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기획하게 된 출발점은 사진 한 장에서였다. 1967년 납북 어부 간첩 조작 사건으로 피해를 받고 무죄 판결을 받은 할아버지의 사진 한 장이었다.

납북되셨다가 남한으로 돌아와서 안기부에 끌려가신 분인데 아무런 죄 없이도 소위 빨갱이로 몰려 10년을 복역하셨다. 그 분이 인터뷰 마지막에 '앞으로 뭐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아들이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아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이들의 관계가 무엇이길래 아들이 보고 싶다고 할까.

자료를 찾다 보니까 거의 모든 아들이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고향과 아버지를 떠나더라. 그것이 뭔지 모르겠으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 (임태규 감독)


영화 <폭력의 씨앗>으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임태규 감독이 차기작으로 가져온 영화는 <파도치는 땅>이었다. <폭력의 씨앗>에서 임태규 감독은 폭력이 발생하는 과정을 군대라는 공간 안에서 사유했다면, 이번에는 간첩 조작 사건을 통해 삼대 가족을 사유한다.
 
 영화 <파도치는 땅> 스틸 사진

영화 <파도치는 땅> 스틸 사진 ⓒ 아이엠

 
문성(박정학 분)은 최근 마음이 복잡하다. 그는 하던 사업에 실패한 채로 돈을 구하러 다니고 있다.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은 아버지 광덕과 절연한 상태인 문성은 돌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의 하나뿐인 아들인 도진(맹세창 분)은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열 살 연상의 싱글맘 윤아(양조아 분)과 결혼하겠다고 말한다.

아들과 아버지, 둘 사이에서 힘에 부쳐 하던 그는 결국 아버지가 계신 고향 군산으로 간다. 그곳에서 문성은 자신의 아버지를 오랫동안 돌봐왔던 은혜(이태경 분)라는 여성을 만난다. 그는 은혜가 아버지의 국가 보상금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은혜를 의심하고 다툼을 벌이기도. 대체 간첩 조작 사건은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친 걸까.
 
 영화 <파도치는 땅> 스틸 사진

영화 <파도치는 땅> 스틸 사진 ⓒ 아이엠

 
전주국제영화제라는 제작 파트너

임태규 감독이 <폭력의 씨앗>으로 전주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 대상을 받았다면 이번 <파도치는 땅>은 전주영화제의 투자, 제작 프로젝트인 전주시네마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2년 연속 임태규 감독은 전주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셈이다. 이 밖에도 <파도치는 땅>은 제33회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분에 초청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지난 28일 건국대학교 인근 영화관에서 언론 시사회를 가진 <파도치는 땅>은 이후 간담회에서 그 제작 비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문성 역할에 박정학은 간담회에서 "영화 시나리오대로 한 게 아니라 대본을 아예 다 없애고 촬영 2시간 전에 배우들이랑 스태프들이랑 만나서 이야기를 만들고 현장에서 찍었다"며 "처음 해본 경험이었는데 너무 좋았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감독은 이러한 즉흥 연출에 대해서 "마음 먹고 시작한 건 아니다"라면서 "군산의 GM 공장이 문을 닫는다든지 관광 특구로 활성화가 된다든지 하는 당시의 사회 이슈들을 녹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시나리오를 배제하고 연출했다"고 답했다. <파도치는 땅>은 자연스러운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영화의 주무대가 되는 군산은 과거 실제 간첩 조작 사건이 발생한 지역이다. <파도치는 땅>의 제작진은 치열한 헌팅 과정을 통해 아버지 광덕이 살만한 군산 구항의 인적 드문 조그만 구멍가게를 찾았다.
 
 영화 <파도치는 땅> 스틸 사진

영화 <파도치는 땅> 스틸 사진 ⓒ 아이엠

 
미술 소품 또한 인위적인 세팅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카메라도 주로 세워두고 인물들이 그 프레임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간혹 (감독의 의도대로) 카메라에 배우들의 얼굴이 다 담기지 않고 잘린 채로 나오기도 한다.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 카메라 구성이 단조로워 자칫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인내심 있게 따라간 관객이라면 마지막 부분, 실제 간첩 조작 사건 당시 푸티지를 연속으로 삽입한 장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줄 평: 역사를 기억하는 임태규 감독의 방식
별점: ★★★ (3/5)

 
영화 <파도치는 땅> 관련 정보
감독/각본: 임태규
출연: 박정학(문성), 이태경(은혜), 맹세창(도진)
제작: 전주국제영화제/투영2필름
배급: 아이엠(eye m)
러닝타임: 82분
개봉: 2019년 4월 4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파도치는 땅 전주국제영화제 박정학 폭력의 씨앗 임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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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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