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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라는 무거운 존재가 주는 고민을 잠시 내려두고 낯선 도시에서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여행자들.
 청춘이라는 무거운 존재가 주는 고민을 잠시 내려두고 낯선 도시에서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여행자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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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아주 먼 옛날이 아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한국의 40~50대. 그들은 20~30년 전 이런 문장에 매혹됐다.

"꿈을 꾸는 자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시간을 좀 더 뒤로 돌려보자. 16세기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청춘은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고, 환금되지도 않는 불안전한 주식에 투자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젊은이들을 고무시켰다. 뿐인가. 당대 지식인들은 아래와 같은 말로 그 시절 젊은이들을 추동했다.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청춘은 스스로의 가슴에서 모반을 꿈꾼다."
"들이치는 빛이 없어도 스스로 반짝이는 보석은 청춘 뿐이다."


찾아보라. 가장 빛나는 생의 한때, 다시는 되돌릴 수 없기에 아름다운 시절.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청춘을 예찬하는 문장은 동서양과 고금을 불문하고 어디에나 가득하다. 청춘이 아름다운 건 그 단어의 배후에 '꿈'과 '모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한 세기 전에는. 도전과 모험, 새로운 시도와 시행착오가 없는 청춘이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안정적인 일상과 예측 가능한 미래를 은유하는 '돈 되는 주식'은 언제나 모반을 꿈꾸는 청춘과 어울리는 단어가 될 수 없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스스로 반짝이는 보석이 되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것. 이게 바로 '불안전한 주식'이고 젊은이는 그 주식에 투자할 권리가 있었다. 해서, 많은 청춘들이 그 길을 걸었다.

여행자들의 거리에서 만난 청년들

동남아시아 여행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카오산 로드'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태국의 수도 방콕에 자리한 '여행자들의 거리'. 한 해 수백만 명의 젊은 배낭여행자들이 이곳에 모여 정보를 나누고, 친구를 만들며, 스스로의 빛나는 청춘을 확인한다. 20대 청년들의 환호와 웃음소리가 가득한 공간.

지난해 여름 카오산 로드를 찾았다. 다섯 번째 방문이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엔 여행자가 정말 많다. 자정을 넘긴 시간임에도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불안정한 주식'에 투자한 청춘들이 절대다수였다. 처음으로 거길 여행했던 15년 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영국에서 왔다는 친절한 대학생들은 즐거움에 겨워 낯선 사람의 사진기를 바라보며 거침없이 웃었고, 흥겨운 댄스뮤직이 흘러나오는 카페 앞에선 신나는 즉석 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즐기는 축제'엔 너도, 나도, 우리도 없었다.

밤의 거리에서 만난 청년 넷은 캐나다와 독일에서 왔다고 했는데, 그날 처음 본 사이임에도 이미 '절친'이 돼 있었다. 그들의 밝은 표정과 넘치는 기운이 부러웠다. 내가 가야할 길을 가로막고 막무가내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음에도. 그들이 귀여웠다.

그 순간이었다. 윤동주(1917~1945)가 쓴 시 <사랑스런 추억>의 몇몇 구절이 절로 떠올랐다. 자의와는 무관하게 '비극의 청춘시절'을 살아내야 했던(살았던,이 아닌) 식민지의 젊은이.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운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태국의 여행자 거리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청춘들.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눈부셨다.
 태국의 여행자 거리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청춘들.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눈부셨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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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서도 희망과 꿈을 잃지 않아야 청춘

다수의 한국인들이 아픔과 아름다움으로 기억하는 시인 윤동주는 삶 내내 '청춘을 살다가' 안타까운 나이 스물여덟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보낸 젊은 날은 일제강점기에 겹쳐 있었고, 유추하건대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터.

투명하고 뜨거운 영혼을 지낸 채 짧게 지상에 머물다 간 윤동주는 자신 앞에 닥쳐온 수난과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둡고 습하며 빈곤한 생활 속에서도 삶과 철학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던 청년 시인은 자신과 더불어 나라를 끌어안고자 했다. 주위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 또한 버리지 않고 살았다. 그러한 삶의 태도는 그가 남긴 작품들 속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랑스런 추억' 속에선 눈물과 웃음,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느껴진다. 고뇌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사람의 그림자가 읽힌다.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는 서글픈 상황임에도 눈부신 햇빛 속을 날아가는 비둘기를 바라보며, 미래를 은유하는 기차를 기다리는 '청년 윤동주'.

그렇기에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버리지만' 시인은 이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새롭게 떠오를 내일의 태양을 기다리며 이렇게 조용하고 아프게 노래할 뿐.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어떤 에너지를 청춘과 대등하게 비유할 수 있을까? 세상이 무섭지 않은 그들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어떤 에너지를 청춘과 대등하게 비유할 수 있을까? 세상이 무섭지 않은 그들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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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게 조언하는 게 오만일지라도...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유럽과 북미의 젊은이들도 청춘시절의 윤동주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더불어 오늘 나와 함께 허위허위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청춘들도.

걱정 하나 없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낯선 도시의 여행자가 돼 밤새 떠들고 마시지만, 그들의 삶 속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을 게 분명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지구에 사는 인간 모두는 저마다의 고민과 아픔 하나씩은 분명 가지고 있거늘.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럽 전체를 휩쓸고 있는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은 청년들을 낭떠러지로 몰아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곳에서 만난 청년들 또한 도전과 모험보다는 안정과 안락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는 게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어둠의 터널'을 제 힘으로 빠져나와 밝은 빛과 만나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청년들 또한 당연지사 많지 않을까. 이 땅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한국과 유럽, 그들 청춘의 발버둥이 보기에 측은하면서도 존경스럽다. 왜냐? 나는 그런 시절을 살아보지 못했으므로.

투여하는 노력은 크지만 '빛나는 미래'와는 멀어진 2019년의 20대들. 그들이 어디에서 살고 있건 어깨를 따스하게 토닥여주고 싶다. 먼저 세상을 살아온 선배로서.
영국의 셰익스피어 시대, 한국의 386세대와는 전혀 다른 시절을 허위허위 사는 당신들. 지구 위의 모든 청춘들…

요즘엔 별 쓸모없는 조언을 하는 기성세대를 '개저씨'라고 부른다던가? 그런 힐난을 감수하면서도 소설가 공지영을 인용해 이 말을 전하는 건 잘하는 짓일까?

"네가 어떤 삶을 살더라도 아저씨는 너희를 응원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실린 내용을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청춘, #젊은 날, #카오산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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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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