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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김진석 사진작가가 지난 2월 26일 '고려인의 길' 취재에 나섰다. 우즈베키스탄을 시작으로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 카자흐스탄을 거쳐 고려인의 기차 이동 경로를 거꾸로 달려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예정이다. 이후 모스크바, 우크라이나, 조지아, 벨라루스를 거친 뒤 러시아 사할린과 캄차카의 고려인을 만날 예정이다. 김진석 작가의 '고려인의 길' 연재기사는 <오마이뉴스>에 단독으로 게재한다.[편집자말]
신 이스크라 선생의 작업실에서. ⓒ 김진석
 
우즈베키스탄을 떠나 타지키스탄으로 간다. 생소한 이름의 타지키스탄. 고려인의 이주 역사에 가장 먼 거리에 기록된 나라다. 2010년 인구조사 당시 600여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100~2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참고로, 타지키스탄은 10년에 한 번씩 인구조사를 한다.

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신 이스크라 선생 댁을 방문했다. 벌써 네번째 만남이다. 지난번과 같이 커다란 대문을 열어주는 신 이스크라 선생의 표정은 밝았다. 

신 이스크라 선생의 소개는 여러가지로 할 수 있다. 우선 고려인 3세대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유명한 화가이다. 주로 꽃을 그린다. 색채가 화려해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 받는다. 
 
신 이스크라 선생의 시아버지 신순남 선생의 작품들. ⓒ 김진석
 
신 이스크라 선생의 작업실 한켠에 놓여있는 물감 팔레트. ⓒ 김진석
 
두번째로 고 신순남 화백의 며느리이다. 신순남 화백은 러시아 이름 신 니콜라이 세르게예비치로 알려져 있다. 또한 영국 BBC 방송으로부터 '아시아의 피카소'라는 호평을 받은 그는 자신의 그림을 팔지 않았다. 

이유는 민족의 아픔을 그린 그림을 팔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의 대표작 '레퀴엠 - 이별의 촛불, 붉은 무덤'(길이 44m)을 1997년 대한민국에 기증했다. 정부는 그에게 해외거주 동포 화가로는 처음으로 문화예술 분야의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레퀴엠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신 이스크라 선생이 들고 있는 훈장 증서. ⓒ 김진석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독립유공자 전일 선생의 외손녀다. 전일 선생은 함경북도 길주 출신. 191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중반까지 중국과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제의 탄압을 받아 세 차례에 걸쳐 13년 가까이 옥고를 치룬 항일 혁명가이다. 또한 비밀항일결사단체인 광복단의 단장이기도 했다. 

신 이스크라 선생은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이 거실로 나를 데려갔다. 다과를 내놓고 그저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나중에 알았지만 신 이스크라 선생은 파키스병을 앓고 있다. 걸음걸이며, 말도 매우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따뜻한 어머니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은 없다. 인사를 드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대문을 나섰다. 신 선생은 불편한 몸으로 나를 큰길까지 배웅을 하기 위해 따라 나오셨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신 선생님은 운동 삼아 나가는 거라며 고집을 피우셨다. 큰길 건너편 내 모습이 보이질 않을 때까지 신 선생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먼길을 떠나보내는 자식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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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몸으로 큰길까지 배웅을 나온 신 이스크라 선생. ⓒ 김진석
태그:#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신이스크라, #신순남, #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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