보정당의 정책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이다. 마침 국회 사무처에서 일하는 학교 후배로부터 진심어린, 그러나 뼈 아픈 조언을 들었다.

"선배, 지난 참여정부가 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고 정권을 넘겨줬는지 아세요? 대통령한테 실망해서? 국민들이 먹고살기가 어려워져서? 아니에요. 공무원들이 참여정부 사람들에게 다 등을 돌려서 그래요."
 

후배는 그때의 울분과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듯 목소리가 떨렸다.

"참여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제가 일하는 법제실에 당시 집권당 어느 국회의원실 9급 비서한테 전화가 왔어요. 다짜고짜 제 상사부터 찾았어요. 그냥 제가 담당자니까 저랑 얘기하면 될 사안이었는데도요. 상사를 바꿔주자 말을 함부로 했어요. 새파랗게 어린 일개 비서가 국회에서 평생을 보낸 한참 어른에게. 마치 점령군이나 된 것처럼.

당시 그런 봉변은 국회, 행정부 가릴 것 없이 도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죠. 그리고 그런 봉변을 겪은 공무원들은 참여정부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어요. 국정이 제대로 운영될 리 없죠. 앞으로는 고분고분 말을 듣는 척 했겠지만 뒤로는 정권이 바뀌면 두고보자며 벼르고 있었을테니. 그 지경에서 정권을 재창출 할 수 있었겠어요?"

나는 부디 촛불시민을 대표하고 대리하는 문재인정부가 이같은 참여정부의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러자면 집원 여당은 정치가 아니라 정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당에는 여야를 불문하고 정책이 없다. 집권정당은, 수권정당은 일단 걸맞는 철학과 정책이 있어야 한다. 정치가 아니고, 정치지도자가 아니고.

그런데 지금 한국정당에는 철학도, 정책도, 지도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일단 수권전략을 연구하고 집권철학이나 정책을 생산할 연구소가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일하면서 그런 상황이 너무도 의아해서, 궁금해서 모 정당의 정책연구소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국회의원수가 100명이 넘는 거대 정당으로서, 양당독과점 체제의 한축을 도맡은 원내 교섭단체로서, 충분한 정책연구위원과 정책개발비까지 국고에서 보조받는 데 왜 쓸만한 정책을 생산하지 못 하는 거지?"

그는 잘 알만한 사람이 물어본다는듯, 자기도 못내 답답하다는듯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국고에서 보조받는 정책개발비 예산이 정책개발에 직접 다 투여되지 않아. 겉으로는 그렇지만. 주변부나 부대비용으로 넘어가는 돈이 적지 않지. 심지어 일부 정책연구위원들은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훗날 국회의원 같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려는 경력관리용 보험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정치가 아닌 정책으로 진보정당을 지켜낸 故 노회찬의원, 수년전 시청앞 천막농성장에서 무지개빛 신발끈을 고쳐매고 있다.
▲ 노회찬의 신발  정치가 아닌 정책으로 진보정당을 지켜낸 故 노회찬의원, 수년전 시청앞 천막농성장에서 무지개빛 신발끈을 고쳐매고 있다.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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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념 정당에서 생활정책 정당으로

정당의 정책개발 모델은 역시 정치선진국 독일처럼 하면 되지 않겠는가. 독일은 이미 1925년에 사민당(SPD)의 외곽 씽크탱크격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riedrich Ebert Stiftung)이 설립되었다. 정당이 운영하는 정책개발재단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독일의 경우, 한국의 정당 산하 정책연구소 같이 소속 정당의 정당활동 지원에만 복무하지 않는다. 정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정치재단이다. 그래서 사심없이 연구원들이 좋은 정책을 개발하는 데 매진할 수 있다.

이른바 '운동 정치', '학생회 정치', '민주화 정치'도 정당 내부에 쌓인 적폐이다. 물도 그렇고, 생각도 오래 고이면 썩는다. 이제 '정책 정치', '공동체 정치', '생활 정치', '풀뿌리 정치', '녹색 정치' 등으로 정치의 품질과 품격을 높이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때 참 열심히 싸웠지', '우리는 그래도 정의롭고 진보적이지'라는 자화자찬 무용담은 이제 그만 하자. 지겹고 식상하고 피로하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잘할 수 있다'고 구체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정책과 사업을 꺼내놓자. 정책으로, 사업성과로 국민들에게 냉정히 정당의, 정치인의 자질과 실력을 평가받자. 국민의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가혹하게 스스로 학습하고 단련하고 실천하자. 무엇보다 그 결과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자.

그렇게 전근대적인 운동이념 정당에서, 사회혁신적인 생활정책 정당으로 환골탈태하자. 당장 바뀌지 않으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보수와 진보를 가를 필요업이 기존 구태의연한 정당들은 미래의 정치무대에서 완전 소멸되고 말 것이다.

이제 투쟁의 현장은 안전한 정당의 당사나 안락한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이나, 피안의 청와대 비서실에 있지 않다. 정당의 존재감은 정당 밖의 민생현장 최전선에서 오로지 발휘되고 실증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철탑고공농성 투쟁현장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나는 도시 자영업자들의 구멍가게에서. 도시빈민들의 뒷골목 쪽방이나 고시원 지하방에서, 늙은 농부들만 생물학적으로 살아남은 농촌의 쭉정이 같은 빈 들판에서.
 
도쿄 외곽 가와고에시 지방의 서민주택가 골목길에까지 파고든 일본공산당의 사회보험대책 정당정책설명회 광고.
▲ 일본 공산당  도쿄 외곽 가와고에시 지방의 서민주택가 골목길에까지 파고든 일본공산당의 사회보험대책 정당정책설명회 광고.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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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정기석 : 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작가.시인, '농부의 나라', '행복사회유럽',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마을학개론(근간)' 등 지음.


태그:#한국혁명, #정치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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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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