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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정치하는엄마들은 화성시 청소년상담사 집단해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연대성명(성명서 바로가기)을 발표했다. 20여일째 이어지던 선생님들의 단식농성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였다.

성명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 뉴스에서는 때마침 농성을 잠정 중단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농성 기간이 길어지면서 건강이 악화되는 분들이 속속 나오던 중이어서 농성 중단 소식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기에 마냥 반가워하기는 어려웠다.  

학교 상담사들이 애초에 집단 해고된 이유가 무엇일까. 화성시 상담사 집단해고 사태를 다룬 기사마다 등장하는 '경기도교육청과 화성시의 MOU'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2012년 5월 말, 경기도교육청과 화성시는 이른바 '창의지성교육도시 MOU'를 체결했다. 경기도가 화성시에 1000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 2015년까지 화성시 학교 전체에 '창의지성교육'을 실시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창의지성교육' 세부 사업 중 하나가 '행복하고 안전한 학교 운영'이라는 이름의 학생 상담 사업이었다. 그 덕에 화성시에서는 2012년 23개 학교를 시작으로, 2013년 40개, 2014년 61개교에서 청소년상담사를 통한 전문 상담이 이뤄졌다.

실종된 '창의지성,' 해고된 상담사들

그런데 2019년 현재 화성시 교육 사업에서 '창의지성'은 실종된 상태다. '화성시 창의지성교육'을 검색창에 넣어 보면 '창의지성교육지원센터'라는 이름의 웹사이트가 뜨는데, 클릭해서 들어가는 순간 '창의지성'이라는 말은 빠지고 '화성교육협력지원센터'로 이름이 바뀌어 뜬다.

이 웹사이트의 사업 소개 코너에는 2012년~2016년까지의 사업이 '시즌 1', 2019년 현재 진행중인 사업이 '시즌 2'라고 되어 있다. 드라마도 아니고 시즌 1, 2라니. 철학을 가지고 꾸준히 이어가야 할 교육 문제에 대해 시즌 1, 시즌 2 이름을 붙이고 사업명을 은근슬쩍 바꾼 것부터가 이미 어딘가 글러먹은 느낌을 준다면, 과장일까.

시즌 2 사업이 시작될 당시 경기도교육청은 그 때까지 학교 일선에서 근무하던 상담사 중 근무 경력 2년 이상인 상담사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나머지 40여 명의 상담 인력을 고용하는 일은 화성시가 맡았는데, 시는 근속 기간 2년을 채운 상담사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수시로 위탁 업체를 바꾸었다.

위탁업체를 통한 계약은 1년 계약, 10개월 계약 등 이른바 '쪼개기 계약' 일색이었다. 참다 못한 상담사들이 10개월짜리 계약에 항의했지만, 화성시는 '싫으면 말라'는 듯 하루 아침에 계약을 중단해버렸다. 상담사들은 그렇게 갑자기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교육 사업 이름에서 '창의지성'이 삭제된만큼, 상담사의 존재가치 역시 삭제된 셈이다.  

정규교사만이 '선생님'인가

상담사들의 고용불안 문제는 물론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상담사 뿐 아니라 학교 내 여러 비정규직 종사자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상담사, 영양사, 조리사, 방과후 강사, 영어회화전문강사, 사서, 교육복지사, 돌봄전담사 등 여느 교사들처럼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자격 조건과 채용 경로 등에 따라 '급'이 나뉘어 차등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선생님들이 많다.

2013년 전북교육청에서도 100명이 넘는 상담사를 집단 해고하는 일이 있었고, 2017년에는 학교 급식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에 나섰다. 경기도교육청은 화성시 상담사 해고에 대해 침묵하는 사이 '기간제 사서교사'라는 이름의 단기 계약직을 양산해내고 있고, 대구에서는 방과후 돌봄을 맡는 돌봄전담사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방과후 학교 강사들은 10년째 오르지 않는 임금, 그리고 위탁업체의 임금체불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자격 조건이든 채용 경로든 근무 연한이든 그런 것 상관없이, 그 모든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다. 임용고사를 보고 교원자격증이 있는 정규교사만이 아니라, 전공 교과목을 가르치는 교과교사 뿐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에겐 '선생님'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 현장에 넘쳐나는 '비정규직' 선생님들은 마치 필요할때 언제든 급히 가져다 쓰고 아무때나 버려도 되는 존재나 다름없게 여겨지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 문제, 아이들이 보고 있다

학교 내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근무환경 문제는 해당 노동자-선생님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부모에게도 상처가 된다. 2017년 7월, 학교 비정규직 급식노동자 파업 사태를 두고 "그냥 급식소에서 밥하는 아줌마들"이라고 발언한 이언주 의원에 대해 정치하는엄마들이 긴급논평(논평 바로가기)을 냈던 것도 그래서였다.

