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와이프>(2017) 한 장면

영화 <더 와이프>(2017)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작가로서 대성할 출중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조안(글렌 클로즈 분)은 그녀의 지도교수 였던 조셉(조나단 프라이스 분)과의 결혼과 함께 작가로서 삶을 중단한다. 여자는 소설가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1960년대 당시 시대적 통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안 캐슬먼 이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내지 않았을 뿐, 조안은 그녀의 남편인 조셉 캐슬먼의 이름으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작가로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영광은 조셉에게 돌아갔으며, 조안은 사람들에게 그저 조셉의 아내, 영혼의 동반자 정도로만 소개됐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 <더 와이프>는 여성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통념, 편견 때문에 남편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해야 했던 여성 소설가가 부당한 현실을 각성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응당 자신이 누려야할 모든 명예와 영광을 남편이 가로채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도, 남편을 위해 묵묵히 희생하는 삶에 만족하며 살았던 조안이 폭발한 계기는 그녀를 사사건건 무시하는 남편에게 있었다. 

남성 스타 작가만을 원했던 세상

여성은 아무리 뛰어난 소설을 발표해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조안은 계속 글을 쓰길 원했고, 글쓰기에 재능이 없었던 조셉은 조안의 뛰어난 능력을 갈구했다. 1950-60년대에도 재능을 인정받은 여성 작가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 였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 페미니즘과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은 버지니아 울프 같은 천재도 있었고 <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 등 여성 작가가 쓴 소설들이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문학계의 다수를 차지 했던 남성 작가에 비해 여성 작가들이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학계의 판도를 주도하는 남성들은 스타성있는 남성작가를 키우길 원했고, 여성 작가를 스타로 만드는 행위는 그들에게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영화 <더 와이프>(2017) 한 장면

영화 <더 와이프>(2017)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더 와이프>를 각색한 제인 앤더슨에 따르면 여성 작가가 된다는 것은 (남성 중심) 체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고 한다. 문학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여성이 메가폰을 잡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영화 쪽 사정도 비슷해 보인다. 물론 여성 작가에게 유독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유리천장을 뚫고 문학계의 별이 된 이들도 분명 있었지만, 조안은 현실에 순응하는 쪽을 택했고 그녀의 재능은 고스란히 남편만 빛나게 하는 전유물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이름으로 훌륭한 소설을 발표한 조안 덕분에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지목될 정도로 큰 영광을 누린 조셉은 아내에게 헌신적인 위인이 되지 못했다.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조셉은 조안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수행비서에게 눈길을 주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기본, 다른 노벨상 수상자 가족에게 "내 아내는 글을 쓰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발언으로 조안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물론 조셉은 자신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지인들과의 파티 및 축하연에서 자신의 소설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아내에게 영광을 돌리는 언행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작가로서 누리는 모든 영예는 자신의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한 조안의 희생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공식석상에서 아내를 위하는 척 하는 조셉의 행동은 가증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불운한 삶을 깨닫게 된 주인공, 그의 선택
 
 영화 <더 와이프>(2017) 한 장면

영화 <더 와이프>(2017)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자신의 이름으로 소설을 쓰는 것을 망설이던 여성 작가는 남편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그 과실을 모조리 가로챈 남자는 남편이라는 미명 하에 그녀 위에 군림하고자 한다. 아내가 남편 대신 소설을 쓴다는 극적인 설정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더 와이프>는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남성 중심 사회의 지속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여성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저격한 보여 준다.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지 못하고 유명한 소설가의 아내로서 만족해야 했던 여성의 불운한 삶을 말이다. 여기에 아버지를 위해 평생을 희생한 어머니를 떠올리며 조안을 연기했다는 글렌 클로즈의 열연이 더하여 조안이 겪은 차별과 억압이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이 겪은 아픔임을 환기시킨다. 

남편을 통해 유명 소설가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루고자 했고,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의 아내로만 소개되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조안은 순간 깨닫는다. 남편의 이름으로 발표한 소설로 부와 명예를 얻으면 남편과 자신 모두 행복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러지 않았다. 남편과 자신을 위해 벌인 부정한 행위의 결실이 남편에게만 돌아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조안은 한 남자의 곁을 충실히 지키는 아내가 아닌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고자 한다.

누구의 아내, 엄마로만 살지 않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권리.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제정 되었다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러모로 곱씹어 볼 만한 영화 <더 와이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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