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08 07:37최종 업데이트 19.04.08 07:37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기관으로부터 안전과 인생을 빼앗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범죄자가 되었던 이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진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사과 없는 국가를 대신해 스스로 자신을 기념하는 '이상한 집'을 지으려 합니다. 그 이상한 집의 이름은 '수상한 집'. 지금 제주에서 벌어지는 수상한 일을 채워줄 수 있도록 함께해주세요.[편집자말]
'수상한 집'에는 제주에서 벌어진 조작간첩 피해자의 이야기가 실립니다. 이 집을 짓고 있는 강광보 선생님을 비롯해 절친(?) 김평강, 같은 제주 화북 마을에 살았던 형님 김용담 김인근 부부, 양승태 전 대법관이 제주지법에서 주심판사를 맡았던 사건의 주인공인 오재선, 후배 강희철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조작간첩 피해자들이기에 제주에 세워지고 있는 '수상한 집'에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숨겨야만 했던 과거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당당히 자신의 잘못이 아닌 국가의 잘못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먼저 강광보씨와 가장 '절친'이며 단짝인 김평강씨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난 직 후. 오른쪽부터 강광보, 김평강, 오재선. 2019.3.27 ⓒ 지금여기에


아버지는 4.3 때 산사람들에게 희생당하고

김평강씨는 1940년 11월 27일 제주 삼양에서 태어났습니다. 1949년 제주 4.3 당시 자치경찰단원이었던 부친을 잃었습니다. 산사람들에게 희생 당했지만, 그는 산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희사를 해서 삼양초등학교를 세웠어요. 마을의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했는데... 하루는 산사람들이 내려와서 삼양초등학교에 막 불을 낸 거예요. 나도 그 학교에 다니고 있었거든. 학교에 불이 나서 아버지랑 마을 분들이 학교 불을 끄러 갔다가 산사람들에게 잡혀서 죽게 되었지."

산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제주 사람들을 산사람으로 만든 게 육지에서 온 육지것들(육지에서 온 사람들) 아니야. 그 사람들 어디 산에 가고 싶어 갔나. 그 사람들도 억울하게 군인, 경찰들한테 죽었으니 산으로 올라가 산사람 된 거고, 배고프니 내려와서 사람들 괴롭힌 거지."

그가 원망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멀쩡한 사람들 폭도로 몰아 총으로 쏴 죽여서 산사람 만드는 거나,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고문하고 간첩으로 만드는 거나 뭐가 달라?"

그는 1964년 해병대를 제대한 후 1965년부터 1968년까지 한전제주영업소 수금사원, 한라산 제2횡단도로 공사현장에서 자재부 직원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러나 직장상사의 부정을 대신 뒤집어 쓰고 징역살이를 하고 나온 뒤 제주에서 먹고살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절감해야 했습니다.

"공사 현장 상사가 자재를 조금씩 빼돌렸던 모양이야. 나보고 대신 들어갔다 오라고. 그러면 나와 가족 뒤를 다 봐준다고 해서 대신 들어갔지. 출소하고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른 척 하더라고."

아이들 떼놓고 일본으로
 

제주 회원모임에서 단체사진을 함께 찍었다. 아래 가운데가 김평강이다. 2019.3.27 ⓒ 지금여기에

 
노모와 아내,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찾아야 했습니다. 당시 제주는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너무 척박했습니다. 결국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김평강씨의 아내 역시 남편이 일본으로 들어간 지 얼마되지 않아 아이들을 떼놓고 일본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생이별을 하고 일본으로 들어온 엄마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겠죠.

"가방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비만 오면 그렇게 애들 생각이 나는 거예요. 비오는 날만 되면 애들 생각에 한국 노래를 틀어놓고 그렇게 울었어요. 이렇게 독하게 돈을 벌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장에라도 제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미칠 것만 같았어요."(김씨 아내 양치추)

그러나 그때마다 남편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재봉틀로 다가가 가방 박음질을 했습니다. 그렇게 11년간 악착같이 일을 해 제법 단골손님도 생기자 남의 집 밑에서 일하던 그들도 작은 공장을 얻어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백화점 여러 곳에 납품하며 제법 일본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어느 날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공장에 들이닥쳤습니다.