당시 정치하는엄마들은 논평에서 '그냥 밥하는 아줌마'라는 비하 표현에 담긴 돌봄 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꼬집었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노동자를 존중하라는 요구를 담은 논평을 작성하면서,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들은 학교 비정규직 부문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일 것을 약속했다.   

이번 화성시 청소년상담사 집단해고 사태와 관련해 연대성명을 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학교 상담사들은 누구보다 고맙고 중요한 존재다. 부모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민으로 괴로워할 때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학교에 있다면, 그만큼 고마운 일이 어디 있을까.

실제로 이번 집단 해고 사태로 학교 상담사를 잃은 화성시내 각급 학교에는 갑자기 사라진 상담선생님의 안부를 묻는 아이들과 상담사 복귀를 외치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그만큼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상담선생님의 존재는 크다.

이 문제에 대해 단체 차원에서 연대할 것을 요청한 정치하는엄마들 임모 활동가는 연대 성명을 제안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학교 상담사는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인력인데, 학교마다 전수 배치는 못할 망정 있는 인력을 해고한다는게 말이 되나요. 게다가 MOU는 일종의 약속인데, 약속을 어기고 책임을 서로 미루는 모습이 큰 문제라고 느꼈어요. 아이들에게 약속 지키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어른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에 화가 많이 났죠."

학교 현장에 몸담고 있으면서 학교 비정규직 문제를 단체 내에 꾸준히 알리고 있는 권혜진 활동가는 "공공기관중 비정규직이 가장 많은 곳이 학교와 유치원"이라며, "노동이 존중되고 모두가 평등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 아이들이 발 내디딜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마음을 모아 성명서를 쓰는 동안,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들은 다시 한번 다짐했다. 세상이 어떤 용어로,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줄세우고 급을 나누든, 우리만큼은 그러지 말자고.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있으니,  우리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이다.

모두가 엄마이며, 모두가 노동자이기에

정치하는엄마들이라는 단체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드러내는 구호로 "모두가 엄마다"라는 말이 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2년 전 첫 모임에서부터 이 부분을 분명히 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엄마란, 엄마의 모성이란, 내 아이만을 위한, 한 아이의 생물학적 엄마로서만의 의미가 아니라고. 우리는 성별이 어떻든, 자녀가 있든 없든,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살피는 '사회적 모성'을 이 땅에 뿌리내리고 싶다고.

그런 세상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먼저 '모두의 엄마'로서 모든 아이들을 위해,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책임을 다하기로 했고, 그 다짐이 정치하는엄마들이 활동하는 기초가 되고 있다. 우리의 활동은 '정치'도, '엄마'도 아닌, '하는'에 방점이 찍혀있음을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학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연대성명을 내는 행위 역시 이 시대의 양육자로서 포기할 수 없는 정치행위다. 권혜진 활동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학부모도 노동자고,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누군가의 학부모일 때가 많죠. 그리고 아이들도 자라서 노동자가 돼요.  돌봄노동과 교육노동을 담당하는 이들에게 양육당사자의 목소리로 '당신들의 노동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화성시 상담선생님들의 단식 농성은 잠정 중단되었지만, 뒤이어 기간제 사서교사, 돌봄전담사, 순회상담사 등 학교내 비정규 직종에 종사하는 또다른 선생님들, 우리 아이들의 또다른 '엄마들'에 관한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서철모 화성시장은 지난 21일 '제19회 화성 시민의 날 기념식'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공정한 기회의 보장, 모든 시민이 차별받지 않으며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바른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지만(관련기사 보기) 정작 화성시 학교청소년상담사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지만,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들은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음 행동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없다. 학교 비정규직 문제가 바로 우리 아이들의 현재이자 미래이므로. 그래서 정치하는엄마들은 원한다. 더 많은 '엄마들'이 우리의 발걸음을 함께 해 주기를.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길러내기 위한 일에 모두가 동참해주기를.
 
화성시민대책위에서는 학교청소년상담사 선생님들의 복직과 고용안정의 법적 장치를 위한 조례 제정 마련을 위해 청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참 부탁드립니다.
○ 청원방법
화성시청 홈페이지에(http://www.hscity.go.kr/www/index.do) 접속해 아래 그림과 같은 순서로 진행. 화성시민이 아니어도 참여 가능합니다.
 
청원 방법 안내_1
 청원 방법 안내_1
ⓒ 화성 학부모시민사회단체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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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방법 안내_2
 청원 방법 안내_2
ⓒ 화성 학부모시민사회단체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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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방법 안내_3
 청원 방법 안내_3
ⓒ 화성 학부모시민사회단체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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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치하는엄마들' 회원입니다.


태그:#화성시, #청소년상담사, #정치하는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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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활동가로 살고 싶은 사람. 아이의 선천성 희소질환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T 증후군)'을 계기로 <아이는 누가 길러요>를 썼다.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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