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소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세영.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소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세영. ⓒ 프레인TPC



지난 8일, tvN <왕이 된 남자> 종영 인터뷰. 이세영은 취재진에게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 적힌 직함은 프레인TPC 소속 배우 겸 오피스라이프스타일팀 과장. 기자들과 명함을 교환한 뒤 자리에 앉은 그는, 노트를 펴고 펜을 고쳐 쥐었다. 마치 수업을 듣는 모범생 학생처럼, 모든 질문을 모두 받아 적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또랑또랑한 표정으로 질문을 기다리는 이세영은 "질문을 놓칠까봐" 노트와 펜을 준비했다고 했다. 

앞서 방송된 tvN <주말사용설명서>에는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사무실에 출근해 직원들과 시간을 보내고 사무실을 청소하는 이세영의 모습이 그려진 바 있다. '오피스라이프스타일팀 과장'이라는 직함도, 사무실의 환경 미화를 담당하고 있는 그에게 직원들이 장난스레 붙여준 것이다.  

곁에 있던 이세영 소속사 직원은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그런다" 며 "불편해 죽겠다"며 웃었다. 명함도 "인터뷰마다 기자님들이 명함을 주는데, 나도 드리고 싶다"는 이세영의 제안으로 만들었다고. 사무실 한편에 아예 본인의 자리까지 있는 이세영은 "요즘 (드라마 촬영 때문에) 외근이 잦고 출장도 길어서 자리를 뺀다는 소문이 있다. 이제 작품 끝났으니 빼지 말아 달라고 했다"며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하고, 제가 정말 게을러서 밖에 나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출근해서 책도 읽고, 논문도 읽고... 사무실 청소는, 제가 사무실 오면 식구들이랑 같이 밥을 먹거든요. 일도 없는데 밥을 먹으니까, 밥값 하느라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거예요. 손님들 오시면 커피를 준비하기도 하고요. 에어컨 히터 빵빵하고, 컴퓨터 프린터 다 있고... 사무실이 좋아요. 직원 분들도 처음엔 불편해하셨는데, 지금은 익숙해지신 것 같아요. (웃음)" 

사무실의 이 과장님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소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세영.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소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세영. ⓒ 프레인TPC


 
이세영은 최근 종영한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유소운 역을 맡았다. 온화한 성품을 가졌지만 강단 있고 심지가 굳은 인물로, 같은 얼굴의 왕 이헌(여진구 분), 광대 하선(여진구 분)과 삼각 로맨스를 형성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두 시간 분량의 영화를 16부작으로 늘리면서, 비중이 커진 것은 중전 소운의 역할이었다. 멜로 라인이 부각됐고, 하선에게는 왕이 되려는 의지를, 이헌에게는 광기 어린 질투심을 자극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칫 갈피를 잃을 수 있었던 것이 소운의 감정이었다. 이헌을 향한 마음이 하선에게 옮겨 가는 과정이, 자칫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세영은 "소운의 감정을 시청자에게 이해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이해해야 했다"고 말했다. 

"제가 집중하려고 했던 건 소운의 입장이었어요. 궁궐 안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이헌 뿐이었고, 동궁 시절엔 기대고 의지도 했지만 그가 변한 거죠. 외로움을 견디면서도 '언젠가 변하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도 막연해지던 찰나에 왕이 변하기 시작한 거예요. 다시 실망할까 봐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가 '아 정말 변했구나' 확신이 생긴 순간, 알게 된 거죠. 왕이 변한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는 걸요. 그래서 소운이가 결국 사랑한 건 왕이 아니라, 그냥 하선이었다고 생각해요."  

이세영은 소운의 미묘한 감정선을 그래프로 그리기도 했다. 하선을 향한 마음의 크기, 사랑의 크기, 믿음의 크기를 세분화 해 기록했는데, 감정을 의도한 만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고.  

"작품을 할 때마다 두려움이 있어요. 대중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죠. '내가 지금 잘하고 있나?' 하는 의심이 가장 커요.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아쉬움 없이 쏟아냈다면 결과가 어떻든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제가 준비를 제대로 못 해 아쉬움이 있다거나, 할 수 있는데 못 했다거나 하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으니까요. 늘 맞게 가고 있는 건지 의심하고, 감독님께 여쭤보고, 불안해하고 그래요." 

