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 눈이 내렸다. 올겨울 눈이 유독 귀해서인지 반가우면서도 아직 눈을 보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라웠다. 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구치소로 가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소위 "갑을관계"에도 못 끼는 병(丙), 현대차의 2차 하청이었다. 그래도 맨주먹으로 시작한 공업사가 제법 커져서 아버지는 사장 명함을 가슴에 품고, 당신께서 만든 부품이 들어간 그랜저도 몰 수 있게 됐지만, 지금은 '피고인'이 되어 마지막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일이 잘못된 것은 2015년 여름부터였다. 원청이었던 H사는 현대차의 1차 협력사로, 2015년 6월, H시스템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H시스템 새 경영진의 이른바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하청업체에 대한 인신공격, 막무가내식 트집 잡기에 이어진 '구조조정'의 진면목은 납품 단가 후려치기였다. 그들이 말하는 '구조조정'은 '수술시킨다'는 업계의 언어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했다.

자동차 2차 하청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후려치기

 
자동차공장 생산라인.
 자동차공장 생산라인.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한 번 단가 인하에 응하자, 갈수록 인하 요구의 폭은 늘어갔고, 납품할수록 손해만 커지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하청인 아버지의 애원과 통사정에 대한 원청의 대답은 "마른 수건도 짤 수 있다"는 말과 납품 물량 축소와 계약 중단 위협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사업 왜 하느냐고, 차라리 때려치우는 게 낫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공장을 정리해 남는 돈을 챙겨 나오게 되면, 직장을 잃어야 할 직원들을 모른 척할 수 있을 만큼 냉정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회사를 유지하려 발버둥 쳤던 것이다. H시스템에서 아버지를 "버리는 카드"라고 부르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아버지는 이 모든 일은 이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됐다.

이미 정해진 마지막에 이르러 아버지에게 남은 선택지는 원청인 H시스템에게 거래 중단을 선언하고 아버지의 회사를 인수하라는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원청이 그 제안을 거절한다면 고통스러웠던 하청관계가 끝나는 것이고, 수락한다면 그나마 회사가 유지될 수 있을 터였다. 결국 H시스템은 대한민국 최고 로펌 변호사들의 자문을 받아 아버지 회사를 인수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먼저 꺼낸 제안을 '법'은 용납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공갈'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불량배에게나 붙는 줄로만 알았던 공갈이라는 죄명이 아버지에게 붙자, 아버지는 국가 기간산업인 자동차 산업을 인질로 매출이 수 조 원에 이르는 대기업인 H시스템을 공포에 질리게 해서 돈을 빼앗았다는 중범죄의 피고인이 되었다.

단가인하 거부하자 물량축소, 계약중단 위협에 결국 범죄자로 내몰려

 
자동차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한 노동자가 작업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자동차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한 노동자가 작업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내 아버지가 세계 5위의 한국 자동차 산업을 위기에 빠뜨리고, 자산만 5조 원에 달하는 H시스템을 공포에 질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리 없을 거라고 믿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아버지는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사람을 죽였을 때나 받는다는 중한 형량이었다. 너무도 억울했다. 내 아버지는 현대차에서 아들보다 어린 대리가 현장에 나온다고만 해도 초긴장 상태가 됐고, H시스템에서 과장이라도 나오면 무슨 지적을 받을까 마음을 졸이며 회사 직원들과 늘어서서 허리를 굽히며 그들을 맞으러 나갔다. 계속되는 단가 후려치기에 조금만 사정을 봐달라고 애원하는 것조차 수 없이 망설이고 두려워했던 아버지였다.

적어도 법은 공평해야 한다. 하청인 내 아버지의 이별 선언이 공갈죄라면, 하청업체를, 거기에 달린 많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납품단가를 후려친 원청에게도 같은 처벌이 내려져야 했다. 상대를 공포에 질리게 해 이익을 얻는다는 공갈죄가, 매일 불호령을 내리던 원청을 피해자로, 그런 원청의 불호령에 마음을 졸이던 내 아버지를 가해자로 부르는 이 불공평의 이유를 법은 설명해주지 않았다.

아버지를 구하겠다고 뛰어다니면서, 이 상황이 어쩌다 일어난 해프닝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H시스템의 이런 '구조조정'은 한국 자동차산업 구조에 만연한 방식으로, 위에서 아래로 가격을 후려쳐 버티지 못하는 하청은 버리고, 아버지와 같이 마지막에 내몰려 저항하는 하청은 공갈죄로 처벌한다.

자동차 산업의 하청업체 사장들의 잇딴 수난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이런 방식은 사업전략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경북 경주에서 자동차 하청 사업을 하던 한 부자(父子)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공갈죄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다고 했다. 어떤 하청업체는 부부가 함께 공갈죄로 형사고소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나마 가족 중 아버지 한 사람만 형사고소 당한 우리 가족은 운이 좋았던 셈이었다.

아버지가 재판을 받던 도중, 거듭되는 단가 후려치기를 당한 후 원청으로부터 거래 중단을 통보받은 한 하청업체의 사장이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아버지가 '버리는 카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H시스템에게 먼저 거래 중단을 선언하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그나마 구치소에서라도 내 아버지를 볼 수 있고, 내 어머니께서 야윈 당신의 남편과 창 너머로 마주 앉을 수 있는 지금이 다행인 것일까.

솔직히 내 아버지의 일로 닥치기 전에는 모른척하던 그 거대한 구조의 문제를 이제야 사회문제라고, 잘못된 구조라고 소리 높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알리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는 분들이 생길까 우려스럽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지금도 한국 자동차 산업의 구조는 하청에게 범죄자가 되거나 죽거나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고, 내 아버지는 운 좋게도 살아남아 한 번의 판결을 남겨두게 되었다. 적어도 내 아버지에게 '죽지 않은 죄'를 물어 처벌을 내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법과 정의는 아니리라 믿는다.

2015년 그 여름 이후 우리가 가져왔던 믿음은 모두 어긋났지만, 마지막 이 믿음만큼은 이 겨울 귀하게 내리는 저 눈처럼 희고 분명한 법의 정의에 응답받기를.

태그:#자동차산업, #원하청, #단가 후려치기
댓글1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