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08 09:45최종 업데이트 19.04.08 09:45
약자가 되어보지 않고는 모를 일들이 주변엔 많다. 출산 후, 태어나 처음으로 신체적 한계를 느꼈다. 버스에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를 보고 눈물이 났던 것도 그 맘 때였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내가 원하는 곳에 가는 것도, 먹는 것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았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전 과제라는 것을 말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어쩌면 사회적 약자가 되는 첫 경험이었다. 하루는 아이 엄마가 된 친구들끼리 큰 마음을 먹고 서울 종로 근처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경기도 일산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유모차를 가지고 오던 친구가 약속 장소까지 오는 것을 중도 포기하고 집에 돌아간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웃지 못할 일들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아이도, 사회구성원이다
 

도심 속에서도 유모차를 갖고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다 ⓒ 김아연

 
아이들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하나의 구성원임을 인정하는 것은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다. 핀란드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식당에 가든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핀란드의 주요 도시에서는 6세 미만의 아이가 탄 유모차를 끌고 대중교통(버스, 트램, 지하철 등)을 이용하는 보호자에게 교통요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유모차를 끌고 낑낑거리며 앞문까지 가서 교통카드를 찍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버스 뒷문으로 들어가면 유모차나 휠체어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곳에 보호자가 함께 안전하게 착석할 수 있다.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배려되는 대형마트 정문 앞 주차공간 ⓒ 김아연

 
대형 슈퍼마켓 주차공간에도 배려가 깃든다. 아이가 탄 자동차는 마트의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할 수 있도록 공간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 덕분에 쇼핑 중에 카트 안에서 곯아 떨어진 아이를 들쳐 업고서도 장바구니를 들고 금세 차 안으로 들어가 집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접근성을 높여주는 것이 때론 큰 편의가 될 수 있는 사례다.

외출을 하고 돌아와 유모차를 집까지 가지고 들어가는 일도 누군가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 자가용 말고도 자전거 등 개인 이동수단이 많은 핀란드에는 보통 현관 앞에 자전거 보관소나 스키, 썰매 창고가 설치되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유모차 보관소가 현관 문 앞에 있어 유모차를 편히 주차해두고 집에 올라갈 수 있다. 다음 번에 외출할 때 무거운 유모차를 다시 들고 나올 필요가 없어 한결 이동이 편리해진 것은 물론이다. 
 

유모차 등 아이들의 이동수단을 보관하는 창고 ⓒ 김아연


​​'설마 이런 곳에도…'

이런 생각으로 들어간 핀란드 시골마을 식당에도 아기의자가 있었다. 전통 재래시장 한 가운데 있는 천막 카페에도, 10평 남짓 되는 작은 피자집도 예외가 될 순 없었다.

공간이 넉넉한 레스토랑에는 식당 한 켠에 놀이방이 있어서 음식을 먹기 전에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린이 손님이 오면 어린이 메뉴와 식기를 별도로 제공하기도 했다. 고속도로에서 잠시 들른 작은 휴게소에서 병 이유식이나 액상 분유를 구매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아 외출 후에 생기는 비상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다.  
 

핀란드 재래시장 안 허름한 카페에도 예외 없이 발견할 수 있는 아기의자 ⓒ 김아연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아이 있는 가족을 특별하게 배려해주는 문화가 신기하기도 했다. 이쯤 되니 이런 시설은 특별한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인생을 살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지극히도 평범한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이다.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가까이에 사는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기 위해 자연히 생겨난 모습일 뿐이다.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출산, 양육 과정에 이르기까지 엄마들은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아무렇지 않게 오르던 계단이 세상을 단절하는 벽이 되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내가 만나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유모차나 휠체어가 쉽게 다닐 수 있는 보행친화 거리가 되고,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화장실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가 어서 한국에도 오길 기다린다.

밥 먹을 때 '로보카 폴리' 필요 없다
 

햄버거집 주변에 설치된 어린이 놀이터 ⓒ 김아연


오늘도 어린이집이 끝난 후 집에 곧장 가기 싫어하는 아이와 함께 쇼핑몰에 방문해 햄버거 세트를 하나 시켰다. 한국처럼 아이를 의자에 억지로 앉히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로보카 폴리'를 일부러 틀어주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에게는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10분이 어른들의 한 시간처럼 긴 시간이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는 테이블 주변에 앉아 아이를 풀어 놓는다. 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뛰어놀지만, 다른 테이블에 방해를 끼칠 염려가 없다. 땀을 쭉 흘리며 친구들과 놀던 아이가 식탁 위에 도착한 햄버거 세트를 보자 반갑게 뛰어온다.


"엄마, 나 이제 배고파요. 나도 감자튀김 먹을래!"

그제야 아이의 허리를 잡고 들어 유아 의자에 앉히고 식사를 시작한다. 누군가에게는 전쟁과 같은 아이와의 외식 시간. 이곳에서는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고, 아무도 방해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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