"타고 나지 못해서..." 이세영의 자기평가는 박하다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소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세영.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소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세영. ⓒ 프레인TPC


 
그는 이번 <왕이 된 남자>도, "부족한 점은 너무 많았지만, 매 순간 최선은 다했다"고 했다. 자기 평가가 너무 박한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 "배울 것이 많으니 앞으로 나아질 여지도 많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극 안에서 여진구씨가 '타고 났소' 하는 대사가 있거든요? 정말 진구씨는 타고 났어요. 물론 진구씨도 엄청나게 연습하고 연구하겠지만, 노력만은 아니에요. 1인 2역 왔다 갔다 하면서 연기하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하다, 타고났다, 소리가 절로 나와요. 근데 전 타고나질 않았거든요. 더 열심히 해야죠. 후반부에 감정이 휘몰아칠 테니 곱씹어 생각해볼 수 있는 장면이나 감정을 정리해둔다든가, 소품을 미리 받아두고 감정을 준비하기도 했어요. 감정이 분석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할 수 있는 게 그거뿐이니 그거라도 한 거예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쏟아내는 이세영에게, 본인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세영은 곧바로 "끈질김"을 이야기했다. 자신은 "좀비"라면서. 

"소운이와 저의 가장 큰 공통점은 처절하다는 거예요. 소운이의 처절함이 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면, 제게는 이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이 있죠. 그래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지만, 생각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연기를 안 할 거 아니라면, 계속해야죠. 멘탈이 강하진 않지만, 끈질기게 싸우는 잡초 같은 부분이 있어요. 불타는 화력. 그게 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인간' 이세영, '배우' 이세영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소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세영.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소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세영. ⓒ 프레인TPC


1997년 MBC <뽀뽀뽀>로 데뷔한 이세영은 28년 인생 중 22년을 '연예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유로운 예술가라기보다는 회사원이 더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세영은 "실제로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청소도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환기하고, 바닥 쓸고, 이렇게 리스트를 짜두는데, 하나씩 항목을 지우며 쾌감을 느낀다고. 이세영은 "계획표를 다 지키지는 못하지만, 계획표를 짜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느낀다"며 웃었다.

'인간 이세영'은 이렇게 변화를 싫어하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배우 이세영'은 다르다.  

"캐릭터는 다 달랐으면 좋겠고, 안 해본 것 없이 다 해보고 싶어요. 로맨스도 하고 싶고, 무림 최강자 같은 역할도 해보고 싶고, 힘들고 어려운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언젠가 나이가 들면 대비마마도 할 수 있겠죠?"

이세영은 늘 이전 작품을 '인생 캐릭터'로 꼽는다. 그래야 다음 작품이 새 '인생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왕이 된 남자>의 소운 역시 지금 이세영의 인생캐이기도 하지만, "소운은 그보다 조금 더 특별하다"고 했다.  

"<왕이 된 남자>는 모든 순간이 꽃 같았어요. 제가 꽃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보석처럼 빛났고, 너무 행복했죠. 연기 스트레스는 컸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현장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영광이었고, 소운이라서 너무 행복했어요. 이런 캐릭터를 제게 맡겨 주신 감독님, 소운이를 너무 잘 그려주신 작가님께 감사해요." 

이세영의 행복한 시간들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소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세영.

tvN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소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세영. ⓒ 프레인TPC


 
<왕이 된 남자>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여진구는 차기작을 확정하고 곧 촬영에 돌입한다. 하지만 이세영은 아직 더 고민 중이다. 이번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만큼, 캐스팅에 대한 기대가 클 법도 하지만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열심히 계속 하다보면 잘 될 거라는 생각으로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진구씨가 이번에 지은(아이유)씨랑 연기를 해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진구씨 핑계대고 현장에 놀러도 가보려고 하는데, 부담스러워할까요? 하하하. 

<왕이 된 남자>의 소운을 사랑해주셨던 분들은, 다음 작품에서 이번 작품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실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입장에선 모든 것을 비우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거든요. 저와의 싸움을 다시 잘 시작해봐야죠. 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는 거니까, 지금은 <왕이 된 남자>를 마친 공허함을, 고양이랑 놀고, 회사에 출근하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잘 달래보려고요."    

왕이 된 남자 이세영 소운 여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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