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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주 간 피렌체 여행을 다녀왔다. 30대 마지막 여행이자 다섯 번째 피렌체 여행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여전히 기차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으로 진입할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느 도시든 마찬가지겠지만, 기차역은 여행자에게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2014년 6월 처음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도착했을 때가 아직도 선명하다. 간절히도 바라던 피렌체에 도착했다는 흥분은 금방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서른 셋에 여권이라는 것을 처음 만들었고, 당시 서른 다섯의 나에게 피렌체는 사실상 첫 해외여행이었다.

경비를 아끼려고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숙소를 예약했다. 그런데 도무지 어디서 어떻게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거운 가방을 끌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북적이는 인파 사이를 갈팡질팡할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지나쳐 갔지만 영어 실력도 형편없는 데다 해외여행 경험마저 처음인 나는 선뜻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동양인 유학생으로 보이는 커플이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끌고 다가왔다. 놀랍게도 한국인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도움이 필요하냐고 먼저 말을 걸어 주었다. 그리고 내 숙소 주소를 보고는 정류장까지 데려가서 버스를 태워줬다. 덕분에 나는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고 지금까지의 피렌체 여행으로 이어졌다. 당시 그 커플이 나에게 베푼 것은 작은 호의일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이었다.
 
   다섯 번에 걸친 피렌체 여행의 시작이었다. 기차역은 여행자에게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곳이다.
▲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기차역(2014년 6월 16일)  다섯 번에 걸친 피렌체 여행의 시작이었다. 기차역은 여행자에게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곳이다.
ⓒ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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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여행에서 만난 인연

언젠가는 그 유학생 커플에게 받은 도움을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우연히 혼자 여행하는 한 청년을 만났다. 다른 여행자들과 달리 뭔가 고민이 많은 얼굴이었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얘기를 나눠보니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여행 중이라고 했다.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잠시 당황하던 청년은 초대에 응했고, 몇 시간 뒤 내가 숙소로 쓰는 아파트 앞에서 다시 만났다.

혹시 아는 사람 있으면 데리고 와도 된다고 했더니 호스텔에서 만났다는 20대 학생을 데려왔다.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공부하러 왔는데 그 역시 혼자 여행 중이었다. 소고기 세 팩을 굽고 현지에서 샀던 와인과 맥주를 비롯해 아껴 뒀던 소주도 꺼냈다. 그것도 부족해서 가지고 있던 라면을 몽땅 끓였고 김치도 내왔다. 별 것도 아닌 식사였지만 두 청년은 몹시도 맛있게 먹어줬다. 그러면서 여행 중 이런 식사 대접을 받게 된 거에 고마워했다.

둘 다 여러 사연과 고민이 있는 것 같았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그냥 이 순간 주머니 사정 걱정없이 마음껏 한 끼 포식하는 걸로 충분했다. 그래서 개인 신상에 대한 것도 별로 묻지 않았다. 이름도 들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냥 피렌체에서 만난 어떤 아저씨와의 특별하고 따뜻했던 경험으로만 기억해줘도 충분하다.
 
   식사 마지막에 청년들은 자신들도 나중에 다른 이들에게 자기가 받은 것 이상으로 다시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 비상식량(?)까지 다 털어낸 저녁식사  식사 마지막에 청년들은 자신들도 나중에 다른 이들에게 자기가 받은 것 이상으로 다시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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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 '여행'

나는 참 비루한 20대를 보냈다. 수 년 전 회사에서 진행했던 상담 프로그램에서 나는 내 20대의 절반을 지워버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 대기에도 벅찼던 20대는 그만큼 큰 결핍의 시기였다.

그 결핍들 중에서도 특히나 여행이나 휴가는 너무나 먼 얘기였다. 학생 때는 물론이고 취업을 한 이후에도 그랬다. 동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 대화 주제가 여행이 되면 어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길 기다렸다. 학자금 대출과 여러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이던 나에게 많으면 한 번에 수 백만원을 쓰는 여행이란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2011년 캐나다의 레퍼 드레이크(Drake)의 <The Motto>라는 곡 덕분에 욜로(YOLO)라는 말이 유행했다. '한 번 사는 삶이니 행복하게 살자(You Only Live Once)'는 의미라고 한다. 욜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여행일 것이다.

인터넷과 서점, 그리고 방송에는 다양한 여행기가 수도 없이 넘쳐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모든 것을 던지고 몇 개월 혹은 몇 년씩 '훌쩍' 떠나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기를 끈다. 그들의 결심과 용기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이 나라에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나도 일년 동안 휴가를 모으고 모아서 딱 한 번 여행을 갔다.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길게 붙여 쓸 수 있는 회사 분위기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많이 있다.

진정한 욜로는 내 삶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삶도 소중하다는 걸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나의 행복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지난 겨울, 또 한 명의 청춘이 행복한 삶을 즐겨 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 역시 다른 이들처럼 한번쯤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멋진 여행을 꿈꾸지 않았을까?
 
   고 김용균씨의 고향인 구미에 새워진 분향소. 그도 한 번쯤 훌쩍 떠나길 꿈꾸지 않았을까?
▲ 지난 12월 구미역 광장  고 김용균씨의 고향인 구미에 새워진 분향소. 그도 한 번쯤 훌쩍 떠나길 꿈꾸지 않았을까?
ⓒ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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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새로운 여행

처음 피렌체에 갔을 때 만났던 그 유학생 커플이 고마웠던 것은 먼저 말을 걸어준 것이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도와주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말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 유학생들이 먼저 다가와 건네 준 말 한 마디 덕분에 나의 30대는 풍성해질 수 있었다.

삶에서 이런 작은 도움이 크게 다가오는 경우는 종종 있다. 혼자만의 힘으로 오롯이 성장한 사람은 없다. 크든 작든 주변의 도움이 성장을 이끌어 준다. 나 역시 은사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20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관련기사 : 15년 전 교수님이 내민 봉투, 이렇게 갚았습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그 청년의 빈소 앞에서 나는 얼마나 먼저 말을 걸어주었는지 반성했다. 문제가 터졌을 때 가해자는 알려지길 바라지 않지만 피해자는 알려지길 바란다. 그래서 침묵하는 것은 가해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이제 30대의 여행이 끝났고 40대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여전히 피렌체를 갈지 아니면 다른 도시를 삐딱하게 보게 될지 모르겠다. 뭐가 되었든 새롭게 시작하는 40대는 '먼저 말을 건네는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피렌체 기차역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던 나에게 다가왔던 그 유학생들처럼 말이다.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작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해봐야겠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청년들에게 식사 대접하는 정도라도 말이다. 더 나아가 그 청년들도 나중에 또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말 한마디 먼저 걸어주길 기대해본다.

그래서 누구라도 일년에 한 번쯤은 멋진 여행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에 내가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10년 뒤 나름 가치 있는 40대였다고 얘기할 수 있을 거 같다.

태그:#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김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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