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캡틴마블> 메인 포스터

영화 <캡틴마블> 메인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1.

지난 2014년 10월 28일, 마블의 수장 케빈 파이기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20여 분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3(Marvel Cinematic Universe Phase 3) 발표 및 관련 소식 질의 응답 시간을 갖는다. 페이즈 3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였기 때문에 당시 기자회견에서 나온 질문은 해당 작품에 대한 물음과 이후 <어벤져스> 시리즈의 향방에 대한 궁금증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던 중, <캡틴 마블>과 관련된 질문이 나왔다. 케빈 파이기는 이날 정확히 정해진 것은 아직 없지만 분명히 제작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그리고 뒤이어 <블랙 위도우>와 관련된 흥미로운 질문이 또 하나 등장한다. 앞서 언급된 <캡틴 마블>의 경우 캐릭터도 익숙하지 않고, 역을 담당할 배우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기존에 잘 구축되어 있는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세팅을 왜 솔로무비로 활용하지 않느냐는 것. 당시로서는 충분히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미 <아이언 맨 2>(2010)에서 모습을 처음 드러냈고, <어벤져스>(2012),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에도 등장하며 그 존재감을 뿌리 내린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빈 파이기는 "현재 블랙 위도우의 상황이 <어벤져스> 시리즈 내에서의 영향력이 보다 더 높기 때문에 굳이 솔로무비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며 "페이즈 1과 페이즈 2의 내용에 가까운 블랙 위도우의 내용을 굳이 페이즈 3에서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페이즈 3의 끝자락에서 <캡틴 마블>이 탄생하게 되었고, <캡틴 마블>은 <블랙 위도우>를 제치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의 여성 솔로 무비가 된다. <블랙 위도우>는 페이즈 3의 마지막 작품인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 이어 페이즈 4의 첫 작품으로 개봉 예정되어 있다.
 
마블의 수장 케빈 파이기 마블의 수장 케빈 파이기

▲ 마블의 수장 케빈 파이기 마블의 수장 케빈 파이기 ⓒ slashfilm.com


02.

이러한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내에서 여성 캐릭터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여성 솔로 무비에 대한 갈증이 지속적으로 있어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일각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영화 <캡틴 마블>은 곧 개봉할 <어벤져스: 엔드 게임> 공개 이전에, 그리고 페이즈 3를 닫기 직전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굳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내 여성 서사의 필요성에 국한해서 이야기하자면, 꼭 <캡틴 마블>이 아니더라도 그 이전의 <블랙 위도우>부터 고려되어 왔다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기억을 잃어버린 비어스(브리 라슨)가 지구로 불시착하여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 히어로로서의 자각까지 성공적으로 이뤄낸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틀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전에 없던 여성 서사의 구조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는 여성의 연대는 물론, 성적으로 소비되지 않는 여성 캐릭터의 표현, 획일화 된 여성성의 탈피 등의 지점에서 기존의 영화들이 단편적이고 부분적으로 꺼내왔던 여성 서사의 거의 모든 지점에서 완성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특히, 루이지애나에 도착해 과거의 친구를 찾은 비어스가 자신의 본명이 캐럴 댄버스임을 알게 되고 자신의 과거와 직접 마주하는 장면, 이에 이어서 욘 로그의 제압으로 슈퍼림 인텔리전스를 만나게 된 이후 히어로로서의 역할을 자각하는 모습은 사회의 여러 모순에 억눌려 자신을 숨겨온 현실 속 여성들이 스스로의 한계를 깨고 나오는 모습처럼 오버랩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영화 속 영웅의 서사 구조가 다소 전형적이고 헐겁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주인공인 캡틴 마블이 자신의 원래 모습을 찾고 영웅으로서의 자각을 하기까지 소비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기존의 마블 캐릭터가 갖고 있는 특성을 이어가지 못하고 되려 DC 유니버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영화 <캡틴마블> 스틸컷 영화 <캡틴마블> 스틸컷

▲ 영화 <캡틴마블> 스틸컷 영화 <캡틴마블>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3.

솔로 무비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캐릭터의 탄생 비화 혹은 능력을 얻기까지의 과정, 주요 빌런과의 조우 등 캐릭터와 관련한 다양한 배경 지식을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하기에 구조적으로 단순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루즈한 전개를 타개하기 위해 화려한 액션 혹은 캐릭터 자체 능력의 돋보이는 구현 등의 방식을 활용하게 된다. <아이언 맨>의 시작이나 <스파이더 맨>의 시작을 상상해 보면 가장 직관적일 것이다.

그러나 <캡틴 마블>은 과거의 작품들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에서, 오히려 축약된 수준의 액션을 보이며 영화의 전반부와 중반부를 오롯이 주인공의 자아 찾기에 집중한다. – 이 부분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대한 가치 판단은 그 다음의 문제다. – 자신이 지구를 지켜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기까지 걸리는 1시간 이상의 분량에서 이미 10여 편의 마블 히어로 작품을 관람한 관객들이 환호성을 내지를 장면은 그리 많지 않을 수밖에 없다.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고, 그 선악의 개념이 대의 명분을 가지기보다 캡틴 마블의 개인적 원한에 머무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영화 마지막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는 하지만, 이 작품 한 편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는 다소 헐겁게 여겨질 여지도 있다. 스크럴들과 관련한 내러티브 역시 마찬가지다.

04.

캡틴 마블의 모습이 기존의 마블 캐릭터들과는 상당히 이질적일 수도 있다. 이는 <캡틴 마블> 솔로 무비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자체가 페이즈의 전환 과정 속에서 과거 페이즈 1, 페이즈 2와 달리 범우주적인 쪽으로 나아가게 되면서 발생하는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시각에서 보자면, 지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통해 기존의 히어로들로는 타노스의 힘을 이겨낼 수 없는 상황이 형성된 이후 기존과는 다른 캐릭터가 필요했을 것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DC 유니버스의 히어로와 차별점을 갖는 부분 중 하나는 마블 유니버스 내 히어로들이 인간의 모습에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이었다. 코믹스 원작 내의 설정이야 어떻든 간에 어벤져스 시리즈 내의 캐릭터들은 한 특별한 인간이 이상 능력을 획득 혹은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 물론 <토르>나 <샤잠>과 같은 예외도 존재한다. – 탄생 자체가 신 혹은 신화와 연결되는 DC 캐릭터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DC는 그런 자신의 캐릭터들이 가진 매력을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필이면 그 지점에 캡틴 마블이 서게 되었고, DC 유니버스 캐릭터들이 보여준 바 있는 것과 유사한 아쉬움이 작품 곳곳에 묻어나게 된 것이다.
 
영화 <캡틴마블> 스틸컷 영화 <캡틴마블> 스틸컷

▲ 영화 <캡틴마블> 스틸컷 영화 <캡틴마블>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5.

앞으로 <캡틴 마블> 솔로 무비가 시리즈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동안 마블이 보여준 모습을 돌이켜보면 전체 세계관 속에서 그녀가 차지할 비중은 결코 적지 않을 것 같다. 캡틴 마블은 당장 개봉을 앞두고 있는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서부터 두각을 드러낼 인물이다. 솔로 무비 시리즈의 경우에도 비슷한 이유로 혹평을 받았던 <퍼스트 어벤져>를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로 탈바꿈 시켰던 경험이 있는 만큼 기대해 볼 일이다.
영화 무비 캡틴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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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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