"아마도 우리 공장이 여러 곳에 납품하며 잘 되고 있으니 일본인이 경영하는 주변 공장에서 배가 아팠나 봐요."

결국 1980년 11월 20일 일본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제주로 강제 송환되었습니다. 일본의 살림살이 중 일부는 팔아 현금으로 하고 나머지는 모두 물건으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강제송환, 그리고 갑작스런 연행

계획 없는 갑작스런 귀환이다 보니 제주 생활이 막막했습니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구상하는 동안 제주 친구들을 만나며 지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제주시경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경찰서에 놀러가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수다를 떨다오곤 했습니다.

"내가 제주경찰서에 연행된 것이 1981년 4월이에요. 날 잡아간 수사관들 중에는 내가 졸업한 오현고등학교 선후배들이 있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뭐 아무것도 없는데 뭘 파헤치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굉장히 곤란해 했어요. 그때는 특별히 가혹행위를 당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한 보름 정도 지나니까 제주도경찰서 대공과 수사관들로 싹 바뀌었어요. 그때부터 막 고문을 하더라고요."

일본에서 지낼 때 가장 많은 후원을 해주던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 김석종씨가 조총련 계열로 간첩행위를 지시했고, 김평강씨는 그 지시를 따라 간첩행위를 했다는 것이 그의 혐의입니다.

"내가 했다는 간첩행위가 뭐냐하면 제주도에는 전기가 들어온다, 제주시 화북동 도로가 포장되었다,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수도가 들어온다, 뭐 이런 거예요. 아니, 그거 모르는 제주 사람 어디 있느냐고 했더니 수사관이 또 막 고문을 해요."

조사받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제주시경에서 근무하던 친구를 수사관들이 이용하려 한 것입니다. 김평강씨가 제주경찰서에 놀러간 것이 친구를 통해서 경찰의 기밀을 알아내려고 했다는 거죠. 끝까지 부인을 했지만 결국 친구는 경찰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약 2개월간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검찰로 송치되었지만 검찰도 경찰과 한통속이었습니다. 경찰 조서를 보여주며 특별한 질문을 하지 않고 미리 꾸며놓은 조서에 서명만 하라고 했습니다.

"제주법원 재판에서 검사가 사형을 구형하는데 하늘이 깜깜해지고 무릎에 힘이 쭉 빠지더라고요. 어깨가 축 늘어져서 교도소로 돌아갔는데 교도소 재소자들이 그래요. 한 7년이나 받을 거라고. 그래서 내가 사형을 구형받았는데 무슨 7년이냐고 했더니 웃기만 해요.  선고하는 날 판사가 그래요. '범죄사실을 따져봤을 때 모든 것이 애매하긴 하지만 유죄를 선고한다. 피고인을 징역 7년에 선고한다.' 억울하긴 했지만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또 한 명의 간첩이 생겨났습니다.

간첩의 탄생

"남편 감옥 보내고 하루는 제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 버스에 남편 조사했던 수사관이 타는 게 보였어요. 그땐 내가 눈이 획 돌아가더라고. 그놈한테 가서는 '나 모르겠냐. 당신이 내 남편 간첩 만들어서 감옥보낸 거 기억 나냐. 왜 죄 없는 내 남편 간첩 만들었냐. 내 남편 간첩이 맞냐?'하면서 사람들이 꽉 찬 버스에서 악다구니를 썼어요. 그랬더니 그 수사관이란 놈이 버스에서 후다닥 내려서 막 도망가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지만 너무 억울했거든."(김씨 아내 양치추)

2012년 11월 30일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을 신청한 김평강씨는 2014년 11월 13일 재심개시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김평강의 아내가 운영하는 반찬가게. 냉장고에 붙인 글씨는 모두 자신이 직접 쓴 글씨들이다. 2019.3.27 ⓒ 지금여기에


부부가 운영하는 반찬 가게에는 아내가 직접 써서 붙인 글씨가 여기저기 붙어 있습니다.
 
혼자 이룬 것은 없다. 함께 나누어라.
 
그들이 수상한 집을 함께 이루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3편으로 이어집니다.)

[수상한 집] 
① "우리 집에 지을까?" 이 한마디에 수상한 집이 시작됐다 http://omn.kr/1i8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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